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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넉넉 May 03. 2022

재재가 만드는 할아버지들의 눈주름

화요일 에세이

재재의 할아버지들.

나와 남편에게는 각각 아버지인 존재들.     


재재를 보는 아버지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요즘 나와 남편의 흥미거리이다. 아버지들은 재재를  때마다 일순간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배시시, 하다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웃고 있다. 눈가의 주름이 접부채 종이 펴지는  마냥 자르르 깊게 접히며 일렁인다.


눈에서 꿀이 뚝- 뚝- 떨어지는 것 같다. 재재의 사진을 받고 응답 메시지를 보내올 때도 아버지들은 모종의 감수성이 폭발한 듯 이모티콘 남발이다. 아버지들에게서 뭔가 ‘분홍분홍한’ 기류가 흐르는 듯하다.      


생소하다.

아버지들이 재재를 보며 말없이 웃을 때, 가장 큰 소리로 하하 웃을 때, 나와 남편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아빠들이 변했다.”

    

아버지들이 변한 걸까, 아니면 원래 당신들 안에 이렇게 묻고 따지지도 않고 활짝 웃을 수 있는 감성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어릴 때, 당신들은 우리에게도 이런 웃음을 보여주었는데. 무엇이 시간과 함께 손을 잡고 우리 아버지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조금씩 앗아갔을까.     


재재가 없었더라면, 재재가 조금 더 세상에 늦게 왔더라면, 성인이 된 우리는 아버지들만의 수줍고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켜보지 못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대답이 혀끝에 말라버린 쌀알처럼 맴도는 것 같다.      


우리에게 한때 큰 어른이었던 아버지들.

그런 아버지들에게 어느새 우리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고 있다.

우리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지나온 삶의 지난함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아버지들에게 순수한 웃음을 회복하도록 도울 엄두가 안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게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며 살아오지 못한 아버지들의 삶을 한 발짝, 한 발짝 걸어보며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마음으로 용서하고 마음에서 화해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남자 어른’이 쉬이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눌러야 살아갈 수 있었던 시기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재재를 바라보는 아버지들의 순수한 웃음에서 깨달을 수 있다.      


*     


작은 손가락, 발가락.

꼬물거리는 작은 몸짓.

꺅꺅 순수한 웃음소리.

홀린 듯 살짝 꼬집어보고 싶은 보드라운 피부.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에 취해 어느 누가 웃지 않을까.

하물며 인생의 고단함을 몸으로 지나온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때 묻지 않은 해맑은 아이의 소리와 몸짓이란 그 어떤 ‘몸과 마음에 좋다’는 것조차도 무력하게 만드는 치유와 생명의 힘 아닐까.   

   

모두가 힘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재재로 인해 행복해진다. 재재를 볼 때 입가에 비집고 나오는 기쁨을 숨길  없다.

재재의 존재가 한없이 감사해지는 순간들 중 아버지들의 눈가 주름이 깊게 파이며 웃음이 나오는 순간은 느린 영상처럼 복기하고 싶어 진다.     


재재를 통해서라도 아버지들의 부드러움과 무력하게 내어주는 웃음을 자주, 오래 보고 싶다. 재재를 통해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의 웃음이 한때 여과 없이 우리에게 보여주던 사랑이라는 것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재재를 통해 아버지들은 쑥스러움과 자존심을 무릅쓰고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사랑해요. 나의 아빠, 아버지. 재재 할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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