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채팅으로 만난 여인 03

― 느슨한 관계의 리듬


채팅으로 만난 여인 03.

― 느슨한 관계의 리듬



우리는 그 뒤로 가끔 만났다.



연락은 늘 그녀가 먼저 했다.


짧은 메시지, 별 의미 없는 말들.


“오늘 커피가 너무 쓰네요.”


“퇴근길에 본 고양이가 나를 따라왔어요.”


혹은 아무 말 없이


‘…’


점만 찍힌 메시지 하나.



그럴 땐 내가 시간과 장소를 제안했다.


강남역의 지하 서점, 을지로의 조용한 카레집, 북촌 끝자락의 계단 옆 벤치.


우리는 무언가를 약속하지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단지 서로의 일정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여백을 남겨두는 일.


그게 이 관계의 전부였다.



한 번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 없이 도착했고, 그녀는 투명한 비닐우산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우산 아래를 함께 걸었다.


서로 어깨는 닿지 않았고, 말도 거의 없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비 오는 날의 소음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가끔은 그녀가 지나치게 말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한 주 내내 답장이 없을 때도 있었고,


그러다 불쑥 새벽에 이런 메시지가 왔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나는 긴 대답 대신, 이런 문장을 보냈다.



“지금은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그녀는 한참 후에 답했다.



“그러네요. 그런 상태.”



그리고 또 며칠간 아무 말도 없었다.



우리는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인도 아니었고, 친구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저 서로의 일상 사이에 조용히 기대어 쉬다 가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사람한테 너무 가까이 가면, 감정이 어지러워져요.


가까운 건 좋지만, 가까워지는 건 부담스러워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우리 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한 번은 그녀가 아무 예고 없이 말했다.


“해외로 잠깐 나가게 됐어요. 3개월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잘 다녀와요. 우산은 챙기고.”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지만,


사실 그런 예감은 늘 뒤늦게 오는 법이다.



그 후로 그녀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몇 번 채팅 창을 열어봤지만, 말은 걸지 않았다.


대신 예전 대화를 천천히 읽었다.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 문장들.


가령 이런 것.






“커피잔 안에 떠 있는 작은 거품들이 꼭 우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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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나는, 누군가와 걸을 땐 발소리를 먼저 듣게 돼요.”




출처 입력







그런 말들.



나는 요즘도 가끔 그 카페에 간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녀는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듣고 있을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르는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



지금은 그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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