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들이 흔히 그렇듯 어떤 책을 읽으며 '이 정도는 나도 쓰겠는데?'하는 거만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미 책을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책이 서점 매대에 오르기 까지 저자는 수많은 글을 쓰고 고르고 교정했을 것이다. 독립출판의 경우엔 직접 디자인을 하거나 유통까지 고려해 기획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어본 적 없는 나는 남의 글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운운할 때가 아니라 일단 꾸준히 글쓰는 게 먼저다.
꾸준히 글쓰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왔다. 친구와 격일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을 올려보기도 했고, 글쓰기 수업에 등록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시도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1일 1글 쓰기 프로젝트였다. 불가능할 줄 알았던 매일 글쓰는 미션을 클리어하고 한 달째 되는 날 신나게 축배를 들었다. 그 후로 기세가 흐려지긴 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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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글쓰는 습관이 어느정도 자리 잡으며 음악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유튜브 계정에는 '노래 만드는 게 제일 조아'라는 글을 내걸었지만 언제부턴가 곡쓰는 게 어려워졌다.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공연을 하면 늘 평가가 따라다닌다. 평가를 의식하다보니 ‘더 잘하고 싶다'생각으로 시작해 점점 부담이 됐다.
음반을 내지 못하고 있는 데에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앨범 구상이 떠오르지 않는 게 가장 크다. 하드에 발표하지 않은 곡들이 30여개 정도 되지만 그 중에 발매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곡은 많지 않다. 기타로 초안을 쓴 후에 편곡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는 것이 다른 이유다. 창작의 방식은 각양각색이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좋은 곡을 쓰는 방법은 없을테지만 각자에게 맞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선배들께 조언을 얻고 공부를 하며 힌트를 얻게 되었다. ‘꾸준함’과 ‘다작’이 그것이다.
1일 1글의 성공신화를 이어 1일 1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일 글쓰기를 했을때처럼 아주 훌륭한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은 내려놓고 새로운 주제에 멜로디를 붙인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좋은 곡을 쓰겠다는 부담없이, 오늘 별로라면 내일 잘 하자 생각하니 잘 써진다. 또 매일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내가 음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드러난다.
5월부터는 K-POP작곡가가 운영하는 미디작곡 클래스에 참여한다. 주변에 영화작업하는 친구도 있고, 음반을 내고 싶어하는 친구들도 생겨나는데 아직은 내 음반 작업하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라 사운드메이킹 실력이 성장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매우 넓어질 것이다. 작업시간을 줄이고 기타로 스케치한 곡들에 하나 둘 꼬까옷을 입혀보면 나만의 시그니쳐 사운드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곡을 쓰기위한 전략을 세우며 부지런히 사는 중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금방 찾아왔다. 나는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라 생각에 깊이 빠지기 전에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운동을 하면 나아진다. 그런데 그런 것들로 잘 해소가 되지 않는 날도 있다. 얼마 전에 친구도 만나기 싫고, 일도 손에 안 잡혔다. 뭘 해야할지 몰라서 위스키 한잔 따라놓고 가스레인지를 닦았다. 우울할때는 시간이 잘 안간다. 우울해도 어쩄든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시간아 흘러라하고 방목해버린다. 가스레인지를 닦아놓고 글을 써내려갔다.
<생긴만큼 살랍니다>
인생에 도가 튼 도사님처럼
어떤 질문이 와도 답변할 수 있을 것 처럼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았는데
어느날 예고없이 부는 바람 앞에서
힘없이 지팽이를 놓치고나니
맞아 난 지독한 장난에 걸린거야
책에서는 자꾸 나를 돌아보라 하는데
내 마음 계속 돌아봐도 고대론걸요
찾을수록 텅텅 빈 메아리만 들리니
그런김에 그냥 생긴만큼 살랍니다
수영하고 밥먹고 일하고 데이트하고
할거 잘 하고 왔는데 마음 어지럽다면
그런다고 마음이 개이진 않겠지만
세제 묻혀 가스렌지나 닦을랍니다
어떨땐 괜히 좋은 사람 되고 싶어서
있지도 않은 얘기도 자꾸 합니다
작정할수록 구린모습 나오겠지만
그런김에 그냥 구질하게 살으렵니다
가장 좋은 건 다듬지 않은 나
가장 귀한 건 용도가 없는 나
가장 예쁜 건 되는대로 사는 나
짧은 시간에 술술 글이 써지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음율을 붙인 후에 마음에 들어창작하는 친구들 방 몇 군데에 뿌렸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친구에게서 개인톡이 왔다. '오늘 힘든 일 있었는데 너무 제 마음 같았어요 고마워요. 오늘 눈썹님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고 질문이 왔다. '아무 일 없이 외로운 날도 있는 것 같아요' 문자를 보내 서로 위로했다.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겠지만 나에게 창작은 오래 앉아있거나 고통받으면서 하는 활동은 아닌 것 같다. 음악이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어야 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력은 단단하게 갖추고, 마음은 부드럽게 가져야 하기에 창작이 어려운가보다. 그렇지만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한 정직한 활동이기도 하다.
어찌할 도리가 없을때 창작은 숨을 쉬게 해주며 남루한 삶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가끔 찾아오는 특별한 순간을 위해 매일개미처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