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깜냥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깜냥깜냥 May 07. 2020

블루밍

written by 다온



심장에 꽃이 피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피지는 않았다. 자그마한 싹이 났다고 했다. 그저 어느 날, 정기 건강검진에 대한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방문한 날이었다.

꽃이 발견되었습니다. 의사는 말했다. 흔하진 않지만 종종 있는 일이죠. 주로 장기의 표면이나 장기 내부에 피어나곤 하는데, 다양한 곳에 생깁니다. 폐나 위장, 뭐…, 뇌에도 피고요. 심장도 없는 경우는 아닙니다. 치료법도 잘 나와 있어요. 그러니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구가 많이 되어 있어요. 저도 그에 대해 논문을 꽤나 썼답니다.

의사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되는 거죠. 마음 속에서만 대꾸했으나 그는 다행히도 자신의 수선을 알아차린 듯 헛기침을 하더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치료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과일나무를 키우세요.

나무를요.

네. 집에서 기를 수 있는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환자님의 꽃이 만개하기 전에 열매를 맺으셔야 합니다. 꽃이 나무보다 빠르게 성장해 활짝 피어버리면 꽃이 심장의 양분을 뺏고 결국 심장을 삼켜버릴 거예요.


결과를 받고 집에 오는 길에 꽃집에서 화분을 사 왔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이루어진 색색의 고운 꽃다발들이 잔뜩 걸린 꽃집이었다.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꽃집 주인이 나와서 애인에게 선물할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나무 화분을 보고 싶다고 했다. 꽃집 주인은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꽃집 안에는 특유의 풀내음이 가득했다. 살아 있다는 게 가득 느껴지는 공기였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도 풀내음이 물씬 나는 화분이 있다.

집에 베란다 있어요? 낮에는 밖에서 햇빛을 보는 게 좋고 밤에는 집에 들여놓아 줘요. 추우면 힘드니까. 아직은 작지만 더 자라면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 줘야 할 거예요. 잎과 흙을 만졌을 때 말랐다는 느낌이 들면 물을 조금 줘요. 하루에 너무 많이 주는 건 위험하니까 조심해요. 한 달에 한 번은 욕실로 가져가서 샤워기로 가득 적셔주면 좋고……. 꽃집 주인이 꼬박꼬박 쏟아내던 주의 사항들을 곱씹으며 화분을 바라보았다. 어려운 친구는 아니니까, 잘 키워 봐요.

나무야, 나무야.

…….

잘 부탁해.

베란다 앞 여유 공간에 자리한 작은 화분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적막한 공간 속으로 풀잎의 숨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너는 참 선명하게, 살아 있구나. 언제나 그렇듯 잠들기 어려운 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


두 시간 쯤 잤을까. 건조하게 떠진 눈을 슬슬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눈도 반밖에 뜨지 않았지만 비척비척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세수도 하지 않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분을 베란다로 옮겨주는 일이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놓고서 쭈그려 앉아 나무와 마주보았다. 잘 잤어? 난 오늘도 악몽을 꿨어. 언제쯤 나는 편안하게 잘 수 있을까? 잠긴 목소리로 나무에게 말했다. 꽤 쌀쌀해지기 시작한 아침의 공기가 잎사귀를 살살 스쳐갔다. 마치 나무가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위로해주는 거야? 나무는 끄덕여주지 않았지만 나는 약간의 기운을 내며 베란다에서 일어났다.

어제 저녁 늦지 않게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가방에 공책과 필통이 잘 있는지도 확인한 뒤 로퍼를 신었다. 신발장에서 집 안을 향해 고개를 들면 베란다가 보였다. 내가 둔 자리 그대로 햇살을 받고 있는 모습이 싱그럽다. 다녀올게.


화분을 들여오고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있었다.

