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백단

by 권눈썹

사람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을 가진다. 애초에 다양한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타고난 사람도 있다. 사회초년생때는 그런 사람을 보며 무섬을 느꼈다.


전문가 몇 분을 섭외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업무를 맡았는데, 그 중 분야가 조금씩 겹치는 두 분 간에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나는 양쪽을 왔다갔다하며 진땀을 뺄 뿐이었다. 나중에는 프로그램 내용 때문이 아니라, 태도에 있어서 서로에게 오해가 깊어졌다. 두 사람은 소통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A씨는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었고, B씨는 은근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엔 A씨가 트러블 메이커였지만, 회의실에서는 방긋 웃다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뒤 집요하게 자기 어필하는 B씨가 더 무서웠다.


일터에서 만나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노련함 사이에서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둘렸다. 사람들의 말 표현과 괴로운 내 감정에 가려져 대화의 속뜻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뒷통수를 부여잡으며 상대의 생각을 왜곡없이 그대로 담은 USB를 가지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A씨와 B씨 중에 누구와 일할래? 라고 묻는다면 10년전이라면 고민없이 A씨와 일하겠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고민된다. B씨는 일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날것의 감정을 잠깐 숨길 수 있는 센스있는 사람이다. A씨는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하는 사람이다. A씨의 의사는 투명하게 알수 있지만 회의가 언쟁으로 넘어가면서 일이 지체되고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일하다보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지만 실제로 악의가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 각자 아는 지식이나 겪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상식'의 기준도 다르다. B씨는 전체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감정이 덜 상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프리랜서가 되고 알력다툼에 휩쓸릴 일이 없어 너무 행복하다. 그렇지만 일의 흐름, 각 담당자의 역할 등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그전보다 중요해졌다. 전에는 전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때 동료와 상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직접 해석해야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무리한 부탁을 할때 -이 분은 왜 이걸 요구할까? 이 사람과 나는 각자 역할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내가 직접 소통해야할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간명해진다. 이렇게 나도 사회생활 백단 능구렁이가 되어가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겨울대비... 레코딩 계획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