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그 카페는 오래된 나무 테이블을 썼다.
한때 어딘가에서 실제로 쓰였을 법한, 그런 테이블들이었다. 표면에는 수많은 흠집과 얼룩이 남아 있었고, 모서리는 무뎌져 있었다. 각 테이블마다 나무의 나이테가 다르게 그어져 있어서, 마치 시간의 층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섬들이 카페 안에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곳곳에 벽돌이 보이는 인테리어였고, 조명은 노랗고 말이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만든 빈티지가 아니라,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낡아진 느낌이 있었다. 벽돌들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천장의 나무 빔들은 세월의 무게로 약간씩 휘어 있었다.
오후 2시 17분, 점심시간이 막 끝난 시간이었다. 카페는 조용했다. 멀리서 에스프레소 머신이 내는 김 빠지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콘센트는 많지 않았다.
창가 테이블 두 군데, 그리고 기둥 옆 한 자리에만 있었다. 총 세 곳뿐이었다. 요즘 카페치고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콘센트라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을까.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카페에서 전기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제 콘센트는 카페의 좌석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어버렸다.
콘센트는 현대인에게 일종의 생명줄이다. 우리의 디지털 기기들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폐와 같은 존재. 그리고 그 폐가 부족한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난다. 노트북을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는 치열한 경쟁의 대상이 될 만한 희귀자원이었다.
나는 일찍 갔고, 창가 자리의 콘센트 옆에 앉았다.
다행히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창밖으로는 작은 골목길이 보였고, 가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테이블 위에 사각형 모양의 빛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노트북을 꺼내려다 말고, 가방을 옆에 둔 채 잠시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 3,500원. 간단한 주문이었다.
카운터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 자리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가방이 놓여 있으니 누구도 앉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일종의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었다. 물건이 놓여 있으면 그 자리는 임시적으로 점유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하지만 내가 틀렸다.
돌아오니, 어떤 여자가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당연한 듯.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색 맥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내 가방은 반쯤 밀려 있었고, 그녀는 이미 이어폰을 꽂고 충전을 시작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가방을 놓고 간 자리를 누군가 차지하다니. 그것도 가방을 옆으로 밀고 당당하게 앉아 있다니.
"앗… 저 여기 있었는데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확신 있게 말하려고 했는데, 어딘지 망설이는 톤이 되어버렸다.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이어폰을 뺀 채 말했다.
"죄송해요, 모르고 앉았어요."
하지만 말투는, 그렇게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앉을 데 없으니 앉은 거라는 듯. 사과는 했지만 자리를 비켜줄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더 강하게 말해야 할까. 내 가방이 있었다고, 먼저 앉아 있었다고 주장해야 할까. 하지만 그녀의 태도에서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결국 옆자리로 옮겼다.
콘센트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카페에서 목소리를 높여 다투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당당함 앞에서 내 주장이 초라해 보였다.
옆자리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고, 음료를 마시고, 완전히 자기 자리인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날은 원고를 쓰지 않았다.
노트북 배터리가 30% 정도 남아 있었지만, 콘센트 없이는 오래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꾸 옆자리가 신경 쓰였다. 내 원래 자리에서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커피만 마셨다.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을 천천히 걸어갔다. 평범한 오후 풍경이었지만, 내 마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일을 다 마친 것 같았다. 노트북을 정리하고, 이어폰을 뽑고, 가방을 메고 나갔다. 나가면서 내 쪽을 한 번 보지도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콘센트는 다시 텅 비었고, 내 노트북도 배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제 콘센트를 쓸 수 있지만, 할 일을 할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할 기분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빈 자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자리로 다시 옮겨 앉아야 할까. 하지만 이미 의미가 없었다. 그 자리에 대한 애착도, 필요성도 사라져버렸다.
내가 필요한 건 전기였을까, 아니면 그냥, 내 자리를 인정받는 감정이었을까.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었다.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전기도 필요했고, 인정도 필요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원했던 것은 예측 가능한 질서였을지도 모른다.
콘센트를 둘러싼 이 작은 갈등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 먼저 왔다는 권리와 실제 점유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불공정함.
내가 먼저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가 보장되는, 그런 암묵적 룰이 작동하는 세상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그 카페에서는.
돌아오는 길에, 나는 커피 잔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텅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잔 바닥에 커피 찌꺼기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커피잔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물건이다. 내용물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비어버리면 그냥 빈 그릇이 된다. 하지만 그 빈 상태에서도 여전히 커피의 흔적을 품고 있다. 냄새도, 얼룩도, 온기의 기억도.
어쩌면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들도 커피잔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앉아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떠나면 그냥 빈 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 빈 자리에도 여전히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체온도, 무게의 자국도, 시간의 기억도.
마치 내 하루의 잔해 같았다.
카페를 나서면서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창가 자리가 아직도 비어 있을지 궁금했다. 다른 누군가가 또 그 자리를 차지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조용히 햇살만 받고 있을까.
어쩌면 자리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내 것일 수 없는,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공간.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그런 성격의 장소.
의자라는 것도 흥미로운 존재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주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면서 동시에 아무의 것도 아닌 중립적 존재. 의자는 차지하는 사람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받아줄 뿐이다.
카페의 의자들은 매일 이런 작은 드라마들을 목격한다. 차지하고, 양보하고, 갈등하고, 타협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하지만 의자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사람을 기다릴 뿐이다.
그날 밤, 집에서 노트북을 충전하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은 더 일찍 가야겠다고. 아니면 아예 콘센트가 많은 다른 카페를 찾아야겠다고.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어디를 가든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또다시 당황하고, 망설이고, 결국 물러설 것이라는 것을.
콘센트는 단순한 전기 공급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인의 생존 도구였고, 작은 권력이었고, 때로는 갈등의 씨앗이었다. 벽에 박힌 작은 구멍 두 개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콘센트는 가장 민주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기를 공급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든 그냥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불평등한 자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지만 모든 사람이 쓸 수는 없으니까.
그날 나는 그 작은 권력 게임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그 패배가 완전히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가 나보다 더 절실하게 전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었다. 세상이 항상 공정하지 않다는 것, 먼저 왔다고 해서 항상 우선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물러서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에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마도 비슷하게 행동할 것 같다.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조용히 물러설 것 같다. 그것이 내 성격이고, 내 방식이니까.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때로는 양보하는 것도, 비켜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니까.
카페 테이블 위의 콘센트는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다음 사람을, 그 다음 사람을 기다리며. 그리고 그때마다 작은 드라마들이 벌어질 것이다. 차지하고, 양보하고, 갈등하고, 타협하는 그런 일상의 드라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