더운 여름도 잘 견뎌준 나무는 나와 함께 가을을 준비 중이다. 시든 잎 하나 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분갈이도 한 번 했다. 광이 돌지 않는 부드러운 질감의 짙은 남색 화분에 그득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몇 번 물을 주는 것도 잊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날에는 나무와 한 번도 못 만나곤 했다. 그럼에도 최소한 나무를 챙기기 위해선 꼭 몸을 침대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했다. 그것을 계기로 나무를 베란다에 꺼내주는 시간에는 햇살을 함께 맞게 되었고, 밤에도 힘없이 쓰러지듯 눕기 전에 나무를 집으로 들여주었다. 차근차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게 실감나는 때에는 마음이 맑아진 기분도 들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생각하며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출판사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지 않고 사무실 앞에 서 있는 동안 마침 사무실로 향하던 편집자가 나를 발견했다.

작가님!

그리 부르지 마시래도요.

책을 그리 많이 내셨으면서 부끄러우세요?

아직 부족해서 그래요, 제가.

에이, 어서 들어오세요. 커피 드릴까요?

살가운 편집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익숙한 소파에 앉았다. 앞 테이블에 놓이는 따뜻한 커피 두 잔. 포근한 향이 사무실을 채웠다. 편집자는 노트북을 가져와 잠시 딸깍거렸다. 내가 어제 보낸 파일을 열어보는 것이다. 나도 주섬주섬 가방에서 공책과 펜을 꺼냈다.

어제 보내주신 시들 중에요…….

나는 시인이다. 시를 쓴다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아직은 부끄러운, 그런 시인. 그저 글쓰는 것을 즐기고, 마음에 떠오르는 문장을 쓰고, 그것을 엮어둔다. 어느 날 공모전에 한 번 내 본 시들이 당선되어 등단이라는 현실감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그것을 계기로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 이 순서로 갈게요! 아, 이번 시집 제목은 어떤 게 좋으세요?

글쎄요. 떠오르는 거 있으셨어요?

저는 저번보다 좀 더 생기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기요.

네, 생기요. 살아 숨 쉬는. 이전 시집은 어딘가 쓸쓸하고 외로워 바스라질 것 같았다면 이번에는 또렷하게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젠 잘 말씀해주시네요.

아니, 정말, 그땐 저도 신입이었잖아요. 제가 뭐라고 감히 작가님께 왈가왈부하겠어요. 작가님이 다 생각이 있어서 쓰신 걸 텐데 제 감상 따위가 뭐라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드백은 참 중요하잖아요. 이젠 편집자님도 잘 아는 사실이죠.

그럼요. 작가님이 잘 알려주셔서 이젠 알아요. 제 감상도 작가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요.

잘 알아주셔서 다행이에요. 그럼, 이번 책은 ‘풀잎’으로 할까요.

아, 좋아요. 잘 어울려요! 이번 원고에는 나무라던가 식물 이야기가 두어 개 있었죠? 그래서 더 좋을 것 같아요. 표지도 엷은 연두색이면 더 좋을까요?

네, 저도 좋아요. 편집자님이랑 담당자님이 이번에도 잘 만들어주세요.

네! 시안이 나오면 또 메일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해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얼른 가서 푹 쉬세요!

언제나 서글서글 웃는 상의 편집자는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활기와 다정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나를 위해줄 줄 아는 사람. 나는 언제나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지만 나를 꾸준히 작가님이라 부르며 내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 덕분에 조금 더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기도 한다. 나를 위해 움직여주며 내가 움직일 원동력이 되어주는 사람이니까, 나도 위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오늘도 순탄하게 회의를 마치고 출판사를 나왔다. 몇 달 후면 또한 순조로이 책이 나올 것이다. 그 무렵의 화분은 얼마나 키가 자라 있을까.


***


처음엔 허벅지 쯤에 가지가 닿을 정도의 작은 나무였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 인사를 위해 허리를 숙여 앉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무는 훌쩍 자라 있었다. 잎사귀 틈으로 작은 꽃이 피어나 있을 만큼.

오늘은 책이 나왔어. 지금 서점에서 하나 사 올까 해. 물론 오늘내일 중으로 집에 책을 담은 우편이 도착하겠지만, 지금 사 오는 건 네 거야. 가져와서 읽어줄게. 근데 가을 햇살이 진짜 좋긴 좋다. 그런데 바람이 더 차가워지고 나서도 널 밖에 내놔도 될까 모르겠네. 어때, 찬 바람이 불어도 햇살 아래가 좋아? 나중에 꽃집에 들러서 여쭤보거나 인터넷에 검색해 볼까? 어차피 오늘 병원에 가야 하니까 다녀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가 오는 게 낫겠다.

