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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r 29. 2017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만드는 차이

올해 대학생이 된 동생이 밥을 먹다 말고 물었다.


누나,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뭐예요?


여덟 살 터울이라 그런지 나에게는 늘 아기 같은 동생이 이런 질문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내게 큰 답을 기대하는 것 같은 눈치는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멈칫! 그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동생은 언제 질문을 했냐는 듯 음식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 같아." 동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그 순간 머리에서 두둥실 떠오른 것이라 논리적으로 정리할 순 없었지만 간단한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못생긴 영돌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영돌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난 영돌이가 좋아.
근데 영돌이가 잘 생긴건 아니지."라고 말할거고
영돌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거야.
"영돌이는 못생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더라고."


동생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해놓고도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지만 적어도 내게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단점까지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그러려니'하거나 적절한 때에 이야기를 해서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단점'을 이야기하긴 쉽지 않다. 너무 힘들어서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단번에 그 단점이 고쳐지지 않더라도 언제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사랑해'가 되어버린다. 기대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이런 것들을 쌓아두다가 한순간 마음이 상해 모진 말들을 와르르 쏟아내지만 곧바로 후회한다.


고치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만으로도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그렇다.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긴 하지만 사랑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진 않다. 사실 '가족'이란 존재가 지긋지긋하다가도 별 거 아닌 한 마디에 깊은 앙금이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그리 큰 노력 없이도 상대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기적 같은 상황이다.


콩깍지가 씌었다고도 하고, 정이 들어버렸다고도 하고, 일종의 병에 걸렸다고도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동생은 이런 저런 설명을 듣더니 "아주 좋은 차이점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누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임을 거듭 강조한 뒤 내가 가장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혹시 누구 좋아하니?


동생은 몸을 배배 꼬며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더니 결국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라고 실토한다. 새내기에게 3월의 CC는 독약 중의 독약이라고 거듭 연설을 하는 내게 같은 학교 사람이 아니라고, 이전부터 마음에 두던 이가 있었다면서 '그녀'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꼬맹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동생의 '그녀'라니!


괜히 내 마음이 간질간질 봄바람에 마음이 다 뒤숭숭하다. 멀리 떨어져있어 자주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메시지 하나, 전화 한 통에 마음이 설렌다며 내게 배운 걸 써먹는 동생이 사랑스럽다. 가끔 제멋대로 말도 안 듣는 못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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