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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Jul 17. 2018

유난스러워 정말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


유난스럽다 [형용사]
언행이나 상태가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


'유난스럽다'는 보통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된다. 단체로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 중식당에 가면 짜장면, 찌개 집에 가면 김치찌개로 메뉴를 통일시키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보통'이 아니라는 건 나쁜 의미인 경우가 많다. 물론 카페에 가서 라테, 중식당에 가서 짬뽕, 찌개 집에 가서 된장찌개로 약간의 취향을 반영할 순 있지만 그것도 적당한 눈치와 타이밍이 필요한 일이다.


젠장. 나는 유난스럽다. 할머니도 그랬고, 아빠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다. 언니가 인형 머리를 빗어주며 집에만 있을 때 난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나가 뛰어놀기도 하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쏘다니며 온 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만들어왔다. 새총을 만든다면서 커터칼로 나무를 자르다가 엄지 손가락을 반으로 가를뻔 했던 게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고, 자전거 체인을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이 끼어 병원에 실려 갔던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남자애도 아니고 여자애가 참 유난스럽게 논다고 어른들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넘쳐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다.


육상부에 들어가 크고 작은 대회를 목표로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사고를 쳤을지 모른다. 중학교 땐 그 넘치는 에너지를 태권도 선수를 하며 달랬다. 시합에 나가 직접 경기를 치러보고 나서야 운동선수의 길이 내게 맞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 이후부터 난 평범한 청소년처럼 보일 수 있었다. 물론 금메달을 따고 한계를 느꼈다는 내가 일반적이지 않다며 혀를 끌끌차던 어른들도 있었지만, 난 금메달을 딴 순간 비로소 내 한계를 인정할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소수가 볼 때 가능성 있는 길을 포기한 것보다 일반적인 진로를 선택한 나를 격려해주셨다. 이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곳에 취업해 결혼하면 된다고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유난스럽다는 건 본인에게도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우리 집에서 어떻게 내가 유난스럽게 자랄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어쩌면 부모님이 나의 유난스러움에 내성이 생기고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싶다. 명절 때만 되면 나랑 언니만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고 엄마와 작은 엄마를 돕는 것이 억울해 이제 막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사촌동생들에게 쟁반 하나, 걸레 하나씩을 쥐어줬을 때 할머니는 화를 내셨다. 아들들이 주방에 드나들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쟁반을 빼앗고, 걸레를 빼앗아 내게 건네셨다. 물론 난 받지 않았고, 명절 때마다 사촌동생들에게 공정하게 일을 분배해주었다. 과자를 흘리며 마구 어지르던 아이들에게 걸레를 쥐어주니 귀찮았는지 방을 어지럽히지 않았고, 쟁반을 들려주니 어마 무시한 양의 음식을 할 것을 강요하던 할머니에게 음식을 적당히 하면 안 되겠냐고 건의했다. 엄마와 작은 엄마는 편해졌다고 좋아하셨지만 할머니에게 난 유난스럽기 짝이 없는 손녀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면 시집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놓는 할머니에게 내가 시집 안 가면 되지. 이런 시댁이라면 난 필요 없다고 답하자 할머니는 싸움을 피하고 싶으셨는지 아예 나와의 대화를 피하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나 몰래 며느리들에게 일을 시키고, 몰래 손주들의 사상을 점검하셨다. 밝고 명랑해 집안의 웃음을 책임지던 손녀딸이 유별나고 불편한 아이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이 일로 엄마는 할머니에게 '자식 교육'에 대한 잔소리를 들었고 난 혼날 각오를 했다. 하지만 그동안 날 유난스럽다고 하던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잘했다', '고맙다'라고 말했다. 말괄량이 유난스럽던 둘째 딸이 꽤 괜찮은 어른으로 대접받는 순간이었다. 내가 할머니의 미움을 산 덕분에 손수 가마솥에 육개장을 끓이며 할아버지 환갑잔치를 동네잔치로 준비하던 우리 집은 이제 식당을 빌려 친척들끼리 할머니 팔순잔치를 하게 되었고, 내년 할아버지 팔순잔치엔 식당이 아닌 뷔페에서 조금 더 간소하게 만나기로 했다. 환갑잔치 준비하느라 일주일 동안 집에 오지 못했던 엄마를 그리워하는 일기를 썼던 내게는 무척 감동적인 변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경력도 없고 나이도 어린 여자애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되나?', '그냥 시키는 일을 하면 되지 왜 자꾸 이유를 묻지?',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누구 씨 말대로 안 해서 감정이 상해서 그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어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반박을 제시하면 '공격적'이라는 둥 '감정적'이라는 둥 '뭘 몰라서 그런다'는 둥 유난스러운 내 성격을 탓했다. 같은 상황에서 남자 직원이 이야기하면 검토를 해보겠다고 말하거나 변명을 하기 바빴으면서. 물론 내가 만난 모두가 그랬던 건 절대 아니다. 내 의견을 귀 담아준 좋은 사람들이 있어 난 지금까지 유난스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30대를 코 앞에 두는 짧은 기간 동안 나와 같은 걸 경험했다고 말하는 또래들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동안엔 길들여지지 못한 것 또한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속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얼마 전 직장에서는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하는 나에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라며 대표님 입장에서는 살짝 기분 나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 같다며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기본적인 정보도 다 모르는 사이의 동료가 내가 원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는 것을 들어야 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에서 서로의 의견을 되묻고 하루빨리 납득 가능한 일로 만들어서 더 큰 동기를 부여받겠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지? 심지어 우리 팀 사람들은 계속 되묻고 확인하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우리 팀도 아닌 사람이 다짜고짜 나이와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조언을 하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선 계속 잡음을 만들어내는 내가 유별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가 내게 그랬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을 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마침 주룩주룩 내리던 장맛비에 실어 보내기로 했다.


'유난스럽다'는 건 어쩌면 긍정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범주가 너무도 좁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유난스럽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딪혀가며 보통의 범주를 조금씩 넓혀가는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통의 범주를 살아가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유난스럽다'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조금 더 공격적이고 전투적으로 변한 내 말투는 어떻게든 고치고 싶지만 내 마음에 충만한 전투력 게이지마저 떨어뜨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유난스럽다는 게 마냥 나쁜 건 아니다 고로 나는 아직 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대신 다른 사람의 유난스러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위한 노력을 좀 더 하기로 한다. 이 또한 어려운 일이지만, 나에겐 보통에 맞춰 모든 것을 재단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니깐.



photo by Derek Tho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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