주절주절 화분과 대화를 하고 나서 슬슬 으슬거리는 몸을 느끼곤 베란다를 벗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직접 내 책을 사 오려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무에게 내 글을 읽어줄 생각을 하니 즐거워져 분주히 움직였다. 조금만 더 지나면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겠지. 심장의 꽃은 그렇게 사라질 수도 있을 거야.


봉오리가 맺혔네요.

봉오리가요.

네. 빛깔도 선명해지고, 조금씩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열매는 어떻게 되었나요?

꽃이 피었습니다.

많이 자랐군요. 하지만 단언하기 힘듭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따끔한 주사를 맞고 아릿한 팔오금에 붙여진 동그란 반창고를 슥슥 매만지며 병원을 나와 꽃집으로 향했다. 심장에 생긴 꽃의 존재를 깨닫고 지금의 화분을 만났던 그 날의 그 꽃집으로. 심장의 꽃도 나무만큼 자라 있었다. 봉오리가 맺힐 만큼 자라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두근대는 움직임을 먹고 있었다. 그랬구나. 미약한 끄덕임도 없이 나는 걸음을 옮겼다.

손에 쥔 서점의 봉투, 그 속에는 적당한 두께의 연두색 시집.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다다른 꽃집에서 나무와 함께 겨울을 나기 위한 주의 사항을 듣고 조용히 집으로 걸어갔다.

귀갓길이 거의 다 끝나갈 즈음, 외투 주머니에서 웅웅 울리는 진동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내가 전화하기 전까지 먼저 전화를 주는 일이 없는 거니. 너는 녹봉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잘 맞을 거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집을 나가더니 기어이 연을 끊을 생각이니. 얌전히 자라서 결혼하고 멀쩡히 살 거라 기대했는데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거니. 이제 날도 추워졌고 겨울인데 설에도 안 올 생각이니. 네 고모가,

까지 들었다.

무신경하게 통화를 종료시키고 휴대폰을 껐다. 그런 말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설득도, 나는 이러이러하니 신경 쓰지 말라는 통보도 필요 없는 무가치한 이야기뿐이니까. 대화는 두 사람 이상이 각자 참여 의사가 있을 때 하는 행동이다. 나는 내 가족과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대화를 원했던 나에게 돌아온 것은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멸시와 비난의 향연이었으니.


나는 어느새 집에 도착해 이불 속에 들어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걸음마다 꽂히던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그들이 내뱉는 말 자체가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임을 똑똑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고 나면 나란 사람 자체가 무의미하고 무가치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 존재는 어디에도 없던 곳을 집이라고 두고 살았다. 사회 속에서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내게는 그 어떤 판타지 소설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진하게 내리꽂히는 잔인한 굉음, 날카롭게 찔러대는 눈길, 작은 한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내려앉아 눈치를 보던 유년을 잊을 수 없다. 그런 내게 정을 바라고 연을 바라는 것이 진정 가능한 일인가. 나는 누군가가 바라는 대로 끄덕이고 살아온 습성을 고치지 못한 채 그 정을 내놓고 연을 이으며 나를 수천수만 번 죽여야만 하는 것인가.

익숙하디 익숙해서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지독하게도 늘 아파했다. 이와 관련한 일에 끝없이 아파하는 자신이 싫을 만큼, 왜 떨치지 못하는지 스스로를 나무랄 만큼. 참아내느라 살아내느라 흐르지도 않는 눈물 덕분에 이불 속은 건조했다. 메마른 공기 속에서 산 송장처럼 숨을 쉬며 머리 위를 떠도는 생각의 구름을 모조리 붙들어 기어이 먹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거의 폭우가 쏟아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구름이 커다래졌을 때 심장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조금씩 꽃잎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실의 창밖은 어둑해져 있었고 나는 화분을 집으로 들여주어야 했다. 묵직하고 건조한 몸을 일으켜 천천히 거실로 나갔다. 부쩍 빠르게 저무는 해 덕분에 나무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실루엣을 향해 나아가 화분에 다다르고, 나는 주저앉았다.

