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감정은 늘 한 장 모자라
오후 6시 14분. 나는 한강대교 옆 광고판 아래를 지나쳐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파란 말풍선을 뒤로하고 걷는 발걸음은 예상보다 가벼웠다. 35년 만에 답장을 보낸 사람의 발걸음이라기에는. 구조물이 끊기는 지점에서 나는 방향을 틀어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길은 이상하게도 낯익었다. 과거에 자주 걸었던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면 위에서 수없이 반복되던 모서리의 곡률과 보도블록의 패턴, 계단의 기울기와 골목의 여백 같은 것들이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너의 도면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완성된 도면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건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였다. 내가 설계를 시작하면 너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고, 내가 창문을 그리면 너는 창밖의 날씨부터 바꾸고 싶어 했다.
나는 평면을 그렸고, 너는 입면을 그렸다. 나는 수직을 따졌고, 너는 시선을 계산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도시를 전혀 다른 좌표계로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에게 공유라는 말은 늘 어색했다. '우리'라는 단어조차, 우리가 만든 구조물 위에서는 자주 균열이 생기곤 했다.
*
나는 그 구조를 따라 걸었다. 도면 없는 도면, 기억 없는 기억.
몇 블록을 지나 버려진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회색의 콘크리트 외벽은 금이 가 있었고,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기진 않았다. 입구 위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간판에는 "감정기류 예보소"라고 적혀 있었다.
감정기류 예보소.
이상한 이름이었다. 이상한 이름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후 6시 32분. 습도 71퍼센트.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공기는 오래된 서류 냄새로 가득했다. 종이와 먼지와 시간이 뒤섞인 그런 냄새. 그 안쪽 벽면엔 누군가의 손길이 남은 흔적들이 있었다. 핀으로 고정된 도면들, 연필로 그어진 선들, 그리고 여기저기 적힌 메모들.
내가 들고 있던 스타벅스 컵은 이미 비어 있었다.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마지막 얼음 조각 하나를 입에 넣으며 벽면을 둘러보았다.
그중 하나, 벽 끝자락에 반쯤 찢긴 도면 한 장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햇빛에 바랜 그 종이는 실제로 무언가를 완성하려던 흔적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애써 남기려 했던 한 사람의 감정 기록처럼 보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도면은 반쯤 찢어져 있어서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익숙한 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리던 방식의 직선들과, 네가 좋아하던 곡선들이 하나의 도면 위에서 만나고 있었다.
도면의 구석, 연필로 적힌 문장 하나가 종이의 결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감정은 늘 한 장 모자라.
나는 그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단박에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내 안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정확한 정의보다 빠른 침투를 가진 말이 있다. 그건 그런 종류의 문장이었다.
*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만들려 했던 모든 것들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늘 완벽한 도면을 만들려 했다. 빠진 부분 없는, 오차 없는, 완성된 설계도를.
하지만 감정은 늘 한 장 모자랐다.
내가 평면도를 완성하면 입면도가 부족했고, 네가 입면도를 그리면 단면도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을 그리고 있었고, 그 사이의 빈 공간을 메우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 그 도면 옆 여백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이제 안다. 모자란 한 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
밖으로 나왔을 때 햇살은 이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오후 6시 47분. 황혼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강대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도면을 공유하지 못했지만, 그 틈 사이 어딘가에 이 문장을 남길 수는 있지 않을까.
감정은 늘 한 장 모자라.
그 말 한 장이면 어쩌면 이 모든 구조는 무너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
한강대교에 다시 도착했을 때, 파란 말풍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보였다. 같은 "잘 지내니..? 0412"였지만, 이제는 그 문장이 완성된 것처럼 느껴졌다.
모자란 한 장을 찾은 것일까.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그 말풍선 사진을 찍었다. 첫 번째 사진은 흔들렸다. 두 번째 사진은 괜찮았다. 세 번째 사진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메모앱을 열어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적었다.
"2025년 7월 3일. 한강대교에서 0412를 만났다. 감정기류 예보소에서 모자란 한 장을 찾았다. 35년 만에 답장을 보냈다."
*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터널 속 어둠과 가끔 스쳐 지나가는 조명들. 그 무질서한 패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네가 옳았다. 완성된 도면보다 모자란 한 장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도 옳았다. 날짜를 기억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우리 모두 옳았다. 다만 그 모자란 한 장을 채우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
그날 밤 나는 오래된 스케치북을 꺼내 한 장의 도면을 그렸다. 완벽하지 않은, 어딘가 비어있는 도면을. 그리고 그 비어있는 부분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감정은 늘 한 장 모자라. 그래서 아름다우다."
4월 12일이 다시 올 때까지, 나는 이 모자란 도면을 간직할 것이다. 완성하려 하지 않은 채로.
어쩌면 그게 가장 완벽한 완성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