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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Feb 06. 2019

네가 뭔데 우리 집 문화를 바꿔?

남자들은 가만히 있고 여자들은 일하는 그 문화 말인가요?

설날 점심, 떡국을 먹고 배와 사과를 깎아 사촌 동생들의 입에 넣어주던 내게 작은 아빠가 시비를 걸어왔다. 작은 아빠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팩트였고, 정말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네가 뭔데 우리 집 문화를 바꿔?
우리 집은 원래 남자는 가만히 앉아있고,
여자들이 일하는 문화야.




충격적인 작은 아빠 말의 발단은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연휴를 앞두고 오른팔에 통깁스를 한 것이었다. 딸로서 엄마의 팔이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 모든 노동으로부터 엄마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는 이미 아빠가 그 몫을 하고 계셨다. 


퇴근과 동시에 이불과 하나 되어 망부석이 되었던 아빠는 주방에 진출해 새로 바꾼 가스레인지에 광을 내며 하루를 마무리하셨고, 명절을 맞아 손수 갈비를 재웠다. 자잘한 설거지도 아빠의 몫이 되었다. 매우 수동적이던 아빠의 '살림'은 점점 능동적으로 변해갔고 우리 집엔 새로운 질서가 생겼다. 문제는 시골이다.


할머니는 정말이지 '옛날 분'이시다. 내 밑으론 친동생, 사촌동생 다섯 명 총 여섯 명의 남동생이 있다. 할머니는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못마땅해 엄마에게 미역국도 끓여주지 않았지만 내 밑으로 아들 여섯이 태어나자 내게 아들 터 파는 복은 있다며 칭찬을 해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집에 아들이 많으니 얼마나 좋냐며 명절 때마다 아들 찬양을 늘어놓는 것은 기본이고, 며느리들의 원망을 살만한 명언을 매번 창의적으로 쏟아내신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우리와 함께 숨바꼭질을 해주시던 자상한 할머니의 모습을 이제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정말 착한 작은엄마들과 누나의 말이라면 잘 따르는 사촌들 덕분에 올 명절 우리 집 분위기는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우선 음식의 종류가 줄었다. 시골에 가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의 종류와 양 때문에 2년 전부터 엄마와 내가 미리 조금씩 전을 부쳐갔는데 매번 '명절에는 기름 냄새가 나야 한다'는 할머니의 요구로 고추전, 김치전, 가죽전 등이 추가되며 도루묵 되곤 했다. 


이번엔 형님의 팔을 걱정한 작은엄마가 제사상에 올릴 소량의 전을 부쳐왔고(정말 제사상에만 올렸고 아무도 전을 찾지 않았다) 엄마의 깁스 덕에 할머니는 전 추가를 종용하지 못하셨다. (팔이 그러니 안 되겠지? 란 말만 안 하셨음 더 좋았을 텐데) 게다가 귀하디 귀한 장남이 손수 만들어온 갈비찜이 있었기에 메인 메뉴도 딱 '갈비찜' 하나로 정해졌다. 이전에는 메인 메뉴만 2-3가지가 기본이었는데 "갈비찜 내가 했어"란 아빠의 말 한마디에 추가 메뉴는 사라졌다.


이번 설엔 남자들이 일하기 시작했다. 우선 장남인 아빠가 청소기를 돌리자 막내 작은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를 시작했다. (물론 예외인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손주들 중 최고령자의 권한으로 매번 작은방에 모여 모바일 게임을 즐기던 사촌 동생 다섯 명을 안방으로 불러 앉혀 (한 놈은 군대에 갔기 때문에 빼고) 가위바위보를 시켰다. '안내면 진 거'란 말 때문인지, 원래 착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위바위보의 승패는 빨리 결정되었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촌 동생 녀석에게 설거지를 시켰다. 


나머지 아이들도 가위바위보 시스템을 통해 방청소와 이불 개기, 심부름 등의 역할을 만들어줬다. 평균 키 175인 남자아이 다섯 명이 걸레를 들고 상을 치우니 진도가 아주 빨리 나갔다. 지난 추석에 '장손(내 동생)'에게 설거지를 시킨다며 꾸사리를 주시던 할머니도 손주들 전원이 일하기 시작하니 말릴 의지가 없어 보이셨다.


주방 청소가 끝나기도 전에 "커피 타 와"를 외치던 작은 아빠에겐 커피값으로 5천 원을 요구했다. 집안에서 난 좀 강력한 존재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맘먹은 일이 있으면 기어코 하고야 마는 그런 아이. 작은 아빠에게 커피값을 요구할 땐 커피값을 반드시 받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걸 작은 아빠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작은 아빠는 처음엔 5천 원을 냈고, 다음번엔 직접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과일 서비스는 조금 더 비싼 값을 요구했다. 작은 아빠들은 아들들을 시키거나 직접 주방에 갈 수밖에 없었다. 주방에서 음식하고, 설거지하고, 다시 또 음식을 하느라 지쳐 커피 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엄마와 작은엄마들에게 여유가 생겼다. 주방에 여유가 생기고 남자들도 주방을 드나드니 가족끼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덕분에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할머니 집 리모델링 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낯선 광경에 절대 적응하고 싶지 않았던 작은 아빠가 설 당일 참지 못하고 내게 시비를 걸었다. 막내 작은 엄마의 껌딱지 막내 작은 아빠는 주방에서 커피를 타던 중이었다. 


