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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r 28. 2016

관계의 지속

우리는 어떤 관계를 지속하는가

관계
1.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2.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음
3.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주의를 기울임. 그런 참견이나 주의


사전적 정의를 볼 때 관계에서 '개인'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개인은 관계가 형성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일 뿐, 개인 자체만 볼 때 '관계'는 형성되기가 어렵다. 메타적인 의미로 나 자신과의 관계 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관계는 하나의 사물 또는 사람이 또 다른 사물이나 사람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엄마를 울린 적이 있다. 정확한 사건과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꼬맹이 시절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엄마가 쓰레기라 생각하고 버렸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눈물로 세수를 하며 엄마에게 칭얼거렸다.


엄마가 뭔데 남의 물건을 막 버리고 그래.

아마 이 말 때문이었던 거 같다. '남'의 물건. 바로 그 말에 엄마는 감정이 격양되셨던 것 같다. 어린 나이의 난 갑작스러운 엄마의 눈물에 당황하며 이유도 모르고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했지만, 다 큰 어른이 되어 문득 떠오른 옛 기억의 조각을 다시 들여다보면 엄마는 바로 우리의 관계가 생략됨을 의미하는 단어 '남'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나이 들어가면서 관계는 점점 더 모호한 형태로 지속된다. 모호한 관계는 편리하다. 서로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 언제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 내밀 수 있다. 또 서로의 불행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설 수 있다. 그 행위 이후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니 이 역시도 모호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news.joins.com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선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절대 울지 마, 울면 약점만 늘어나는 거야." 겨우 고등학생인데,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라니. 그 눈물이 약점이 될 것이라니.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직장에 들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힘들어 회사에서 울 뻔했다는 내 말에 친한 언니가 말했다. "회사에서 울지 마, 차라리 바지를 벗고 춤을 춰. 그게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깐." 언니의 말이 서운하게만 들렸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관계에 있어 눈물은 모호함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언젠가는 어떤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대부분이 부정적이란 점에서 선배의 말도, 친한 언니의 말도 틀린 것이 없다.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그렇다. 친해지는 건 어렵지만, 멀어지는 건 한순간이듯  관계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에 더욱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없이 지속되고 유지되는 관계들이 없다면, 운명 같은 관계들이 없다면 우리는 관계에 있어 조금 더 불편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운명의 이야기가 나와 조금 감성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데 있어 '감정'은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리고 이 감정에는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호감이 전제된다. 오늘날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아주 많은 신경을 쓴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다수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취업을 위한 성형, 호감형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스타일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피치 등의 클래스가 늘 빠르게 마감되는 걸 보면 다수의 사람들이 관계를 위한 개인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게도 개인의 호감을 결정하는 여러 강의들의 결론은 개인에 대한 호감이 자애감과 자신감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셀프 스타일링을 하면서 잘 들여다보지 않던 거울을 들여다보며 수십 번, 수백 번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헤어스타일과 가장 잘 맞는 컬러를 고른다. mbti를 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깊이 묻어둔 상처를 마주하기도 한다. 성형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스피치 강좌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계기를 만든다. 관계의 지속은 결국 앞에서 '메타적'이라고 말했던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나'를 잃고 타인과의 관계에 흔들리다 보면 결국 관계마저 와장창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저 멀리 던져두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나 다웠을 때, 난 가장 소중한 관계를 얻었고 여전히 그 관계들이 아주 원만하게 지속되고 있다. 물론 모호함보다 갈등이 많았고,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어떤 갈등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서 이익에 의한 관계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히면서 '관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마음을 더 많이 숨기게 되고, 턱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관계가 모호하게 지속될 순 없다. 정상적인 관계는 타인에게 '나'를 납득시키고, 나도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잠깐의 갈등이 무서워서 관계를 '지속'시키려고만 한다면, 그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타인의 모습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면 그 관계는 더딜 순 있지만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애니메이션 <Mary and Max>

최근 모호한 관계들이 늘어났고, 모호한 관계들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어떤 관계에서 나는 너무 나답지 못했고, 어떤 관계에서 나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다. 모호함을 유지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게 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합리화시키며 그렇게 많은 인연들을 스쳐 보냈던 것 같다. 내 관계를 돌아보면서, 오늘 만났던 '나' 다웠던, 온전히 '나' 일 수 있었던 잠깐 동안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이 글을 쓴다. 일종의 반성문이기도 하고, 일종의 다짐글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지속할까? 아마도 내가 가장 나일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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