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된장국에 관하여"
조그만 봉지를 찢었다.
무언가를 잊은 듯, 혹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소리로 가루가 그 속으로 떨어졌다. 갈색 알갱이들이 도자기 바닥에 닿으며 내는 미세한 소리.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작은 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뜨거운 물을 붓는다.
김이 오르고, 익숙한 냄새가 뺨을 스친다. 방금 전까진 이 집이 낯설었는데 이제 조금 덜 낯설다.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조그만 봉지 하나가 공간의 온도를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인스턴트 가루가 낯선 곳을 익숙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파도 다시마도 두부도 아니고, 그저 건조된 조각들인데 어쩐지 마음 한켠이 뜨끈하게 퍼지는 건 왜일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멸치를 우리고, 다시마를 우리고, 된장을 체에 밭쳐 풀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적어도 삼십 분은 부엌에 서 있어야 했고, 그 사이 집 안은 구수한 냄새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즉석이다. 간단히 끓이기만 하면 되고, 복잡한 준비도 필요 없다. 물과 작은 봉지 하나, 그리고 몇 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충분히 따뜻하다.
이건 음식이라기보다, 기억을 푸는 의식 같았다.
간단히 끓이기만 하면 되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따뜻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온기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즉석이어도, 그 순간에 따뜻하면 되는.
젓가락으로 한 번 저어주니 가루가 완전히 녹았다.
맑은 갈색 국물이 되었다. 건더기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된장국이었다. 짠맛과 구수함이 혀끝에 전해졌다. 복잡한 재료는 없었지만, 그 안에는 된장국이라는 음식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랑도 이와 같을지도 모른다고.
항상 정성스럽고 완벽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즉석이어도, 간편해도, 그 순간에 따뜻하면 되는 것이다. 멸치를 우리고 다시마를 우린 국물만이 진짜가 아니다. 조그만 봉지에서 나온 따뜻함도 충분히 진실하다.
혼자 살았던 사람들은 안다. 매번 정성스럽게 요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때로는 간편함이 필요하고, 때로는 즉석의 위로가 더 적절하다는 것을. 완벽한 한 끼보다는 따뜻한 한 그릇이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오늘 하루의 결론으로, 혹은 혼자의 대답으로, 나는 한 숟가락을 떴다.
소리도 없이 입안에서 풀리는 구수한 침묵. 그게 지금 나에겐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복잡한 설명도, 긴 위로도 아닌, 그저 따뜻한 침묵.
그릇을 든 손이 따뜻해졌다.
도자기를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손바닥에서 팔목으로, 팔목에서 어깨로 퍼져나갔다. 이 작은 따뜻함이 온몸으로 번져가는 느낌. 마치 작은 태양이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즉석의 온기에는 즉석만의 매력이 있다.
기다림이 없는 만족, 복잡함이 없는 위로. 그것이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그것만의 완성된 형태인 것이다. 인스턴트라고 해서 가짜가 아니다. 다만 다른 종류의 진실일 뿐이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나니 그릇 바닥이 드러났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따뜻함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조금 더 오래 머물 것이다. 내일 아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조그만 봉지 하나가 만들어낸 작은 기적. 즉석이지만 진실한, 간편하지만 따뜻한 그런 온기.
어쩌면 인생의 많은 순간들이 이와 같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즉석이어도, 그 순간에 필요한 만큼의 따뜻함을 주는 것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들.
빈 그을 싱크대에 놓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도 이런 작은 온기가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또다시 조그만 봉지를 찢을 것이다. 주저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고.
즉석의 온기를 즉석의 온기로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