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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y 23. 2016

괜찮아, <나의 소녀시대>

영화 <나의 소녀시대>가 좋았던 세 가지 이유

누구에게나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있고, 청춘이 있고, 누군가에게 ‘전부’였던 순간이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일과 생활에 찌들어 살면서도 잠깐 떠오른 추억 한 조각에 미소 짓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시간과 돈을 들여 그 추억과 마주할 계기를 마련하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유치한, 차가운 마음이 녹아내릴 만큼 따듯한, 내일 따위는 개의치 않는 것 같이 솔직한 타인의 추억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나’의 추억을 떠올린다. 혹시 기억 상자의 구석에 처박혀 벌써 몇 년째 빛을 보지 못한 추억의 조각이 없는지,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무치게 그리운 감정들이 두둥실 떠오르진 않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포스터_한국버전

‘유치하다’ 이렇게 네 글자로 영화 <나의 소녀시대>를 평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지난번 재미있게 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대만영화가 떠오르는 전형적인 대만 로맨스물이기도 했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로맨스 공식들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합된 수많은 로맨스물 중 하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치하다’라는 네 글자에 조롱보다 설렘이 묻어나는 걸 보면 <나의 소녀시대>는 그저 유치하고 전형적이기만 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나의 소녀시대>를 보며 흐뭇했던 세 가지 지점을 슬쩍 정리해보았다.


1. 가장 나다운 순간의 발견

우리들 자신만이 자신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어
영화 <나의 소녀시대>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변한다. 변하지 않을 리 없다. 한 인간이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가장 나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가장 나답게 변화해가는 과정을 <나의 소녀시대>의 주인공 린전신(송운화)과 쉬타이위(왕대륙)는 아주 발랄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학교를 주름잡는 싸움패 대장인 쉬타이위는 린전신 덕분에 죄책감을 씻고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하던 자신을 내려놓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평범하다 못해 조금 억울할 것 같던 삶을 살던 유덕화 빠순이 린전신은 어차피 남의 여자가 될 유덕화가 아니라 현실 속 친구인 쉬타이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평범함의 모래알을 힘겹게 삼키고 용기라는 값진 진주를 얻게 된다. 가장 나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가장 나다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들의 사랑 과정은 그들의 사랑이 긴 시간 속에 그저 빛바랜 옛사랑이 아니라 현재의 나로 녹아들었음을 깨닫게 한다.


2. 가장 청춘다운 청춘의 발견

교복 입고 맥주 못 마셔보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영화 <나의 소녀시대>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것, 그 순간이 아니면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교복을 입고 땡땡이를 친다거나, 교복을 입고 맥주를 마시는 일? 불량학생이던 쉬타이위 덕에 린전신은 교복을 입고 땡땡이를 치고, 맥주를 마신다. 행위 자체에 초점이 있기보다 그 행위를 통해 펼쳐지는 수많은 상황과 그 상황에 따르는 여러 감정들 덕분에 우리는 ‘일탈’ 행위를 하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나쁜 것’으로 치부되는, ‘하지 말라’는 여러 행위들에 청춘들이 쓸데없이 목숨을 거는 이유는 어쩌면 ‘나쁜 것’과 ‘하면 안 되는 일’을 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안에 놓였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나의 소녀시대>

 쉬타이위에게 롤러장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가 가장 자유 할 수 있는 공간, 나약함을 목격할 수 있는 공간에서 린전신은 그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가장 자유한 공간에서 린전신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우며, 색다른 방법으로 ‘나’를 말할 용기를 키워나간다.  


3. 가장 사랑다운 사랑의 발견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첫 물풍선을 던져 맞힌 그 사람은 싫어서가 아니라
눈에 그 사람만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진짜 사랑의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는 쉬타이위의 내레이션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에 남았다. 그간 이리저리 재면서 나에게 조금 더 맞는 사람을 찾아 (나름 굉장히 주관적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시간들이 순간 의미 없어 질만큼 깊이 말이다. 정말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아서 첫 물풍선을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던지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찾아온 사랑은 정말 솔직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서로를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 정직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향수를 <나의 소녀시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그들의 사랑은 단지 어린 시절 만났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나’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린전신의 내레이션처럼 우리는 종종 미래를 상상한다. 미래는 곧 현재가 되고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인 순간이 된다. 가장 극단적인 순간, 우리가 꿈꾸던 찬란한 미래 그리고 그 미래를 꿈꾸던 과거를 돌아보면 어떨까. 그저 그런 직장을 다니고, 그저 그런 연애를 하며, 그저 그런 어른이 돼버린 린전신에게 과거란 현재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 된다. 옛사랑을 추억하고, 그 사랑을 다시 만나 새로운 로맨스를 쓰는 건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사랑을 추억하고,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일은 분명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나의 소녀시대>는 가장 '나'답고, 가장 '청춘'답고, 가장 '사랑'다운 것을 극화시켜 보여준다. 혹자는 이를 클리셰라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공감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원래는 영화의 줄거리를 길게 정리하며 글을 시작했지만, 아무리 다듬어도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을 살릴 수 없어 포기했다. 이건 아마도 내가 영화의 이야기나 장치가 아니라 그 영화가 주는 다양한 감정의 고리들 덕에 마음이 움직였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전히 빛나고 있을 당신 자신에게 쉼표 하나를 선물하고 싶다면 영화 <나의 소녀시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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