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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Feb 14. 2016

마음의 거리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거리



마음에도 거리가 있다.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를 느낀다는 말은 마음의 거리를 한껏 좁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마음의 거리를 좁혀보지 않은 이가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를 운운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의 거리는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고, 사랑을 끝내게 만든다. 좁혀질 듯, 좁혀질 듯 그렇지만 언제나 평행선을 그리는 마음의 거리는 좁아도 넓다. 망망대해만큼이나 넓다. 저어만치 멀어져있다가도 금세 훅 좁혀져 하나가 되는 것이 마음의 거리다.


오랜만에 날씨가 따듯했다. 얇은 코트만 걸쳤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내일이면 비가 온다지만, 그러면 다시 추워지겠지만 잠시나마 봄이 온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마침 회사도 일찍 마쳤다. 회사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평소 같으면 추워서 바로 집으로 갔겠지만 걷고 싶다는 생각에 굳이 미리 챙기지 않아도 될 짐을 가지러 학교로 향했다. 졸업식날 가서 짐을 한 번에 챙겨 오면 되는 일을 따듯한 날씨를 느끼고 싶어서, 좀 걷고 싶어서 학교로 향했다.


금요일 밤, 신촌은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누가 봐도 새내기인 친구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오랜만에 활기찬 기분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어폰 속에 흘러나오는 노랫말은 한없이 슬픈데 내 마음은 전혀 슬프지 않았다. 방학이고, 저녁인데도 학교는 여전히 학교 같았다. 교정을 걷는 나의 발소리가 또각또각 크게 들렸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대학원에서 보냈던 2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어렸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일에 힘들었고, 어렸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일이 두려웠던 그 시간들이 담담하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울컥! 대학원 시절 내내 나를 괴롭히던 외로움 한 조각이 단단하게 걸려 좀처럼 넘어가질 않았다. 잠깐 벤치에 앉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걸리적거리는 외로움 조각을 어서 토해내고 싶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 단단히 걸린 녀석은 나올 생각이 없었다. 자세를 고쳐 앉아 외로움이란  녀석마저 외로웠을 그 시절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 외로움은 모두 마음의 거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음의 거리는 숨길 수가 없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측정되게 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혹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의 거리는 어느 순간 불쑥 참견을 하곤 한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상대도 느낄 수밖에 없는 어색함. 깍듯하게 예의를 지켜 친절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느껴지는 의례적인 제스처. 툴툴거리는 말투를 하고 있지만 강하게 느껴지는 사랑의 눈빛,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에서 전해지는 바다와 같이 깊은 진심.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음의 거리는 내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오늘은 피곤할 테니깐, 우리는 서로 집이 머니깐, 에이 오늘은 너무 바빠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혹은 오늘은 정말 '곤란'해서. 다양한 핑계로 그와의 만남을 미루는 것은 분명 그를 향한 내 마음의 거리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할 때, 나 또한 나를 향한 상대의 마음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나는 타인의 마음에 대한 거리를 쉽게 좁히지 못하는 편이다. 이것은  이성뿐 아니라 편한 동성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가장 친하지만, 대학 시절 나를 늘 불편하게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난 약간의 결벽증을 앓고 있었는데 친구는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늘 자기 방이 아닌 내 방으로 와서 외출복 그대로 내 침대에 한참을 누웠다 가곤 했다. 물론 난 친구가 가자마자 페브리즈와 온갖 방향제를 뿌렸고, 좀 더 친해진 다음엔 노골적으로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에서 내 침대를 사용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같은 기숙사에 그것도 바로 앞방에 살던 내 친구는 한결같이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내 방, 그것도 늘 정갈하게 정리해놓은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그 행동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무렵, 그 친구를 향한 내 마음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지저분한(?) 행동을 말릴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가 좁혀놓은 마음의 거리는 그렇게 나의 결벽증마저 극복시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난 내 스스로가 발 벗고 나서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엔 재주가 없다. 누군가 마음의 거리를 확 좁히려고 노력한다면, 기꺼이 마음을 열어보겠지만 스스로 적극성을 가지기엔 아직 많이 어린 모양이다.


주변에 점점 사람이 많아진다. 약속도 많아지고, 약속이 펑크 나는 경우도 많아진다. 혹은 메신저로만 활발하게 연락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진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사람은 적어진다. 다들 너무 바쁘기 때문에. 혹은 피곤하기 때문에 혹은 날씨가 춥기 때문에. 난 한 사람과의 만남이 계속 미뤄지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와 그의 거리가 이렇게나 멀구나. 그 어떤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답은 하나, 마음의 문제였다. 반대로 무작정 내 삶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철옹성을 짓고 나의 세계를 고수하려는 나에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마음의 문을 빨리 열게 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엔 귀찮지만 참 고맙다. 마음의 거리를 계속 좁혀주어 고맙다.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한 발도 채 딛기 전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주어 고맙다. 지극히도 소심하고, 좁은 내 마음의 문을 계속 노크해주어 참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에 걸리적거리는 외로움 한 조각을 여전히 뱉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나서서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핑계를 대지 않고, 귀찮음을 이기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중한 사람에게 다가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따듯한 금요일이 지나고, 따듯하지만 비가 내리는 토요일을 지나, 칼바람이 불며 비가 내리는 일요일이 되었다. 가만히 집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고, 나는 점점 나이를 먹어가지만 여전히 보폭이 좁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나는 마음의 거리에 이제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점점 먼저 그 거리를 좁히는 사람들이 적어질 것이라는 걸 불현듯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는 것이 솔직한 내 맘이기도 하다.


마음의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닿을 수 없던 그 거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눈을 질끈 감고 한참을 망설이다 발을 내딛었는데, 반 발자국도 가지 않아 닿을 수 있던 거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렇게 다양한 거리들을 측정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발자국 하나 남길 수 없던 그 길에 남겨진 눈물 자국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에 대해, 그리고 나에게 연결된 많은 사람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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