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편의점에서 생수를 하나 샀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오후 3시 27분, 점심을 먹고 난 지 두 시간쯤 지난 시간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목이 말랐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침에 마신 커피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작업실의 건조한 공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물이 필요했다.
500ml 생수 한 병, 1,200원. 별것 아닌 물건이었지만 그날따라 꼭 필요한 느낌이었다. 브랜드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물은 물이니까. 하지만 그 투명한 병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동안, 나는 이상한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무언가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카드를 내밀었지만 기계가 말을 듣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카드 단말기가 고장 났어요." 직원이 말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마치 하루에 백 번쯤 했을 법한 말투였다. 기계적이면서도 미안한 듯한, 그런 톤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짜 미안함도, 가짜 미안함도 없었다. 그저 상황을 설명하는 중립적인 정보 전달에 불과했다.
나는 그 순간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카드가 없던 시절, 모든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지던 그 시절로.
잠깐 멈칫하다가, 나는 현금을 꺼냈다. 5천 원짜리 한 장.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는 동작이 생각보다 어색했다. 요즘은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플라스틱 카드와 전자 신호로만 거래하게 되었다. 실물 화폐를 만지는 일이 오히려 특별한 경험이 되어버렸다.
5천 원권의 빨간색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묘하게 낡아 보였다. 언제 받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돈이었다. 어쩌면 몇 달 전에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몇 년 전에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지폐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름지고,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해진 그런 흔적들.
계산대 위의 투명한 트레이.
그것을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카드로 결제하느라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꽤 흥미로운 존재였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얕은 그릇. 그것은 편의점의 모든 거래가 지나가는 작은 무대 같았다.
직원은 그 위에 천천히 거스름돈을 놓았다. 1,000원 지폐 세 장과 500원 동전 한 개, 그리고 100원짜리 동전 세 개. 아주 조용하게.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그 순간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동전이 투명한 플라스틱에 닿으며 내는 작은 소리. '딸깍딸깍.' 그리고 지폐가 가볍게 내려앉는 무음의 착지. 그 사이의 짧은 침묵이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나는 그 조용함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동전의 차가운 질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지폐의 거친 표면이 손가락에 스쳤다. 오랜만에 느끼는 실물 화폐의 감촉이었다. 무게도 있고, 온도도 있고, 냄새도 있는 진짜 돈의 감각.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내 목소리는 유리창 밖으로 빠져나간 바람처럼 들렸다. 공허하고 형식적인 소리였다.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해야 하는 말이어서 한 것인지 나 자신도 확실하지 않았다.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트레이를 다시 비워놓고 다음 손님을 맞았다.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피곤함도, 친절함도, 불친절함도 없었다. 그저 업무를 처리하는 기계 같은 중립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공정함의 모습이라는 것을.
나는 문득, 그 트레이가 사람보다 더 많은 말을 들었겠구나, 생각했다.
수많은 거래들이 그 투명한 표면을 지나갔을 것이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사람의 여유로운 돈도, 기분 나쁜 하루를 보낸 사람의 짜증 섞인 돈도, 모두 그 위에서 무표정한 잔돈과 함께 조용히 건너갔을 것이다. 급한 사람의 조급함도, 여유로운 사람의 느긋함도, 모두 그 위에서 동전과 지폐로 변환되어 처리되었을 것이다.
트레이는 말이 없다. 판단하지도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받고 주고, 받고 주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부자의 돈도 가난한 사람의 돈도 똑같이 취급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공정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가장 냉정한 태도이기도 했다.
가끔은 말보다 동전이 정확하다.
작지만 분명한 가치로, 짧지만 명확한 결제로. 동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00원은 100원이고, 1,000원은 1,000원이다. 감정도 없고, 속마음도 없고, 계산도 없다. 그저 자신의 가치만큼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던 때를. 그때는 트레이 같은 건 없었다.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거스름돈을 건네주셨다. 때로는 덤으로 사탕을 하나 더 주시기도 했고, 때로는 "다음에 갖다 줘도 돼"라며 외상을 받아주시기도 했다. 공정하지 않았지만 따뜻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났다. 이제 우리는 투명한 트레이 위에서 거래한다. 공정하고 정확하지만 차가운 방식으로.
하지만 그 공정함이 왜 이렇게 차갑게 느껴지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불공정함이 아니라 인간적 온기였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공정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따뜻함을 포기했다. 덤도 없고, 외상도 없고, 개인적 관계도 없는 깔끔한 거래. 하지만 그 깔끔함 속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고, 트레이 위에 남은 침묵을 뒤로한 채 편의점을 나섰다.
자동문이 '슈웅'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밖의 공기는 안보다 조금 차가웠다. 손에 든 생수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1,200원어치의 물. 3,800원어치의 거스름돈. 모든 것이 정확히 계산되고 처리된 완벽한 거래였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왠지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이상함의 정체를 생각해보려 했지만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불공정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무례한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게 공정했다. 그리고 그 완벽한 공정함이 오히려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남겼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완벽한 공정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은 인간적인, 조금은 불완전한, 그런 따뜻함일지도 모른다. 트레이 위의 거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원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직원에게 나는 그저 하루에 수백 명 만나는 손님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특별할 이유도, 기억될 이유도 없는 평범한 거래 상대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 또한 하나의 공정함이었다.
걸어가면서 나는 주머니 속 동전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찰랑찰랑.' 마치 작은 방울 소리 같기도 했다. 차가우면서도 명확한, 그런 소리였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그 편의점을 다시 방문한다면, 그 직원은 나를 기억할까.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트레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똑같은 투명함으로, 똑같은 침묵으로.
그리고 나는 그것이 슬프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의 자유로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의 편안함. 그것도 하나의 공정함이었다.
트레이 위의 침묵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다음 손님을, 그 다음 손님을 기다리며. 감정 없는 중립성으로, 완벽한 공정함으로. 그리고 그 차가운 공정함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작은 거래를 완료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어쩌면 그것이 현대적 삶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공정하지만 인간적이지 않은, 정확하지만 따뜻하지 않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나는 그 침묵을 조금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