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 무기력함.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시도를 해 보지 않았었다. 죽을 것 같아서 간 상담에서 나는 무력감을 배웠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감정이 뭔지 아세요?
선생님의 이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하는 대표적인 한국인의 기질을 갖고 있는 나는 답을 망설였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감정? 슬픔, 괴로움처럼 부정적인 것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선생님의 답은 무력감이었다.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상태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을 지각하면 무력감을 느끼는데, 이게 사람을 좀먹는다는 것이었다. 생기려던 희망도 불씨부터 꺼트리고 새로운 도전을 방해하는 악의 뿌리였던 것이다.
그 설명을 듣고 무력감에 대해 생각하다가 무기력함과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내 시점에서 무력감은 내가 저항할 수 없는 어떤 존재에 의해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라면, 무기력함은 말 그대로 기력이 없는 것이다. 무력감은 특정 상황에서 개인에게 두드러져 나타나는 감정이고 무기력함은 좀 더 일상적인 반응에 가깝다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이 둘은 매우 유사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고, 또 사람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나는 반 친구들이 나를 투명인간으로 대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으로 정말 힘들었다. 내가 사람이 아닌 공기로 취급받는 느낌. 그 어린 날을 떠올리니 왜 무력감이 사람을 죽이려 드는 감정이라는 것인지가 확실히 와 닿는다. 무기력함은 최근에도 겪었는데, 이건 특히 잠에서 깬 아침에 매우 심하다. 팔다리가 축축 쳐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여기서 우울감이 겹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상담받은 다음날, 나는 또 악몽에 밤새 시달렸고 그 꿈에서 깨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예정된 수업에도 참여하지 않을 채로 그날은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뜨기만 반복했다.
둘 다 심리적 고통을 동반하는 감정으로, 사람들은 이 둘을 회피하거나 해결하려고 평생을 노력한다. 더 해낼 힘이 없을 때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하고, 무기력한 자신에게 자극점을 찾아주기 위해 남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당신의 모습이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다양한 세상으로의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마지막이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끝을 맺는다면, 우리는 이 두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