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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Nov 02. 2020

당신의 눈물 앞에 내가 춤추진 않는다

이혼 후 이야기 #. 34



아이들은 사무실 이동이 잦은 나를 따라

또다시 아빠랑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다.

거리가 멀어서 아빠를 보러 가는데 힘이 들겠다는 염려도 잠깐, 아이들은 이제 아빠를 찾지 않는다.


엄마 눈치가 보여서도 아니고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어서도 아니다.


아빠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나름의 표현을

말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내보인다.



어릴 때는 한 달에 두어 번 만나는 그리운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을 기다렸으나 사춘기가 되어 아빠네 집에 방학 동안 머물면서 지켜본 아빠의 모습은 아이들을 적잖이 실망시킨 듯했다.


그리고 '관심'이라는 명목 하에 퍼부었을 질문들.

그 질문은 사춘기 아이들이 딱 싫어하는 물음이었다.


-장래희망이 뭐니? 꿈은 있니?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 생각이야, 계획은 있고?
-어느 대학을 갈 거야?
-전공은 정했어?
-반에서 몇 등이야? 내신 걱정은 안 돼?
-키가 크니까 운동해. 농구를 하든가 골프를 하든가.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어떤 성격인지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당장 아이들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가뜩이나 불안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는 아빠가 싫어진다고 했다.


아빠가 자기도 잘 살면서 그런 이야길 하면 우리도 듣지.
근데 아빠도 그렇게 대충 살면서 왜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너는 속도 없니! 애들을 왜 보여줘?"


전남편에게 수없이 애들을 데려다주면서,

아빠 편을 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가끔씩은 불안하고

... 그래. 불안하고 서운했다.


누가 엄마더러 그렇게 살랬어?


혹시나 그런 말을 듣게 될까 봐,

그러면 내가 버텨온 시간들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불안함에 아이들이 아빠를 챙기고 좋아라 하는 순간,

잠시일지라도 나는 서운하고 심술이 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는 남자는

아빠다.


내 아이들도 여성으로 자라면서 남자 친구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애를 하게 될 것이고, 상대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아빠와 분리시킬수록

 '별 비중이 없는 소홀히 해도 되는 상대'가 아빠가 될까 봐


엄마로 인해

남자에 대해,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엄마와는 성도 다르고 역할도 약간 다른,

하지만 엄마와 함께 힘을 합쳐 늘 우리를 사랑해주는 가족 구성원에 아빠라는 존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까 봐 염려가 되었다.


아니 애써 모르는 척 지낼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남자라는 건 다 저 모양이야.

결혼? 그런 거 다 쓸데없어. 엄마 살아온 거 봤지?

남자는 무조건 믿지 마



마음 깊숙한 곳의 나는 사실 이렇게 굉장히 삐뚤어져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혹시 아이들에게도 나와 닮은 기질이 상당 부분 있다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만 희생하면 된다고 과거의 나처럼 바보같이 살아갈까 봐 극도로 두렵다.



내가 먼저 겪어봤으니 아이들에게 사랑을 해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평생을 남자와 결혼을 불신하며 살라고

강요할까 봐 그것 또한 두렵다.



아이들이 하는 아빠 흉을 들을수록

참 한심하다는 '즐거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이 시원할 줄 알았다.


거봐, 이제 내 말이 다 맞지?

당신은 딸들한테 욕을 먹는 패배자야. 당신은 나한테 졌어.

당신이 그 정도로 처신을 잘못해왔다는 거야.



이렇게 시원하게 내뱉는 장면을 상상하며

숱한 밤을 눈물을 삼키면서 잠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반드시 아이들이 느끼는 날이 올 거야.

당신의 모습을 아이들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날이 올 거야."


유치하게도 그러면 나는 참 신날것 같았다.

그동안의 맘고생과 힘들었던 세월들을 보상받는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시킨 것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지난 세월에 대한 보이지 않는 '보상'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빠를 못마땅해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언제부턴가 서글퍼졌다.


연민도 관심도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 딱해졌다.

아이들이 아빠 손에 컸다면

아빠를 지금처럼 똑같이 싫어하게 됐을까,


아빠랑 자주 못 봐서

서로 대화할 일이 잘 없어서

서로 엇박자가 나는 것 아닐까?



엄마, 우리 어린애 아니야.
아빠가 말하는 걸 보면 우리가 더 어린 나이였어도 똑같이 느꼈을 거야.
우리가 아빠를 괜히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엄마도 느끼잖아.
아빠 사상이 좀 이상하다는 거.
아빠랑 살았으면 나는 진짜 가출했을 거야. 숨 막혀서 못살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아빠랑 계속 같이 살아? 울면서 엄마 찾아왔을 걸?




아이들은 대상이 아빠일지라도 눈에 보이는 모습에 대해 냉정했다.

자신들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아니면 아니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고 살아온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들의 당당한 그 발언들이, 엄마인 나도 가끔씩 받게 되는 공격(?)이지만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할 말 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살길 바랬다.



하지만

죽기 전까진 부모라는 역할로 있어야 하는 사람

아이들에게 유일한 아빠라는 사람이 욕을 먹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동지의식에 함께 서글퍼졌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대상

아이들의 아빠라는 것 말고는 연관이 없는 사이지만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힘들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도록

이제라도 노력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한때 가족이었던 사람이

내가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비난을 받고 있을 때

마냥 어깨춤이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혼했음에도 

각자의 삶에서 여전히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아직 백가지는 넘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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