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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Nov 25. 2020

한때는 누군가의 외숙모였다

이혼 후 이야기 #. 40





"엄마. 이 병원에 00 언니 근무하잖아! "

별거를 시작으로 그 동네를 떠나왔지만 수술 후 추적검사를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그 동네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내가 막 결혼했을 때

우리 집 가까이 살던 시누들의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었다.

별거하기 전 중 고등학생으로 올라간 시조카들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듯하다.


그 이후엔 아빠를 만나러 가는 아이들 편에 소식을 간간히 들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옛'시조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대학을 들어가고 병원 행정으로 취직을  모양이었다.


"오늘 가면 언니 볼 수 있는 거야?"


"글쎄 병원이 워낙 큰데 어디서 근무하는지 알아야지. 볼 수 있을까?"


검사를 위해 올라갔던 3층 접수창구에서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넓은 대학병원에서 저만치 앞에 있는 접수 데스크에서 접수를 받고 있는 옛 시조카가 보였다.


"애들아, 언니 저기 있네?"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채혈을 하러 간 사이 아이들은 벌써 달려가 아는 척을 하고 반가워했나 보다.


피를 뽑고 알코올 솜으로 팔 안쪽을 누르면서 접수창구로 걸어갔다.


"00야. 오랜만이네. 잘 지냈니?"

이혼하고 처음으로 본 시조카였다.


아니 별거를 하기 전 얼마 동안 시가 사람들과 단절을 하였으니 훨씬 그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시조카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색하지만 반가운 눈빛이 둘 사이를 오고 갔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을 포함해 시가 사람들로 인해 참 힘들었지만, 그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시조카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모른 척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 오늘 병원에서 옛날 외숙모를 보았다며 시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상관이 없다.


내가 숨을 이유도 모른 척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일하느라 바쁘지? 오늘 검사날이라 병원 왔어. 잘 지냈지?"

"네에..."

말끝을 흐렸다.


예전 같으면 '네, 외숙모!'라고 했을 시조카였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어엿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근무 중이라 오래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어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아이들과 병원을 나왔다.

그렇게 예전 시조카 얼굴을 보고 나왔다.

커피라도 사다 주고 싶었지만 반가운 건 나만의 입장일 수도 있는 것이니 괜한 짓을 하는 건가 싶어서 관두었다.

 





어느 날 아빠와 통화하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00 언니 다음 달에 결혼한대!"

"그래? 기쁜 소식이네. 축하할 일이야."


학업과 성적에 시달리며 여드름이 좁쌀처럼 돋아나던 여학생이었던 시누 딸이 벌써 어른이 되어 결혼이라니.

잠시 예전 기억이 났다.

막 태어난 우리 아이들이 이뻤는지 수줍음도 많고 말도 없던 시조카가 유아용 덧신을 내밀었다.


아이 발이 커지면서 오래 신지는 못했지만 두고두고 이뻐서 갖고 있었다.

"언니 결혼식에 꼭 갈 거야. 아빠도 같이 가자고 했어!"


집에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아이들을 늘 아빠에게 보내주고 고모들 집에도 가게 했지만 이번엔 예전 시가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집안 잔치에 가는 것이었다.

마땅히 입혀 보낼 옷이 없었다.


"비싼 옷을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행사에는 어느 정도 옷을 갖춰 입고 가는 것이 축하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야."


모르는 어른 결혼식도 아니고 한때는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아이스크림을 사주던 사촌언니가 결혼한다니 신기하다며 한껏 들뜬 아이들을 데리고

옷을 사러 갔다.


매일 입는 청바지, 면바지에 후드티가 아니라 좀 더 근사한 옷이 필요했다.

내 아이들이 후줄근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커트를 사고 가을 코트를 샀다.

옷을 사니 이번엔 신발이 변변찮았다.

단화도 샀다.


딸들을 데리고 많은 옷 매장을 돌면서 서로 코디를 해주며  깔깔거렸다.


결혼식이 있던 날 고데기로 머리를 매만져주었다.


"누가 보면 우리 딸들이 결혼하는 줄 알겠네."


옷까지 입혀보니 장난꾸러기 내 아이들이 아니라 명랑한 아가씨들이 서 있었다.


'이만하면 거기 가서도 주눅 들진 않겠네.

애들 옷 하나 못 입혀 보냈다고 욕하진 않겠어.'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들리지 않을지라도 괜한 흉을 듣긴 싫었다.

나와는 이제 상관이 없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고모를 고모라 생각하고 결혼한 아빠일지라도 여전히 아빠였다.


