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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Apr 22. 2020

불광천 투룸과 함께 맞이한 호식이

호식이와 보낸 계절(1편)

직장을 다닐 때 주말은 가장 난감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울에 갔기 때문에 친구들이라곤 다 직장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평일 내내 붙어있는 친구들을 주말까지 만나자고 하기는 애매해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틀 내내 한 마디도 안 하고 보내기도 했다.


나의 주말은 오후에 시작되었다. 평일부터 이어진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아 반나절은 잠으로 보냈다. 오후 2시쯤 일어나면 허탈함이 찾아왔다. 이대로 주말을 보낼 수 없다는 압박이 들었지만 쉽게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누워서 핸드폰을 하며 몇 시간을 보내고, 금새 저녁이 되었다.

그 와중에 물건도 많이 사들였다. 마음이 허전해서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덧 방의 절반은 옷과 식재료로 가득 차 버렸다. 물건의 가짓수가 늘어나도 헛헛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그 방에는 생명의 온기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세 평 짜리 원룸. 그 작은 방은 생명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계약이 끝나면 투룸으로 옮겨서 고양이나 식물을 기를 거라고, 주변에 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2년 계약이 끝나 드디어 투룸을 얻었다. 근처에 불광천이 있고 해가 잘 드는 한적한 동네였다. 친구 꼬막이가 이사를 축하하며 집으로 식물을 보내주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호식이’로 붙였다. 꼬막이 사주에서 닭이 두 마리가 나와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이라고 놀렸는데, 이제 꼬막이가 보낸 아이를 호식이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몬스테라는 원래 발육이 좋은 아이라고 들었지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자그마했다. 가느다란 두 줄기에 가위로 오려낸 듯한 모양의 이파리가 붙어 있었다. 퇴근하고 오면 호식이에게 가서 잎도 닦아주고 말도 걸었다. 틈날 때마다 살펴볼 수 있는 존재는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호식이와 나 사이에도 크고 작은 곡절은 있었다.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호식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엔 방에서 키웠는데, 잎이 노랗게 뜨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알아보니 통풍이 안 되거나 해를 못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긴급처방으로 호식이를 마당에 내놨다. 당시 주인집 아저씨가 마당에 식물을 열심히 기르셨다. 내가 못 챙기더라도 아저씨가 가끔 호식이를 챙겨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다 여름철이 왔다. 뙤약볕이 펄펄 끓는데도 나는 호식이를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가는데 호식이 이파리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핸드폰으로 조명을 켜서 자세히 보니 해어 까맣게 타들어간 잎도 있었다. 아저씨가 기르는 다른 친구들은 언제나와 다름없는 생생한 모습이었다. 얼른 호식이를 방에 다시 데려왔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간단하지가 않구나. 불광천 투룸에 지내는 동안 호식이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어딘가 병약한 모습이었다.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업무 스트레스가 점점 커져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사 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기차에 호식이도 태워서 데려왔다. 호식이는 부산에 함께 사는 할머니의 손맛을 보더니 튼실하게 자라났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멕시코에서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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