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어떻든 솔직한 마음은 필요하다
솔직한 마음은 용기를 먹고 자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최후의 수단으로 '솔직함'과 '진심'을 꺼내 든다.처음부터 솔직했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시작부터 진심이었다면 우리의 오늘이 조금 더 깊어졌을까.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 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흩날리는 벚꽃만큼이나 거리에는 봄노래가 가득하다. 살랑이는 바람결에 내 마음도 가벼워지고, 따뜻한 햇살에 굳어있던 내 마음도 스르륵 녹아내린다. 개인적으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의 가사 중에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라는 구절을 무척 좋아하는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몰랐던 그대'와 우리는 과연 언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일까?
지난가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받았던 심리검사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감성적인 줄만 알았던 내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스스로의 감정에 매일이 피곤했는데, 이성과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발현되었단 말일까? 심리 검사 전에 신청해 둔 상담 프로그램에 참가해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할 때야 비로소 나의 지나친 이성과 논리를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나의 말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거나, '흐름'이 있다고 한다. 단어 선택도 감정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감정을 분석하기 위한 상황이나 관계 등에 관련된 것이 월등하게 많다고 했다. 뜬금없이 십년지기 친구에게 전화해 나의 말투가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에 대한 객관성을 잃은 지는 오래지만, 네 말은 빈틈이 없어. 왜... 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에 나오는 따발총 대사들... 그런 거 같아." 일종의 칭찬이라며 친구는 웃어넘겼지만 난 살짝 심각해졌다. 친구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어도 마치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의 소유자라는 친구 녀석의 추가 코멘트처럼 난 사실 좀 경직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편하다'라고 느끼게 되었고,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어렵다'라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너무 징징거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내가 너무 잘난 척을 한다고 느끼진 않을지 이래저래 생각하다 보면 한 마디를 내뱉는 것도 어려웠다. 특히 '나'라는 캐릭터를 처음 마주치는 사람들 앞에서 혹은 애매하게 안면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점점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나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본모습은 숨기고, 상대가 나에게 원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예전에는 곧 죽어도 '나'를 고집했는데, 이젠 내가 어떻든 내가 처한 상황이 유연하게 잘 넘어가게 되면 찝찝하기는커녕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솔직할 필요도 없었고, 솔직하다고 해서 이익을 볼 일도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도, 타인의 시선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지만 모든 상황에서 솔직함의 순간을 피해갈 순 없는 법이다. 어영부영 만인의 '나'로 살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다르게 여겨질 오직 '나'로 살아가고 싶은 순간 솔직함의 결여는 큰 걸림돌이 되고 만다.
봄바람과 함께 수줍고 간지러운 작은 마음 하나가 날 찾아왔다. 이 마음은 타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보고 듣는 '그'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면 3초도 되지 않아 툭 튀어나올 많은 이야기들을 아주 수고스럽게도 몇 날 며칠이 걸려서라도 그를 통해 직접 알고 싶어 졌다. 타인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의 경계를 소심하게 넘나들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직접 묻고 싶었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관성의 법칙은 여전히 나를 지배한다. 혹시 거절을 당한다면, 혹시 그가 날 오해한다면, 혹시 그가 날 부담스러워한다면, 혹시 소문이라도 난다면, 혹시 영원히 친해지지 못한다면, 혹시 깊이 알게 된 그에게 내가 실망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아주 사소한 걱정이 하나부터 열까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한참을 혼자 고민하다가 문득 그게 뭐 어때서?라는 물음표 하나를 끄집어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마음인 것을, 내가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스스로 앗아갔던 '나'의 권리를 되찾고 나니 솔직함은 절로 따라왔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있는 '현재'의 나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용기를 내고 나니 솔직해졌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궁금하다고 물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어떠냐고 물었다. 아, 물론 아직 많은 것을 묻지 못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앞을 향해 걸어가는 내 마음이 꽤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함 그리고 영영 어색한 사이로 남을 것 같은 절망감을 모두 내려놓고 나의 '솔직한 마음' 하나만 손에 쥔다면 다른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일렁인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그와 손잡고 걸을 수 있을까?
결과가 어떻든 솔직한 마음은 필요하다.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솔직함을 택한 순간부터 난 점점 '나'다워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럽거나 싫지 않다. 훗날 이불 킥을 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또한 나의 한 모습일 것이며 어쩌면 그동안 꽁꽁 숨기며 살아온 진짜 '나'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는 나를 알아간다. 솔직한 마음은 이때 굉장한 마법을 부린다.수많은 공식과 체면치레 그리고 설익은 사회생활에 물들어가던 나에게 벌써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물론 며칠 뒤 솔직함은 개나 줘버리라며 심야에 글을 업로드할지도 모른다. 그때엔 마음속으로 조용히 날 위로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용기를 한껏 내어 최후의 수단으로의 '솔직함'이 아니라, 시작으로 '솔직함'을 꺼내 든다. 스무 살의 설렘이, 알 수 없는 용기가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