이혼을 하고 정말 좋은 것 중 하나는 그런 시가 행사에 내가 가지 않아도 더 이상 뒤통수가 따갑지 않은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빠 집 앞에 왔대!"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코트 깃을 반듯하게 펴주며 같이 나갔다.

정장을 입은 전남편이 우리 아이들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나에게는 여전히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익숙해서 이젠 이상하지도 않았다.



자세히 보니 전남편과 같이 온 여자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그저 차 안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는 모양이었다.


오늘 결혼하는 시조카의 '외숙모'로서 결혼식장에 가는 것이겠지.


우리 집 앞까지 데리고 온 것이 씁쓸했지만 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아파트 입구에 잠깐 세워두고 올라올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같이 나올 줄은 몰랐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거두고 아이들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잘 갔다 와, 뷔페에서 너무 많이 먹지 마. 이렇게 입어놓고 배 나오면 곤란해."


아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이들이 뒷자리에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마 차에 타서야 아빠의 아줌마가 함께 왔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아이들이 실망할 표정이 예상되었다.

기다렸던 사촌언니 결혼식에 가지 않을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아마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창밖만 내다볼 것이 뻔했다.


아빠만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실없는 말이나 쭉 늘어놓겠지.


내가 세세하게 알고 있는 전남편의 성향.

지금까지 내가 안고 키웠던 아이들의 성격과 반응.

그리고 보지 않아도 왠지 알 것 같은 그 여자의 심정까지.


차 안의 그 공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딱해졌다.

그렇게 전남편과 그의 와이프, 내 아이들은 한 차를 타고 휭 출발했다.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슬리퍼를 끌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말로만 듣던 남편의 전처인 나를 오늘 처음 보았을 것이다.


이유 없는 씁쓸함이 있었지만 그 여자가 짠했다.

'어떤 남잔지 알고나 만나고 있니... '


오지랖도 풍년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그 여자가 걱정되었다.



아이들이 가고 없는 텅 빈 집에 들어와 신나게 어질러놓고 간 방을 청소했다.

스타킹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아직 베이비로션을 바르는 아이들이라 로션 통도 아무렇게나 넘어져 있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 하며 꾸미고 갔는지 어질러진 방만 보아도 알 것 같다.


식구들끼리 단합이 잘되는 집안이라 결혼식이 끝나도 큰집에서 아마 뒤풀이를 할 것이다.

아이들을 그렇게 전 시가 행사에 보내 놓고 다음날까지 혼자 시간을 보냈다.


라면을 끓였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빵조각을 한쪽 무릎을 세우고 식탁의자에 앉아 뜯어 물었다.






형제가 많았던 시가에서 나는 외숙모였고,

작은 엄마였다.

처남댁이었고 올케였다.


나이는 20대였는데 나와 또래였던 큰 시조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금세 작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역할은 참 많았다.

책임도 짐도 많았다.

한 남자를 선택한 후 나에게 주어진 호칭은 참으로 많고도 다양했다.


그 많은 관계가

이혼으로 한 번에 무효가 되었다.


"고모들이 엄마 이야기는 해?"


"응, 가끔. 엄마가 (난폭) 운전은 잘했다고 이야기해. 그리고 00 오빠는 술 먹으면 엄마 생각난다고 엄마 얘기 해. 외숙모 보고 싶다면서."


"외숙모는 따로 있잖아 이제. 엄마는 외숙모가 아니지."


"아 몰라, 그냥 그렇게 이야기해."


시누가 많아서 시조카들도 많았다.

내가 아이들을 낳을 때쯤 시누들의 아이들은 다들 고만고만한 중고등학생들이 되었다.


명절에 우리 집에 모이면 시조카들과 이야기를 곧잘 했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라 자신의 엄마 아빠와는 대화를 퉁명스럽게 했지만 내가 주방에서 앞치마를 벗는 시간이 오면 슬금슬금 곁으로 찾아오는 시조카와 대화를 나눴다.


그것이 기억에 남았나 보다.


이제 그 시조카들은 다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군 복무도 마쳤다.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은 전남편과 시가 어른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빠네 놀러 가는 아이들 편에 간간이 소식과  sns에 올라온 근황을 보면 꼬꼬마였던 어릴 적 얼굴들이 기억난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겐 어린 그 모습으로 남아있는 옛 시조카들.

어떤 인연은 얼른 잊고 싶지만

또 어떤 인연들은 고이고이 접어서 마음 한구석 따뜻한 아랫목에 잘 덮어두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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