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에세이
어느 금요일, 4시간 연달아 강의를 하고 완전히 목이 쉬어버렸다. 목이 따끔거리고 편도가 붓는 듯하더니 급기야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열이 올라 잘 쉬어주어야겠단 생각보다 코로나19 시국이어서 정신은 더 예민해졌다. 자가 키트 검사 결과가 음성인 것을 확인하고 일단 모든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는 나를 보며 재재는 연신 나와 남편에게 질문했다.
엄마, 아파?
아빠, 엄마 아파?
엄마, 어디 아파?
엄마, 내가 만져줄까?
엄마, 물 마실래?
재재가 두 돌이 되기 전에는 내가 아파도 기어코 내 옆에 붙어 있으려 하고 남편보다는 내가 함께 놀아주길 원했는데, 재재가 나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재재의 섬세함과 다정함에 참으로 감동했다. 감사하고 고마웠다. 함께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는 남편과 재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희미해지는 목소리를 들었다.
재재야, 엄마 아프니까 우리 거실로 가서 놀까?
응, 아빠. 엄마 아프니까 우리 거실로 가서 놀자!
이 사랑스러운 말소리가 내 가슴을 다독이는 것처럼 달콤했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잠에 푹 빠졌고 나는 하루가 지나 침대에 실같이 들어오는 빛을 맞이하며 깨어났다. 오래간만에 길게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개운한 기운이 들었지만 여전히 목구멍에 무거운 추 하나가 박힌 것처럼 따갑고 침 삼키는 것도 조금은 힘에 부쳤다. 얼마 만에 이렇게 힘들어보나.
욕심이 과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완벽하게, 시기에 맞게 다 하려는 욕심이 건강에 적신호를 불러왔다. 개인 프로젝트, 글쓰기 모임, 강의, 강의 준비, 연구, 연구 지도, 운동 등을 열심히 진행하고, 거기에 사랑스러운 아들을 돌보느라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 플래너에 적힌 분단위의 계획 하나하나를 실행하는 그 순간에는 몰입해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이것들을 더 오래 지속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잘 쉬어주는’ 시간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니, 넉넉하지 못할지언정 나의 신체와 속도에 맞게끔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것들을 계획에 맞게 이루어내려는 욕심에, 쉬는 시간은 낭비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언제 잘 쉬었던가. 돌이켜보면 재재가 신생아일 때, 하루 전체를 온전히 재재에게 집중하며 재재의 시간표에 맞추어 지낼 때가 초등학교 방학 때 이후로 가장 맘 편히, 넉넉히 쉬었던 시기였다. 좋아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은 많이 못했을지언정 진정한 ‘쉼’의 기간이었다. 호흡하기, 한 숟갈 한 젓가락 음미하기, 빨래가 끝난 후 하나하나 개켜기, 재재의 낮잠 시간 동안 따뜻한 차 한 잔 손에 들고 밖을 내다보며 멍 때리기, 종종 재재의 낮잠 시간 동안 나도 함께 단잠 자기, 몸 이곳저곳에 집중하고 불편한 부분 풀어주기, 남편은 밖에서 나는 집에서 그날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소소한 대화 나누기,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온전히 공생하는 것 같은 아기 재재의 꼬물거리는 움직임을 보는 것에서 느끼는 평안한 행복을 말 그대로 ‘누렸었다’.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은 재재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 멈췄다. 약 1년 반 후에 거대한 알람이 울리기로 예약되었던 것처럼. 재재의 등원을 시작으로 나는 천천히 속도를 밟은 게 아니라 당장 플래너를 꽉꽉 채우며 내가 1년 반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빠른 시간 안에 보상하려 가속페달을 세게 밟은 것이다. 저녁에 재재와 함께 9시쯤 누워 재재를 토닥토닥 재우는 동안 눈은 천장에 박아두고 껌뻑껌뻑하며 이런저런 생각과 계획을 하다가 10시쯤 잠이 든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리면 로봇처럼 일어나 그때부터 온갖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탈이 나고 말았다.
밥 먹는 시간 약간, 빨래나 설거지 등 가사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우리 중 누구 한 사람이 아파 부득이하게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하거나, 공휴일이나 주말, 짧은 방학처럼 특별한 날에는 남편과 재재와 온전히 함께. 이 시간들에도 넉넉하게 쉰다고 생각해서 재재가 어린이집에 가기만 하면 홀로 있는 시간에는 미친 듯이 달렸다. 잠시라도 쉬었을 때 뭔가 생산적이지 못했던 것에 조급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내 머릿속의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지 못했다. 머릿속에 가득 쌓아두고 계속 복권 당첨용 탁구공처럼 빙빙 돌리면서 오늘은 뭐 해야 하지, 내일은 뭐 해야 하지, 오늘 저녁은... 등등등 모든 걸 제대로 해내려고 계획 속에 나를 가두었다. 재재와,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 자체는 나에게 지극히 소중한 시간이지만 계속 에너지와 몸을 사용해 재재를 돌봐야 했기에, 뭉친 근육과 뻐근한 허리, 함께 먹어 불린 뱃살에도 정기적으로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운동은 안드로메다 어딘가에 던져놓은 사안이었다.
