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움이 폭발하던 날 마침 네가 없었다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남겨 놓는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너와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던 드라마의 대사처럼 기쁜 일이 있어서, 슬픈 일이 있어서, 기념일이라서, 너무 평범한 날이라서, 나의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준다는 건 참 특별한 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설명되는 그런 일 말이다.
차라리 그 자리를 남겨두지 말 걸 그랬다
그냥 빈자리로 두고 시간이 되는 누구든 와서 그 자리를 채우도록 공석으로 남겨둘 걸 그랬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들에도 그 '빈자리'가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어져 버려서, 네가 아니면 절대로 채울 수가 없어서 말이다.
너에게만은 실망하고 싶지가 않아서 기대도 하지 않겠다던 나를 설득해 바득바득 나의 슬픔을 나누게 하더니 너는 그렇게 쉽게 뒷모습을 보인다. 힘들다고 말을 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는 너의 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어떤 이유든 이런 상황이 겹쳐지고 나니 나는 갑자기 나를 원망하게 되어 버렸다. 내가 조금 더 평탄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너도 이렇게 곤란하진 않을 텐데 싶어 나도 모르게 내가 작아져 버리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충분히 슬픔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결심한 시간이었다. 많이 작아져도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시간이었다. 약한 모습이든 강한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한 시간이었다. 너는 그 시간을 함께하게 된 것이 좋다고 했다. 그 시간을 함께 해주겠노라 그렇게도 달콤한 약속을 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것보다 값지다고 생각했고, 내 옆의 네가 점점 더 소중해졌다. 가장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 너무 복잡해서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어 어떤 위로도 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너는 올 수 없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 이후로 전화 한 통이 없었다.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걸 알지만 그 상황이 너의 빈자리를 채울 순 없었다. 애초에 너는 그 시간을 함께 하겠노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서러움이 북받쳤다. 지금 내 감정을 너는 충분히 모를 테니 자존심도 굽히고 설명까지 했는데 너는 '그렇구나'라는 답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하길 좋아하던 너는 전화 한 통 없었다. 너는 늘 나더러 배려가 많다고 했는데 너는 모른다 나는 배려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오늘 이 글을 쓰고 내일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 글을 쓰는 것은 분출되는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나타내는 것 또한 다양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한 나와의 약속에 포함된 일이기 때문이다. 너는 분명 그런 내가 좋다고 했다.
온전히 내 관점에서 서술하는 이 상황이 너는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지금 내 모습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함께할 '나'의 전용 자리가 너에겐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결국 나의 힘든 시간을 함께할 사람이 14년 된 지기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오늘 나는 애꿎은 너에게 마음을 열었던 내가 억울해 한참을 더 울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폭식을 했고, 와인 두 잔을 와인 잔 가득 마신 뒤에 평소에는 쓰지 않을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를 남겨둔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매일 채울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자리가 소중하다는 걸 너는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겐 1도 서운하지 않은 일이 '너'이기 때문에 서운하고,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일을 너의 앞이기 때문에 맘 놓고 울고 넘어갈 수 있으리란 기대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너의 빈자리는 내가 가장 외로운 순간마다 도드라진다. 상황의 문제라고 하지만 한없이 좁아진 내 마음은 쉽게 용납할 수가 없다. 비워두지 말 걸 그랬다. 너의 빈자리. 열지 말 걸 그랬다.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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