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에세이
"드디어 둘째를 임신했다. 5개월의 노력 끝에."
8주 전의 일기에 썼던 첫 문장이다.
어렵게 임신이 되었건만 7주차 되던 날 초음파 검사 결과는 임신 때의 환희를 불러오지 못했다. 초음파 영상에서 아기도, 아기의 호흡도 없어 ‘계류유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임신 7주차가 되면 아기와 심장소리와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한 동안 지낼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나의 뱃속 상황은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초음파 영상을 보며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던 담당 의사 선생님은 조용히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남편과 재재도 선생님 뒤에서 초음파 영상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그때 남편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나와 남편은 서로의 얼굴만 봐도 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떤 의미인지 알았으니까. 그 찰나에도 아주 미약한 생명이 짧은 시간 다녀갔다는 것에 마음이 저릿저릿 아려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며 걱정 어린 표정을 주고받는 동안 재재는 순수하게 초음파 영상을 보며 말했다. “아빠, 저기 보름이 있어?(나의 임신을 위해 기도해주던 지인이 ‘보름달이 선명하게 가까이 다가왔다’며 태몽 비슷한 꿈 이야기를 선물처럼 들려주기도 했고, 또 보름달이 뜨던 추석에 임신사실을 알아서 태명을 보름이로 정했었다.)” 그 말을 듣고 핑, 눈물이 삐져나왔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재재의 생일이었다. 재재에게는 가장 신나고 행복한 날, 보름이는 제자리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상하고 어지럽고 슬펐다. 3년 전 같은 날 한 귀한 생명이 우리에게 왔는데, 같은 날 오늘 한 생명은 조용하게 사그라졌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면서 한동안 내 마음에 딱 맞는 감정과, 재재에게 들려줄 대답을 찾지 못했다. 조용한 어른들 사이에서 어린 재재는 어떤 무거운 기운을 감지했는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저와 남편과 초음파 영상을 번갈아보기만 했다.
주변에서 많이들 겪는 일이기도 해서 평소에 ‘계류유산’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찾아보면 관련 정보(원인, 경과, 재임신이 가능하도록 뱃속에 남아있는 아기집 등을 제거하는 소파술 등)를 쉽게 얻을 수 있어 충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엄마 뱃속에서 숨을 멈춰 예비부모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가져다준다는 소식도 종종 들어본 적이 있고, 여러 번 유산의 아픔을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내가 겪은 아픔은 그런 바윗덩어리 같은 소식들에 비할 정도로 크지 않구나, 또 나만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또 극복하고 살아가는구나, 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몸에서 너무 생생하게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몸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직접 일어나는 현상들이 정말 생생해서 한동안은 제 아픔 밖에 어떤 것에도 주의를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입덧이 있다가 어느 날부터는 임신 전처럼 너무 멀쩡해져 은근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고, 일상생활을 하다가 몇 번씩 극심한 아랫배 통증을 느끼기도 했고, 유산 판정에 따른 수술을 받은 이후에 일주일 간 지속됐던 아릿한 배통증, 배의 수축과 팽창이 반복되면서 앉고 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나와 남편이 뭔가 잘 준비되지 못했던 걸까, 그 작은 생명을 몸에 품고 너무 바쁘게 빠르게 살았던 걸까, 하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임신까지 가는 과정에서 염색체 이상으로 흔히 이렇게 된다 하는 말을 들었어도 내 몸과 마음에서 무심히 흘러가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막기가 힘들었다. 이런 생각들로 나 스스로를 꽤 괴롭혔다고 느꼈을 때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남편, 재재,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 천천히, 그리고 더 소중히 내 자신을 돌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과 속이야기를 다른 때보다 더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아주 잠깐 생명 비슷한 것이 다녀갔는데도 이렇게 몸에, 마음에 큰 변화가 있구나. 처음 생명이 생겨났다고 믿었을 때는 힘들었던 몸의 변화를 오히려 반가워했었지. 나는 분명 임신을 알았던 순간부터 행복과 감사함을 누렸고, 보름이의 이름을 정하고 보름이와 수없이 조용히 나누던 대화를 기뻐했고, 남편과 재재와 함께 보름이를 환영하기 위한 준비를 막 시작했고, 재재가 서운함보다 설렘으로 동생을 만날 수 있도록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약 7주간의 시간이 9개월에 비하면 아주 짧지만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지. 그 귀한 시간들을 돌아보면 보름이와 지금이라도 작별인사를 하며 슬퍼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걸. 의학적으로는 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 몸에 들어찼던 생명감과 남편과 재재와 벅참으로 나누었던 보름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될 것이기에 나는 잠시라도 멈추어 엉엉 울어내도 괜찮겠다. 엉엉 울어내고 일어나면 돼. 다시 보름이를 만나게 되면 슬픔보다 희망과 기도로 그득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약 3일 동안 나는 그렇게 눈물어린 혼잣말과 글쓰기와 기도로 보름이와 조용히 작별인사를 했고, 조금씩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남편과 재재는 보름이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나의 회복을 기다려주었고, 그간 “마누라[엄마]가 가장 중요해.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라며 단단하게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고 나니, 그제야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위해주던 사람들의 위로가 내 귀에 들어왔고, 위로의 단어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골라 건네는 그들의 문장들이 마치 포근한 이불처럼 나를 감싸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내 마음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데,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이 마음을 전하지 않아도 귀한 위로의 말들을 해준 그들은 내가 회복해 잘 지내는 모습만 보고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다.