"네가 뭔데, 집 문화를 바꾸냐고, 동생들을 다 시켜먹냐고, 남자들을 일하게 하냐고" 아주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어투를 구사하며 따졌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정상이고, 작은 아빠 빼고 모두 만족한다고" 내가 깎아 입에 넣어준 배를 복스럽게 먹던 작은 아빠의 아들이 슬슬 눈치를 봤다. 


너무 자연스러운 내 말에 작은 아빠는 "시집 언제가?", "얼른 시집가"를 연신 말하며 재공격을 했지만 난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작은 아빠, 벌써 내 축의금을 많이 모아두셨나 봐요?" 안방에 있던 식구들의 집중을 받게 된 작은 아빠가 꼬리를 내렸다. 다들 웃었고 작은 엄마는 시집 따위 안 가도 된다고, 시집 가면 누가 이렇게 교통정리를 하냐며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이상하게 내게만 무한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할아버지는 "요즘은 시집 좀 늦게 가도 된다더라"라고 말하고 급히 자리를 뜨셨다.


작은 아빠는 남자들은 가만히 있고, 여자들만 일하는 걸 '문화'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이런 불평등이 '문화'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내가 집안의 장손인 내 남동생에게 설거지를 시켰을 때 할머니가 큰 목소리를 내며 나무라셨던 게 작년 추석의 일이다. 고모들이 올 때까지 며느리들은 친정에 갈 수 없었던 게 불과 3년 전 우리 집 풍경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촌동생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작은 방에 모여 게임만 했다. 


이제 내가 명절 때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주고, 밥을 떠먹여 주며 키운 사촌 동생들이 듬직한 청소년들로 자랐다. 그리고 작은 아빠가 말한 그 '문화'라는 게 바뀔 때가 되었다. 문화의 가장 큰 속성은 '변화'의 축적에 있다. 그리고 문화권에 속한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촌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가진) 누나의 말을 안 들어봤자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특한 사춘기 소년들에게 작은 아빠들에게 받은 커피값을 태스크 별로 나눠 지급했다. 보상이 생기니 동작이 더 빨라졌다. 사실 이건 정말 별 거 아닌 일이다. 너무 당연한 상황이 오기까지 말도 안 되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뿐이다.


이제 엄마와 작은엄마들이 모여 앉아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고, 집안 행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제 모이기만 하면 음식 하고, 설거지하고, 다시 음식 하고, 또 설거지를 하다 피곤에 절어 각자의 집으로 가던 정체도 알 수 없는 명절과 이별할 때가 왔다. 


할머니는 이런 내게 "시집이나 갈 수 있냐, 널 받아줄 곳이 있냐?"라고 말했지만 내 대답은 확고하다. "이런 날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혼은 결국 개인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수많은 결정 중 하나고, 명절의 풍습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맞다. 


결혼 31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며느라기인 엄마는 연휴 내내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지만, 엄마와 작은엄마들의 만족도는 확실히 높아졌다. 표정과 대화 주제에서부터 변화가 있었다.


명절의 끝, 나는 너무 피곤하다. 대장 노릇 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 중2부터 22살까지 나보다 키가 머리 하나만큼 더 큰 동생들을 불러 모아 가사를 분담시키는 것도, 작은 아빠와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는 것도, 엄마와 작은엄마의 불만사항을 접수하는 것도 너무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이번 명절은 할머니의 잔소리와 작은 아빠의 엉터리 '문화론'을 제외하곤 꽤나 만족스러운 명절이었다. 


넉넉한 보상을 받은 사촌동생들이 다음 추석엔 더욱 열심히 참여할 것이란 걸 사촌동생을 너무 사랑하는 누나는 너무도 잘 안다. 고집 센 둘째 딸이 (시집을 여전히 안 간다며) 눈칫밥을 먹으며 받은 세뱃돈을 몽땅 털어서라도 이 문화를 바꾸고 말 거란 걸 집안의 장남인 우리 아빠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피곤을 자처하면서도 난 멈추지 못할 것이다. 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명절의 끝 엄마의 피곤을 보는 것보다 내가 피곤한 게 나을 것 같은 판단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설거지의 달인이 된 아빠는 내게 요리할 때 가스레인지를 깨끗하게 써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새로운 분야의 대화를 할 수 있어 기쁜 2019년이다.





이미지 출처 - travel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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