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예술가라면 언제든 반겨야할 각성제가 있다. 흔히 말하는 현대인의 3대 영양소.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커피는 저 둘 중엔 가장 건실한 느낌이니 직장인의 술이라 할 수 있겠다.
1.
취한다는 상태에 들어서지 못한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많이 먹지도 않을 뿐더러, 요즘처럼 외식 물가가 비싼 시대에 밖에서 술을 사먹는 다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내려진 특혜이고.
집에서 마시는 술은 뭔가 그런 느낌이 아니다. 반짝이는 조명. 멋진 테이블. 골방에 박혀선 언제부턴가 생겨난 초파리와 함께 맥주를 홀짝 거리는 건 그다지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기도 하고.
혼자 기울이는 술잔은 잘 벼려진 칼처럼, 내 외로움을 조각한다. 기울기가 수평에 가까워지는 순간 그의 칼갈이는 끝이나고, 매캐한 알코올 향을 내뿜는 내 숨을 가둔다.
마치 거울이라도 보듯. 술잔에 비친 내 몰골은 일견 비참해보이기까지 한다. 내 얼굴이 비친 술잔은, 이젠 ott처럼 보기 시작한 주식 차트의 기울기처럼. 푸른 빛이 제법 서늘하다.
2.
술은 날카롭다. 날 예민하게 만들고 솔직하게 만들며 좀 더 파괴적으로 만든다. 머리가 아파서 핑핑 도는 와중에 엉망진창으로 찍어낸 음악이나, 마구잡이로 써낸 글귀는 엿보기 힘든 진심마저 담고 있다.
아직도 내 마음에 작은 예술가의 조각이 있음을 알려주는 작은 신호탄이라고나 할까.
먹지 않는 약처럼 쓸모는 없는 구조대원이랄까.
나를 구하려 하지 않는, 태만을 행하고는, 여유롭게 유영하는 구조요원이랄까.
3.
니코틴은 무섭다. 없으면 불안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미래가 무섭고 내일이 무서운데 피지 않으면 불안하다.
나쁜 습관이 들어 이이제이에 맛을 들이면 이 불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불안함에 빠진다.
일어나서 불안. 씻기 전에 불안. 운동 전에 불안. 힘들 때의 불안. 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우선 불안해져야 한다.
완벽하고 싶은 나에게, 니코틴이라는 변명 거리는 아주 완벽하다. 애초에 금이 간 채 들어온 대리석처럼.
흠집을 감성이라 표현하는 워크룩처럼.
깨져버린 빗금도 긁어보니 소리가 난다며 장점을 찾는 사람처럼.
니코틴은 긍정의 상징이다. 내일 죽어도 담배라면 어쩔 수 없지.
내일 살아도 담배 덕에 살았지.
불안과 불완과 불행과 행운은 아주 작은 금으로 갈라져 있어 멀리서 보면 알아채는 것도 쉽지 않다.
4.
니코틴은 불안이다. 그렇기에 술과 달리 나를 벼린다. 불안하기에 준비하고. 불안하기에 공부한다.
느슨해진 나라는 존재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소중한 부싯돌이다.
담배를 물고 큐브를 맞출 때, 눈이 돌아가는 속도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에너지 드링크처럼 물렁한 불안보다야, 이 매캐하고 텁텁한 불안이 더욱 깊숙히 파고드는 것은 덤이다.
5.
카페인은 지독한 생존마다. 언제 어디서나 날 구해주고 쉴 수 없게 만든다. 줄이 끊어진 인형에 줄을 붙여주는 무자비한 인형사랄까.
망가진 거치대를 어거지로 들어올리는 나사랄까.
보기에 따라선 덕트테이프라고 보는게 가장 나을 것 같은데.
카페인은 일종의 왕과 같아서 퇴직을 끝내 불허한 세종처럼. 우스갯 소리로 현대인을 황희로 만드는, 그럴 수 있는 이 시대의 성군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삶의 주인이란 누구인지. 그게 나인지 아님 지금 눈앞에 있는 카페인인지. 진지하게 주도권을 다툴 때가 온 것이다.
6.
나의 왕은, 한편으론 참 부드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끝자락에서 손을 뻗어주고 험한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재로 바꾸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안에 민감해져 신경을 곤두세우기 직전 까지라면 왕이 어떻게든 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7.
그렇담 이 3가지를 모두 동시에 해버린다면 어떨까. 커피를 홀짝이며, 담배를 피우고, 가볍게 식사 대신 맥주를 한잔 마시면.
맥주로 내 외로움에 괴롭고, 담배로 불안함을 채우고, 카페인으로 이 모든 걸 잊지 못하게 깨워놓기까지 한다면.
역시. 괜히 심장이 벌렁거리는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목숨까지 걸 일은 아니었을 텐데.
8.
건강이 최고라 온갖 영양제에 비타민을 챙겨 먹으면서도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결국 저 필수 영양소를 찾게 만든다.
중독이란 것은 이토록 무서워서, 이들에게 목줄을 쥐어주고 끌려다니는 좀비가 되는 줄도 모르게 하여.
난 중독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도 좀비니까 움직이고 말하기는 하겠지?
세상에 모든 좀비를 위해. 오늘도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