그렇게 나는 잘 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좋은 쉼’이란 아주 좋은 선물을 왜 스스로에게 적당히 주지 못했을까.
마음속 서랍 좀 정리해보자.
돈 벌려고. 돈 벌어서 어디에 쓰게? 여행도 가고, 재재가 좋아하는 것들도 사주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베풀기도 하고, 훗날 부모님들께 다박다박 용돈도 드리고, 차곡차곡 모아서 빚도 갚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도 가고, 남부럽지 않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면 해서.
성과를 인정받으려고. 누구한테 무슨 인정을 받게? 부모님에게 내가 ‘사람 구실’ 하고 있다는 걸. 교수님에게 내가 이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지인들에게 내가 뭔가 대단한 걸 하는 사람이라는 걸. 여러모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안정적인 자리에 가려고.
음...
마음 서랍 정리를 하고 ‘왜 잘 쉬지 못하는가’에 대한 목록을 써 내려가면서 나는 가벼운 한숨과 씁쓸한 웃음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이런 이유들로 뭇매질하듯, 내 안에서는 자신을 몰아넣고, 집 밖에서는 자신을 몰아세웠다니. 이유 하나하나가 고개 끄덕여질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지만 결국 정신적 자본보다 경제적 자본을 쌓고, 나의 내공에 의한 스스로의 인정이 아니라 내 밖의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므로 본질에서 약간 벗어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위해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었다니. 가장 중요한 것, 나. 나의 몸. 나의 마음, 나를 위한 시간 말이다. 경제적 자본도 타인의 인정도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추구하고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얻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내가 나에게 ‘좋은 쉼’을 꾸준히 주지 못한다면 나중에(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내가 원했던 성과뿐만 아니라 건강 악화와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 단축이라는 결과도 어쩔 수 없이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3일을 따가운 목구멍과 코감기를 달고 살다가, 테이블에 차분하게 앉았다. 1시간 동안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중간중간 눈을 감고 감미로운 음악에 휘감기는 느낌을 만끽하며, 자본주의와 완벽주의에 입각한 생산성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플래너에 계획을 다시 써 내려갔다. 일기, 육아 에세이, 기도, 운동, 음악 듣기, 남편과의 시시콜콜 이야기, 멍 때리기 시간을 마련해 넣었다. 그리고 작업 사이사이에 쉬는 시간도 5-10분씩 늘렸다.
이렇게 계획을 다시 짜고 나니 일주일에 내가 온전히 몰입해 일할 수 있도록 정해진 시간은 약 25시간 정도다. 일주일에서 약 5시간 정도를 ‘좋은 쉼, 평정을 되찾는 시간’으로 정했으니 주요 업무들 중 한두 개 정도는 이전보다 못하거나 반절씩만 할 수 있게 된다. 약간의 걱정이 올라옴을 느낀다. 아휴, 그래도 괜찮다. 그래 봤자 10개 중에서 한두 개 정도일 뿐이다. 내가 잘 쉬지 못해 탈이 나는 시간을 줄이면 그것대로 시간을 얻는 것이니까. 아, 그래도 좀 아쉽긴 하다. 아니, 그렇지만 아프니까 새삼 알겠더라.
건강하고 볼 일! 나를 잃지 않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
내가 아프니까 재재가 나를 걱정하는 것도 마음 무거운 일이고(물론 자녀가 날 위해 걱정한다는 사실 자체로 치유적이긴 하다!), 남편이 나와 재재를 돌보는 것에도 미안하고(물론 잠깐 동안 남편이 날 대신해 중요한 가사를 온전히 책임져준다는 사실도 굉장히 힘이 나는 일이다!), 무엇보다 아파서 하루 이틀을 통째로 쉬는 것(물론 다시 또 아프다면 기꺼이 쉬어야겠지만!)도 참 아까운 일이다.
건강하려면, 건강하고 싶으면 그만큼의 노력은 해야겠다. 예전에 입었던 예쁜 원피스와 바지와 치마 친구들을 다시 만나려면 운동해서 뱃살을 빼야겠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가족과 오래오래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준비)도 하고 놀러 다니려면 체력 유지는 필수다!
조급함은 내려놓고 ‘좋은 쉼’이 더해진 플래너에 충실해야겠다. 더 잘하기 위해서 조금 더 잘 쉬어가야겠다. 이렇게, 재재에게 ‘일도 잘하고 쉼도 잘 갖는 사람’으로 멋진 모델이 되어 값지고 가치 있는 삶의 태도를 재재에게 물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