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와이파이〉

'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공공 와이파이〉

'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그날 나는 와이파이를 훔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빵집 와이파이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빵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당연히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저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아서 동영상을 보려고 했는데, 데이터가 부족했다. 요금제를 바꾸기에는 아직 한 주가 더 남아 있었고, 추가 데이터를 사기에는 아까웠다.


벤치는 그 빵집 바로 앞에 있었고, 내 핸드폰은 익숙한 이름의 신호를 잡고 있었다.


'BreadHouse_Free_Wifi'


패스워드도 없었다. 클릭 한 번으로 연결되었다. 신호는 강했고, 속도도 괜찮았다. 동영상도 끊기지 않고 잘 재생됐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영상을 봤다. 편의점에서 산, 900원짜리 캔커피였다. 차가워진 아메리카노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반면 그 빵집에서는 아메리카노 하나에 4,200원이었다. 거의 다섯 배 차이였다.


와이파이라는 것도 신기한 존재다. 보이지 않지만 공간을 채우고 있고, 누구든 접속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소유물이기도 하다. 공기처럼 자유롭지만 전기세는 누군가 내고 있는 애매한 자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정한 걸까.


법적으로는 문제없을 것이다. 패스워드가 없는 와이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어떨까. 그 빵집의 전기세로 만들어진 인터넷을 내가 공짜로 쓰고 있는 것이다.


내 옆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브런치 포장 봉투가 놓여 있었다. 'BreadHouse' 로고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그 빵집의 '정당한' 손님이었을 것이다.


나는 눈을 피했다. 그녀는 별 관심 없는 듯 보였지만, 나는 어딘가 불편했다. 마치 내가 몰래 남의 것을 쓰고 있다는 게 들킬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와이파이를 쓰고 있을 것이다. 같은 'BreadHouse_Free_Wifi'를. 하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빵도 샀고, 돈도 냈으니까. 반면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인터넷만 쓰고 있었다.


와이파이는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누가 쓰든, 뭐라 하지 않았다. 전파는 차별하지 않는다. 돈을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그저 신호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연결해준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더 나를 찔렀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명확한 금지나 제재가 있다면 모를까,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서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지는 것 같았다.


나는 동영상을 끄고 주변을 둘러봤다. 벤치에는 몇 명 더 앉아 있었는데,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혹시 그들도 같은 와이파이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그중에 그 빵집에서 뭔가 산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빵집에서 공짜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손님이 아닌 사람들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빵집에게는 손해가 아닐까.


어쩌면 빵집 입장에서는 계산된 손실일지도 모른다. 와이파이를 미끼로 사람들을 유인하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뭔가 사게 될 거라는 기대. 마케팅 비용 같은 개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다면 어떨까. 아무것도 사지 않고 와이파이만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면, 그때도 빵집은 계속 공짜 와이파이를 제공할까.


나는 핸드폰을 껐다.


더 이상 볼 동영상도 없었지만, 그것보다는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괜히, 와이파이 연결을 끊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공짜 와이파이라고 해서 누구나 쓸 수 있게 열어놓은 것 아닌가.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애매한 상황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권장되지도 않는 그런 행동들.


그날 이후, 나는 빵집 앞 벤치에 잘 앉지 않는다.


와이파이의 속도는 여전히 좋았지만, 그만큼 뒷맛도 좋지 않았다. 차라리 데이터를 쓰거나, 집에 가서 인터넷을 하는 게 마음 편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성격일 것이다. 애매한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흑백논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있었으면 하는.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특히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애매한 상황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공유경제, 무료 서비스, 개방형 플랫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경계가 모호한 세상.


몇 달 후, 나는 그 빵집 앞을 지나가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와이파이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BreadHouse_Customer_Only'


아, 결국 그들도 같은 고민을 했구나. 공짜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싶지만, 손님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서 제한을 둔 것이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느꼈던 불편함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빵집도,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결국 개인의 양심에 맡겨두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명시적인 규칙이 필요했고, 그것이 'Customer_Only'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과연 이제는 손님만 와이파이를 쓸까. 아니면 여전히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이름만 바뀐 걸까.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편의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덕적 딜레마들도 만들어냈다. 공공 와이파이는 그중 하나의 작은 예일 뿐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런 상황들을 해결해나갈 것이다. 때로는 개인의 양심으로, 때로는 명시적인 규칙으로, 때로는 기술적 제한으로.


중요한 것은 그런 고민을 계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리함과 공정함 사이에서,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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