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방법론
서사에는 오래된 욕구가 있다.
일어난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고통에 이유를 찾는 것. 상실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것. 이 욕구는 자연스럽다. 인간은 의미 없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는 흩어진 사건들을 하나의 선 위에 올려놓고 그 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보여준다.
나는 그 선을 긋지 않는다.
의미를 회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을 긋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으로 남겨둔다. 거기서 무언가를 꺼내 독자에게 건네지 않는다. 이것이 당신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라고, 이것이 결국 말하는 것이라고 쓰지 않는다.
순장을 썼다.
삼 년을 준비해서 백사십이 명을 땅속에 봉인한 석공. 그 행위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쓰지 않았다. 권력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인간의 복종에 대해서도, 역사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도 쓰지 않았다. 다만 석공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썼다. 정이 돌에 닿는 것을 썼다. 망치가 내려오는 것을 썼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는 것을 썼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썼다.
거기서 끝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자에게 묻지 않는다. 내가 먼저 답하지 않는다. 의미는 독자가 그 장면 앞에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미리 만들어 건네면 독자는 그것을 수령할 뿐이다. 수령은 독서가 아니다.
의미를 회수하는 서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말하겠다.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을 통해 인물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인물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인물이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한다. 이것이 성장 서사의 구조다. 고통은 여기서 도구가 된다. 의미를 만들기 위한 재료.
하지만 실제 고통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고통은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고통은 그냥 있다. 어떤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어떤 상실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엄마가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 그 깨달음으로 더 강해진다는 것, 나는 그것을 쓸 수 없었다.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여자의 고통을 의미의 재료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1.2킬로그램의 가루. 지문 사이의 얼룩. 식지 않는 미열. 이것들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있다. 영원히.
나는 그것을 그냥 있게 내버려 둔다.
의미를 회수하지 않는 것이 허무주의처럼 들릴 수 있다.
세계는 의미 없다고, 고통은 아무 이유가 없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의미를 회수하지 않는 것은 고통을 고통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이 고통에서 무언가를 건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이다. 상실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상실은 실재했다고, 그 실재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 둘은 다르다.
어떤 시가 있다.
나를 잊으소서. 기억하지 마소서. 누구의 교훈도 되지 않겠다고. 누구의 서사도 되지 않겠다고.
이 목소리가 거부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오래 생각했다. 죽음조차 의미 있게 만들려는 욕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내 고통에서 무언가를 건져가려는 시선을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 재료가 아니라고.
이것이 가장 잔인한 저항이다. 의미화를 거부하는 것. 서사화를 거부하는 것. 그냥 사라지겠다는 것.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
나는 그 목소리에서 배웠다. 고통을 의미로 포장하는 것이 때로 고통을 가진 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의미를 회수하는 순간, 그 고통은 작가의 것이 된다. 인물의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나는 열린 결말을 쓴다.
열린 결말이 미완성이 아니다. 의미를 독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기록했다고. 이것이 무엇인지는 당신이 결정하라고.
석공이 귀를 기울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손바닥에 여전히 얼룩이 박혀 있다. 남자가 십수 년 뒤에도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
이것들이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그 앞에서 자신의 것을 꺼낸다. 자신이 귀를 기울였던 때를. 자신이 낙하했던 때를. 자신의 손바닥에 박혀 있는 것을. 자신이 돌아가는 밤을.
그 순간 텍스트는 내 것이 아니다. 독자의 것이 된다.
의미를 회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가 자신의 의미를 가져갈 수 있다. 내가 먼저 가져가면 독자에게 남는 것이 없다.
서정이 여기에 있다.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이유 없이 남아 있는 것들의 무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고통이 그럼에도 실재했다는 것.
칼은 그 실재가 회수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건져 올려지지 않는다는 것에. 그냥 거기 있다는 것에.
나는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건져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건져 올리기를 거부하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