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공정함'에 대한 일상의 단상
그날 나는 편의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후 4시 15분이었다. 편의점 앞 파라솔 자리에서, 바람이 조금 불고 있었고, 플라스틱 의자는 약간 기울어 있었다. 누군가 무거운 것을 올려놓았다가 내린 흔적인지, 앉을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뒷면이 닳은 파라솔은 연두색이었다. 한때는 더 선명한 초록색이었을 것 같은데, 햇빛과 비에 바래서 지금은 애매한 연두색이 되어 있었다. 천 모서리 곳곳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어서, 강한 햇살이 점점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습관적으로 컵에 적힌 로고를 돌려 가렸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지만, 괜히 그랬다. 편의점에서 산 커피라는 게 뭔가 당당하지 못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스타벅스나 이디야 같은 '진짜 커피숍?'에서 사온 게 아니라는 미묘한 부끄러움. 합리적이지 않은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였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요즘 편의점 커피도 꽤 괜찮아졌다.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여전히 뭔가 '임시방편'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때 어떤 남자가 와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회사원 차림이었는데,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퇴근 후인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컵을 올려두었고, 나는 무심히 그 컵을 보았다.
'LUNGO COFFEE'
그 편의점 로고는 아니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 체인점이었다. 나도 가끔 가는 곳이었다. 편의점 커피보다 두 배쯤 비싸지만, 분위기도 좋고 의자도 편안한 곳.
"거기서 안 사셨군요." 나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데, 괜히 지적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이 근처 커피는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마치 내가 이상한 지적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커피를 한 모금 마셔야 했다.
솔직히 나도 종종 그랬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이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았던 적도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 여기였고, 앉을 자리가 필요할 때 이곳이 제일 편했다.
하지만 오늘은, 마침 오늘은, 이 편의점에서 커피를 샀다. 그게 다였다. 단지 오늘만큼은 내 쪽이 '정당해 보이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편의점 앞 자리가 편의점에서 커피를 산 사람만 앉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자리는 많은데요. 뭐." 그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파라솔 아래에는 네 개의 의자가 있었고, 지금 앉아 있는 건 우리 둘뿐이었다.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괜히 시비를 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음악을 들었고, 나는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보는 그의 모습은 완전히 편안해 보였다. 아무런 갈등도, 고민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을 뿐이었다.
반면 나는 뭔가 불편했다. 내가 왜 불편한지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불편했다.
바람이 불어와 비닐봉지가 흔들렸다. 그 속엔, 아마도 다른 편의점 도시락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롯데리아 봉지 같아 보였는데, 확실하지는 않았다.
나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는 정말 철저했다. 커피도 다른 곳에서 사고, 도시락도 다른 곳에서 사고, 하지만 앉을 자리는 여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장점만 취하는 것. 커피는 맛있는 곳에서, 도시락은 저렴한 곳에서, 자리는 편한 곳에서.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성격이었다. 뭔가 일관성이 없으면 찜찜해하는 타입이었다. 어디서 커피를 샀으면 그 근처에서 마시고, 어디서 밥을 샀으면 그 근처에서 먹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컵을 들고 일어섰다.
커피는 반쯤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 때문이었다. 괜히 불편해하는 내 성격이 싫었다.
쓰레기통 옆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컵을 그대로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괜히, 그날은 그냥 그랬다. 편의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자연스러운데, 굳이 집까지 들고 가서 버렸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이 편의점에서 산 커피'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증명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공정함이라는 게 가끔 너무 사소해서,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 남자가 잘못한 일은 없었다.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문제없는 행동이었다. 편의점 앞 자리는 공공장소나 다름없었고, 누구든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만큼은 조금 억울했다.
그 억울함이 합리적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남자처럼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각자의 편의에 따라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굳이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 남자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편의점에서는 아무도 커피를 사지 않고, 모두 다른 곳에서 사온 커피를 들고 와서 앉는다면.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가정을 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공정함이라는 것은 이런 미묘한 균형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법적으로는 문제없지만 도덕적으로는 애매한, 그런 경계선상의 행동들에 대한 각자의 선택.
그날 밤, 집에서 그 편의점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세상에는 더 중요한 불공정함들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는 게 맞는 건가.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서 큰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을. 사소한 배려와 양보들이 쌓여서 사회의 온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파라솔 아래의 그 짧은 만남은 끝났지만, 그것이 남긴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정함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개인의 편의와 집단의 이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선택들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답은 없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을 계속 던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