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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신 Apr 26. 2024

고마우신 선생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오늘도 아이들 앞에 섰다. 월요일 아침잠에서 덜 깬 멍한 표정의 몇몇 아이들과 주말 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분주한 단짝 친구들의 조잘거림 속에 아침 방송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곧 학교방송으로 스승의 날 기념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날은 우리나라의 큰 스승이신 세종대왕님 생신날입니다. 그 큰 뜻을 생각하며 여러분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의 은혜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교감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끝나고 괜히 오글거리는 어색함을 애써 지우며 다시 아침 독서를 하자며 말을 하려는 찰나 스승의 은혜 노래 제창으로 노래 부르는 아이들 얼굴을 한 명씩 찬찬히 바라다보았다. 30년 전 나도 저 자리에 서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는 그 자리가 지금 이렇게 외롭고 힘든 자리인지 그때 그 자리에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 겨울에는 추워서 선생님이 펴주시는 갈탄 난로 앞에 둥그렇게 모여 앉고 양은 주전자에 끓여주시던 귤 차를 마시며 깔깔대며 웃던 어린 시절에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 당시에도 공부는 나에게 참 고통스러운 존재였다.

“오늘은 지난번 본 시험지를 나누어 주겠어요,”

‘어쩌지 많이 틀리면 엄마한테 혼날 텐데 걱정이다….’

항상 공부 잘하는 형과 비교당하기 일쑤였던 나는 전 과목 올백을 맞아오는 형과 비교되어 온갖 저주스러운 말과 사랑의 매에 혼이 날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김00….”

그렇게 내 이름이 불렸다. 산수에서 3개나 틀린 시험지…. 두 자리 나누기 한 자리 나눗셈에서 몫과 나머지는 맞게 썼지만 그 아래 세로식을 적지 않아 틀린 시험지를 보며 또 얼마나 혼이 날까 무서워졌다.

“너 몇 개 틀렸어? 산수?” 난 내 시험지를 멀찍이 쳐다보는 반장 영철이의 검은 낯빛을 보며 말했다.

“어 난 3개 틀렸어 영철이 넌?”

“어 나도 틀렸어 3개…. 나눗셈 문제…. 난 집에 가면 혼날까 봐 걱정이야.”

“어 너도 그래?

 나도 집에 가면 이게 뭐냐고 엄마한테 형 올백이라며 형 반만 닮으라며 그 소리 들을 것 생각하니 너무나 싫어…. 학원 가기도 싫고….”

“우리 그러지 말고 같이 집 나갈래? ”

우린 한동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철아 도시락 오늘은 먹지 말자…. 이따 저녁에 까치산에 올라가서 먹으면 어때?”

“그럴까?” 우린 점심시간에 친구들 먹는 모습을 뒤로하고 같이 수돗가로 내려와 물로 배를 채우고 학교가 파하기만을 기다렸다.     

영철이와 난 손을 잡고 등하굣길을 반대로 따라 신나게 걸었다. 큰길을 따라 걷는 길은 시험과 구박으로 연결되어 있던 등하굣길과 달리 내 앞에 뻗어 있는 이 길은 기쁨과 환희의 길인 것 같았다. 따사로운 햇살과 길가에 한들한들 웃어주는 코스모스는 시험에 지친 우리 10살짜리 어린 영혼들에 따사로운 미소를 보내주는 듯하여 너무나 고맙기까지 했다.

“우리 시험지 찢어 버릴까?” 내가 신나게 걸어오던 영철이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엉?”

“이 시험지 때문에 혼날 테니 버리자고 이젠 상관없잖아?”

우린 가방을 내려놓고 길가에 있던 하수구 구멍으로 시험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밀어 넣어 버렸다. 이렇게 난 어둠에 굴레가 벗겨지는 듯한 희열에 너무나 기분이 상쾌했다.     

머리 위로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이 김포공항에 거의 다가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뜨거운 햇살도 잠잠해지는 걸 보니 더 멀리 가는 것보다 집 근처 뒷산 까치산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까먹는 것이 당연한 순서처럼 느껴졌다.

“저녁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한 후 산으로 발걸음을 옮겨 등굣길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는 보온도시락을 한 입 두 입 먹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니 집에서 혹시 걱정하고 있으실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이제 어떡하지 집 나가려고 했는데 이젠 깜깜해졌잖아….”

 딱히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만날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타협으로 집으로 돌아와 집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얼마나 걱정하시던데….” 가게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엄마가 많이 찾으셨다고 얼른 집으로 가라며 재촉하셨다. 무거운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가 일단 혼내지 않으신다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아빠에게 시험지를 버리고 왔다고 말했다가 엄청 매를 맞고 다음 날 여지없이 학교로 향하는 깊은 그림자를 느끼며 그렇게 다시 학교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학교란 공간은 나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또 어떤 공부를 좋아하는지 묻지 않고 꿈이 무엇인지 알아볼 시간을 주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뒤처지지 않게 남들과 비교당하고 경쟁을 통해 나를 지어 짜는 공간이었다. 그런 학교가 싫고 공부가 싫었던 내가 이제 다시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것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던 바람에서였는데 난 어느새 똑같은 선생님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니었던가 생각하면 내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스승의 날 옛 제자들이 찾아오느라 학교는 다시 한번 부산해진다. 그렇게 말썽부리던 아이였는데 다시 학교를 찾아온 그 아이는 어느새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었다. 나도 방황한 적이 있었으니까 누구나 그렇게 실수하며 커가는 거니까….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리라 오늘도 다짐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수업을 이끌자.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꾸중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더 잘하리라는 믿음과 사랑이 있음을 언젠가는 학생들도 알게 되겠지라는 작은 믿음을 갖자. 이 나라 모든 선생님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외로운 이 자리에서 모두 힘을 내셨으면 하고 기도해 본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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