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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Feb 24. 2016

조직에 대한 믿음

나는 그동안 조직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나에게 조직은 언제나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조직'은 나의 피로도를 높이는 큰 원인이었다. 초등학생 땐 내가 하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팔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의자를 들기도 하고, 다리가 무너져 내릴 듯 아프게 투명의자를 하며 단체기합을 받곤 했다. 중학교 땐 난데없이 발생한 도난 사건으로 엄숙한 분위기의 교실에서 반 아이들 전체가 반성문을 쓰기도 했고 운동부였던 덕에 단체기합을 삼시세끼 챙겨 먹듯 매일 받곤 했다.

이미지 출처 : the-pr.co.kr

대학에 들어와서 '개인'의 삶이 시작될 무렵에도 '조직'은 큰 짐이 되었다. 선배놀이를 시작으로 술자리와 모임 참석을 강요하는 과문화 때문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고, 조모임이나 팀플 때문에 혼자 하는 과제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팀원들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전전긍긍하곤 했다. 팀원들을 달래도 보고, 팀원들에게 화도 내보았지만 불행히 날 도와주는 팀원들은 없었다.


원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조직'이 아니라, '개인'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킥오프 미팅 한 번 혹은 잘 아는 업체의 경우 미팅은 건너뛰고 전화로 업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일' 자체만 신경 쓰면 됐었다. 대학원에서도 '조직'보다는 '개인'의 연구가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조직'이 아니라, 철저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나인 투 식스 '회사원'으로의 생활을 시작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잠깐의 휴식기에도 다른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거들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난 '조직문화'가, '조직생활'이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점심 저녁을 함께 먹으며 쌓인 정만큼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혼자 처리하면 1시간 걸릴 일이 여러 명과 함께 하려니 1시간 이상 회의에, 회의 내용을 정리한 보고자료 작성에, 보고 후 내려오는 피드백까지 완료하면 적게는 하루 많게는 일주일이 걸리곤 했다. 물론 혼자 맡은 일보다 액수도 크고 스케일도 컸지만 이미 심사가 꼬인 내게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google.com

혼자 일하고 책임지던 습관 때문에 난 모든 일에 전전긍긍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보고를 드리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피드백을 요구했다. 이렇게 부하직원이 상사를 들볶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사실 별로 큰 일도 아닌데 혹시 모를 리스크 때문에 오버를 한 것도 같다. 그래서 난 늘 일이 많아서 내게 중요한 일을 꼼꼼히 챙기기 어려웠다. 그게 스트레스였고, 이런 비효율을 유도한 조직 시스템이 원망스러웠다. 내 일이 현안이 되면 일은 빨리 진행되어 만족스러웠지만 타인보다 유독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전체 회의에서 우리 팀이 왕창 깨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웃풋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력이 많은데 죄다 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듣는 팀원도 이리 기분 나쁜데, 듣는 팀장은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퇴근 후 우리는 조용히 술집에 모여 앉아 소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다들 취기가 올랐을 때 팀장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술 마신 김에, ㅇㅇ씨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항상 ㅇㅇ씨가 미리 일도 잘 진행해주고, 정말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ㅇㅇ씨가 너무 조급한 것 같아. 이십 대에 그렇게 조급하면 40대, 50대 땐 지쳐서  아무것도 못해요. 기왕 조직에 들어왔으니 천천히 조직시스템에 신뢰를 가져봐요. 지금 당장 ㅇㅇ씨한테 엄청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란 말을 아무도 안 하니깐 마음 편하게 즐길 걸 즐기면서 해봐요."


아웃풋이 없다고 팀 전체가 깨진 마당에, 팀장님이 팀원들의 성과를 강요해도 모자랄 판국에 천천히 즐기며 일 하라고 말씀하시는 팀장님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조직에 대한 신뢰'라니... 들을 땐 생소했지만 회사에 입사한 뒤의 삶을 돌아보면 훨씬 안정감이 생기긴 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문제 상황이 발생할 때 상사의 노하우로 쉽게 해결하기도 했다. 둘러보면 앞, 뒤, 양옆에 앉은 동료들 모두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프로였고, 자신의 몫에서 실수가 일어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조직시스템이 마냥 불편하다고 느꼈던 건 어쩌면 동료들에 대한 나의 신뢰, 조직이 지탱해 온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부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미지 출처 : mroutsource.com

요즘 부쩍 퇴사에 대한 글들이 많이 보인다. 1인 기업도 늘어났고, 온라인을 통해 새롭게 자신만의 길을 열어가기에도 무리 없는 업무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퇴사를 결심한 글, 퇴사에 관한 글, 혹은 혼자 하는 시작에 관한 글을 많이 읽었고 수없이 공감했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고,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오늘 문득 홀로서기를 결심하는 과정 이전에 조직에 대한 신뢰와 그 조직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사에 관련된 글을 읽어보면 퇴사를 결정한 이들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했고 이를 잘 서술했다. 다만 혼자 잘난 척을 하던 내 눈에는 조직에 대한 회의감, 홀로서기의 장점들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짧은 조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나 혼자 빨리 간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끙끙거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무조건 '혼자'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먼저 버려야 조직에 대한 동료들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팀장님이 덧붙인 말, '연차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일들, 능력만으로 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분명 존재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관리자가 있는 거고요.', '40대, 50대는 실무선에서 벗어나 넓은 것을 보는 사람이어야 하고요'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조직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시스템에 대한 신뢰, 함께 일하는 이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은 가슴 깊이 새겨보기로 한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com

나는 어쩌면 '조직'에 대해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조직을 거치면서 난 '규범'과 '예절' 그리고 '조직시스템'에 관한 다소 강압적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대학교에서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개인'의 개성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기였다. 대학원에서는 '나'를 지키면서 '조직'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선 가장 작은 출발점으로 '나'의 의견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것, '나'의 시간이 아니라 '조직'에게 적합한 시간이 올 때까지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기다리는 것을 실천해 보기로 한다. 올 해는 조직에 대한 올바른 신뢰와 믿음이 생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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