꽃이 있던 자리에는 자그마한 열매가 맺혀 있었다.


아프지않은사람이어디있어그저조금아프다는이유만으로나는쓸모없는사람이되어왔어어쩌면조금아픈것이아닐수도있었을텐데나는아프다는말도할수없었어나라는존재를만들어달라고한적도없는데생명을붙여놓고숨통을막아버렸어나란존재를없애버리는그지붕아래서나는어떻게살아가야했던거야그렇게자란내가할줄아는게문장을쓰는일뿐인것을내가살아남기위해목소리를내기위해유일하게할수있었던일인것을아무것도모르면서알고싶어하지도않으면서내가아무리외쳐도귓등으로도안들으면서어떻게나를핏줄이니자식이니가족이니하며엮을수있어손가락만조금접으면다세어지는나이에도끊임없이죽었어나는계속죽으면서살아왔어살려고발버둥치다가겨우탈출한곳에서도나는계속해서당신들의폭력에메말라죽어가고있었던거라고당신들이아니어도나를괴롭히는수많은것들로부터나는끊임없이도망쳐왔어도망치는것이뭐가나빠도망치지않으면살수없는데죽음외의도망칠수있는방향으로는모두달렸어어디에서어떻게피가나던간에무작정도망쳤다고내가숨을쉬며살수있는방법은그거하나뿐이었다고도망친곳중에서그어느곳도내자리가아닌것만같았어애초에나라는존재가지워진듯살아왔는데내가무엇을알수있었겠어나는그저죽은사람과도같았던거야겨우찾은돌파구에겨우찾은내사람에겨우의지하는법을배우며조금씩나는매순간매분매초조금씩숨을이어온거야여전히나는온전하게당신들이나나를괴롭게하는모든것들을떨쳐낼수는없을지언정이땅에두발을딛고서있음을조금씩깨닫기시작했는데잊을만하면이렇게나타나서나를괴롭히는거야왜당신들은내모든근간이되어나를옥죄고있어이럴때마다단숨에내가무너져내리는것만같다고그런데


네가 지금 이런 나를 위로하고 있어.

심장에 꽃이 자라고 있음을 이따금씩 잊을 만큼 너와 함께하는 하루 틈에는 기쁨이 자리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조금씩 야금야금 자라는 게 보이면 그것이 꼭 나의 목소리에 대한 대답인 듯했다. 네가 자라면 나도 자란 것 같았고, 언제나 다정하게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네가 있어서 한 발짝씩 움직일 수 있었다. 내 걸음이 꼭 앞을 향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른 길로 새어나가도 좋았고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한 여행이어도 좋았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전부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넌 잘못하지 않았어. 넌 잘못되지 않았어. 설령 잘못되었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어떠한 너도 안을 수 있어. 의미와 가치를 따지자면 충분히 유의미하고 유가치한 존재야.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아도 그저 너란 존재 자체로 네가 나와 살아 있음에 나는 다행을 느껴.


행복이란 감정은 아직 내게 낯설어서, 지금 느끼는 것이 행복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심장이 울려올 만큼 벅차오르는 안도감으로 손끝까지 저릿했다. 조심스럽게 뻗어 만져본 잎사귀가 건강했다. 고운 빛을 띠는 열매가 활기찼다.

앞으로도 너와 함께 움직일게. 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움직일게. 고마워.


그리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내 책, 지금 읽어줄게.


***


꽃이 만개하기 전에 다 시들었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씨앗만 제거하면 됩니다. 수술은 언제로 잡는 게 좋을까요. 어디 보자, 달력이…….

저, 씨앗까지는 제거하지 말고 시든 잎들만 정리해주실 수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앗까지 완전히 제거하길 원합니다. 아무래도 다시 싹이 트면 어쩌나 무서워하고 겁을 내지요. 재발 가능성이 있는데도,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날짜는 이날로 할까요?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나치는 무수한 가로수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맺을 그들의 열매와 그 빛깔을 상상하며 걸었다. 봄의 햇살을 맞으며 나를 기다릴 우리 집의, 나의 열매를 향해.


“ 나는 심장에 꽃을 품었다. ”  



____ 다온 writerdaon@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Fil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