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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24. 2017

나의 엔젤 (Mon ange)

이젠 눈을 뜨고도 널 느끼는 법을 연습할게 

이름이 "나의 엔젤(Mon ange)"인 소년이 있다. 세상에서 나의 엔젤의 존재를 아는 건 딱 두 명의 여인 뿐이다. 한 명은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나의 엔젤을 낳고 기른 나의 엔젤의 엄마이고, 또다른 한 명은 눈이 보이지 않아 친구가 없는 외로운 소녀 마들렌이다. 


어둠과 적막 그리고 외로움의 심연에서 나의 엔젤은 한줄기 빛처럼 태어난다. 조용한 시골의 한 정신병원에서 슬픔과 절망에 잠긴 엄마에게 나의 엔젤은 삶의 유일한 희망이 된다. 나의 엔젤은 엄마가 들려주는 오두막집 이야기를 즐겨 듣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청력과 후각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마들렌을 사랑하게 된다. 

나의 엔젤에게 손을 내미는 어린 마들렌


나의 엔젤의 냄새를 맡고, 나의 엔젤의 피부를 느낄 수 있는 마들렌은 나의 엔젤과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가 된다. 나의 엔젤에게 의지해 새로운 길을 걷기도 하고, 더 힘차게 그네를 타기도 하고, 나의 엔젤이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물 속에서도 나의 엔젤의 존재를 느끼는 마들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 비밀스러운 존재로 태어난 나의 엔젤에게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마들렌은 유일한 친구가 된다. 보이지만 볼 수 없는 소녀 마들렌과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소년 나의 엔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특별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들렌과 함께 특별한 일상을 보내는 나의 엔젤
엄마의 오두막에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나의 엔젤과 마들렌


오직 서로의 존재로 꽉 찼던 두 사람의 일상은 마들렌이 시력을 되찾는 수술을 하러 뉴욕으로 가면서 사라진다. 마들렌 말고 유일하게 나의 엔젤의 존재를 사랑한 나의 엔젤의 엄마 또한 세상을 떠난다. 이제 나의 엔젤의 존재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합병증이 찾아온 마들렌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걸린다. 앞을 볼 수 없던 소녀는 앞을 볼 수 있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 돌아온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인 나의 엔젤은 마들렌 앞에 서는 것이 망설여진다. 


마들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나의 엔젤


마들렌의 간절한 마음에 나의 엔젤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녀는 애써 뜬 눈을 다시 감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살결을 느낀다. 앞을 보지 못하던 소녀로 돌아가 나의 엔젤이 알려주었던 나의 엔젤의 오두막에 찾아간다. 자신에 대한 마들렌의 마음을 느낀 나의 엔젤은 마들렌에게 투명한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나의 엔젤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오두막집을 찾은 마들렌


영화는 형체가 보이지 않는 나의 엔젤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눈을 깜빡이고, 서서히 고개를 돌리고, 숨결에 따라 미미하게 흔들리는 앵글이 나의 엔젤의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관객은 금세 보이지 않는 소년 나의 엔젤이 되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녀 마들렌을 바라본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천천히 깊게 그녀의 존재를 아로새기는 나의 엔젤의 시선에 이입하게 된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본다는 것이 제한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마들렌
나의 엔젤의 존재를 분명히 느끼는 마들렌


어렵게 뜬 눈을 다시 감고 나의 엔젤을 만났던 마들렌은 나의 엔젤이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동시에 다시 눈을 감아 그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도 그를 느낄 수 있는 연습을 하기로 한다. 이제 마들렌은 나의 엔젤이 없이는, 나의 엔젤은 마들렌이 없이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둘은 변화된 모습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며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절절한 사랑을 이어간다. 

 

"우린 마술로 돈을 벌 수도 있을거야"라고 말하는 마들렌


영화를 보다가 언뜻 동화 <인어공주>가 생각났다. 동화에서 인어공주는 첫눈에 반한 왕자의 곁에 가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는다. 슬프게도 왕자는 자신의 생명을 살리고 목소리마저 잃게 된 인어공주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 한 번 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인어공주의 슬픈 결말과 다르게 영화 <나의엔젤>은 서로가 서로이게 만드는 강렬한 감정을 부여한다. 사랑은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더욱 강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같다. 


몽환적인 색감과 화면 연출이 영화 속 이야기와 어울려 마음에 남는다. 나의 엔젤의 시선을 따라 눈을 깜빡인다. 익숙한 분위기의 영화는 아니지만, 비현실적인 그들의 사랑이 쌀쌀한 가을바람과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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