최근 어느 날 밤, 재재와 대에서 온갖 몸장난과 동화책 읽기를 하고 베개에 기대어 앉아있을 때, 재재가 갑자기 내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재재: 엄마, 보름이는 여기 있어.
나: 응? 엄마 배 안에 보름이가 있어?
재재: 응. 보름이 있어.
나: 정말? 그걸 재재가 어떻게 알아?
재재: 보름이는 내 동생이야. 보름이가 엄마 배에서 뽕- 나오면 내가 장난감이랑 줄 거야.
나: (사랑스러움에 재재를 껴안으며) 아이쿠 우리 아들. 재재가 그렇게 말하면 보름이가 언젠가는 엄마 배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재재 동생으로 올 거야, 맞아.
재재: 응! 보름이 나올 거야.
나: 맞아. 그럴 거야. 재재 고마워.
재재: (아빠에게 귓속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며) 엄마, 나랑 아빠가 있으니까 좋지?
나: 그럼! 지금은 재재랑 아빠가 엄마 옆에 있어. 그래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너무너무 행복해.
태어나 3년밖에(3년이면 강산이 변할 수도 있긴 하지만) 살지 않은 이 조그만 아이가 어떻게 엄마의 아픔과 바람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를, 그것도 달이 훤하게 뜬 밤에, 문득 꺼내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물론 재재는 나에게 감동과 감사의 눈물을 가져다 줄 의도가 아니었을 테지만, 생각나는 것을 한 더 고려하는 것 없이 말했을 테지만, 재재의 모든 것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날 올려다보는 재재의 맑은 눈, 내 큰 손가락 몇 개를 꼭 쥐며 꼼지락거리는 따스한 작은 손가락. 내 가슴팍에서 좌우로 아래위로 흔들거리는 사랑스러운 얼굴. 확신에 차 말하는 모습,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엄마' 하듯 내 곁을 지켜주는 큰 마음 작은 아이, 재재.
그리고 큰 마음 큰 존재, 내 남편. 슬픈 소식을 알았을 때부터 나름대로 회복한 지금까지 자기 눈물은 삼키며 조용히 안아주고 기다려준 남편 덕분에 나는 보름이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고, 잘 울어내고 일어날 수 있었다.
계류유산 판정과 수술 후 열흘 정도가 지나고, 나는 재재와 남편과 함께 어떤 소소한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우리 모두 빵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이 마치 슬로모션(slow-motion)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재재의 깔깔대는 함박웃음, 남편이 활짝 웃을 때 부채꼴처럼 접히는 눈가의 주름, 제 목에서 막힘없이 터져 울리는 웃음소리.
참 이상하다. 충분히 울어냈더니, 나 자신과 이야기 나누고 남편과 재재, 그리고 귀한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과 말길 위를 걷고 나니 이전보다 더 힘이 난다. 지금 나의 언어력으로는 ‘이상하고 묘하고 감사하다’라는 말로밖엔 설명이 안 된다. 분명한 건, 내가 얼마나 소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얼마나 받기 어려운 선물을 받고 있는지를, 내가 얼마나 이 삶을 소중히 여기며 용기 내어 가꾸어가야 하는지를, 내가 얼마나 겸손하고 겸허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남편과 재재,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증거로 알 수 있다.
내가 최근 이렇게 경험한 일은 어쩌면 당신이 겪은[겪고 있는, 겪을] 어려움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일 수 있고, 혹은 잘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다. 공감이 된다면 그만큼 반갑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만나는 소중한 모든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잘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잘 돌보고 챙기면 좋겠다.”
나에게서 소중한 것이 멀어지거나 사라졌을 때, 자연스럽게 슬퍼지는 마음을 눈물로 이야기해도 좋고, 울면서 써내려가도 좋고, 의지하고 싶은 그 사람에게 기대어 한없이 울어내도 좋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으로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상처를 통해 내가 삶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알았다, 어떻게 울어내는지 알았다, 얼마나 소중한 이들이 내 곁에 있는지 알았다, 그 일이 있었기에 내 몸과 마음을 잘 챙기는 방법을 알았다, 그때 그 일이 있었기에 내 주변의 귀한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을 때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존중하고 필요한 챙김을 줄 수 있는 지혜가 생겼다, 성숙함이라는 한 계단을 힘껏 올랐다, 라고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