가운데

by leehyojoon ARCH

가운데

ㅡ 갈림길에 관한 판결문


[세계관 문장]


갈림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형성된 방향의 노출이다.


우리는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척을 한다.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고, 잠깐 멈춰 서서 풍경을 읽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사실 그 순간 이미 몸은 어딘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선택은 그 기울기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왼쪽과 오른쪽은 변주다. 조금 돌아가거나, 조금 치우치는 방식의 서사. 드라마를 원하는 사람이 택하는 방향들. 그러나 가운데는 다르다. 가운데는 정면이다. 풍경을 피해가지 않고 그대로 뚫고 나가는, 가장 직선적인 선택.


그날 세 갈래 길 앞에서 나는 가벼운 장난을 쳤다.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이 세 가지 길 중에 내가 어디로 갔을까?" 괜히 어려운 문제처럼 던져본 질문이었다. 왼쪽일 수도 있고, 오른쪽일 수도 있고, 혹은 일부러 비껴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분 뒤 답장이 왔다. "가운데."


이건 추측이 아니다. 집행이다.


아내는 내가 결국 직진할 사람이라는 걸 안다. 감상에 잠기기 전에 결론을 도출하고, 의미를 붙이기 전에 성향을 읽는다. 내가 어떤 카페에서 무엇을 고를지,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웃을지, 길을 걸으면 어느 쪽으로 몸이 먼저 기울지.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아내에게는 오래전에 이미 패턴이 되어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세 글자. "가운데."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판정이었고, 감정이 아니라 통찰이었다. 나는 짧게 답했다.


"헉."


놀람이 아니라 들킨 사람의 인정이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의, 조용한 항복.


사진 속 마른 나무와 푸른 하늘은 평온했다. 그러나 그 길 위를 걷는 나의 궤적은 아내에게는 언제나 선명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 서사의 해설자가 아니라 중력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로 가든 결국 그 중심을 알고 있는 사람. 내 방향을 대신 정해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를 가장 먼저 아는 사람.


누군가가 당신의 다음 걸음을 당신보다 먼저 알고 있다면, 그 관계는 사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가운데

ㅡ 세 갈래 길에서 생긴 일


[에세이]

오늘은 특별할 것 없는 오후였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가볍게 불었고, 길은 한적했다.


산책을 하다 보니 세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은 조금 굽어 있었고, 오른쪽은 나무가 더 촘촘해 보였고, 가운데는 그냥 곧게 뻗어 있었다. 잠깐 멈춰 서서 풍경을 바라봤다. 어디로 가도 상관없는 순간이었다. 급한 일도 없었고, 목적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걷는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결국 가운데로 걸어갔다.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의미를 붙이지도 않았다. 눈앞에 가장 자연스럽게 놓인 길이었을 뿐이다.


걷다가 문득 장난기가 생겼다.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이 세 가지 길 중에 내가 어디로 갔을까?" 괜히 어려운 문제처럼 던져본 질문이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가운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지, 싶으면서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맞힐 거라는 걸.


괜히 복잡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괜히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를 아니까, 나답게 갔을 길을 말한다. 아내는 내가 크게 모험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일부러 돌아가서 드라마를 만들지도 않고, 굳이 모서리를 택하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늘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직선적이고, 결국은 눈앞에 놓인 길을 택하는 사람이라는 걸.


"헉."


짧게 답장을 보냈다. 놀라서라기보다는, 또 한 번 읽혔다는 걸 인정하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건 가끔은 조금 신기하고, 조금은 부끄럽고, 그래도 참 든든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이런 사소한 장면들로 쌓여왔을 것이다. 어떤 카페에서 내가 무엇을 고를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장면에서 웃을지, 길을 걸으면 어느 쪽으로 몸이 먼저 기울지.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쌓여 "가운데."라는 한 단어가 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래서 가장 단순하게 맞히는 사람.


세 갈래 길 앞에서 나는 혼자 서 있었지만, 사실은 늘 둘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든 결국 그 중심을 알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내 길을 대신 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갈지를 조용히, 정확히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과 살고 있다. 그래서 이건 사소한 길 이야기가 아니다. 내 삶의 방향을 읽어내는 사람에 대한, 자랑이다.




ps. 앞에 쓴 글은 내가 원래 쓰는 방식이다. 아내는 그 글투(-세계관 문장)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썼다. 이것도 어쩌면 그녀가 나를 읽는 방식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