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
*<(아는건 없지만)가족입니다> 드라마 약 스포 있습니다*
<(아는건 없지만)가족입니다> 드라마에는 졸혼을 앞둔 부부가 나온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결혼생활로 낡아빠진 수건같은 감정만 남아있다. 남편은 지방을 오가며 트럭운전을 한다. 쉬는 날에는 거의 등산 동호회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면 거실에서 배를 북북 긁으며 TV를 보고, 괜히 아내에게 심통을 부린다.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집안에 당신이 앉아있으면 너무 싫어
숨을 못쉬겠어
걸어다니는 것도 싫고
몸에 좋은 약 꾸역꾸역 혼자 챙겨먹는 것도 싫고
저질스러운 말 하면서 통화하는 것도 싫고
훌렁훌렁 벗고 부황뜨는 것도 싫고
부황자국 보는것도 싫어
싫은 이유가 이렇게 구체적이라니. 그냥 전부다 싫다는데 무슨 수가 있겠나. 심란해진 남편은 홀로 등산을 나선다. 산 중턱 쯤 가는 길에 몸에 이상이 와서 쓰러지는데, 다행히 구조는 되지만 사고의 여파로 단기기억상실에 걸린다.
남편의 기억은 결혼초기였던 20대로 돌아간다. 그는 현재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다정하다. 아내에게 '숙이씨~ 숙이씨~' 하고 부르면서 살갑게 대하는데 당사자는 물론 자식들까지 기겁할 정도다. 젊은 시절의 남편은 학벌도 좋지 않고, 서울사람인 아내와 비교해 시골출신인 자신이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녀에게 말 한 마디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하도 귀여워 눈을 질끈 감게 되는데, 미워하는 모습은 마음이 아파 계속 계속 다시 곱씹게 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손대면 닳을까 아까워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지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인데 영원을 맹세하고 그런게 다 의미가 있을까?
또래 친구들이 속닥속닥 이야기 꽃을 피울때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하나 싶어 들어보면 -연애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찰나의 순간만큼 삶이 반짝이는 때가 없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엔 빛이 난다. 그렇지만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고,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 씁쓸한 생각에 잠긴다.
'미국에 가면 우리 서로를 구원해주기로 했잖아'
영화 <미나리>에서 남편 제이콥이 아내 모니카에게 슬프게 읊은 대사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구원을 바란다. 그렇지만 구원은 커녕 더 큰 상처만 남기기도 한다.
사실 '영원한 게 어딨어?' 이것처럼 바보같은 질문도 없을 거다. 이 질문은 산을 타는 사람에게 '다시 내려올건데 왜 올라가?' 하고 묻는 것이나 머리감는 사람에게‘어차피 더러워 질건데 왜 씻어?'하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의 기쁨과 자매품으로 오는 권태와 아픔 같은 것들을 외면하고 싶어 볼멘소리를 내는 것이다. 영원한 건 없지만, 알면서도 믿고 싶어하는 찰나의 감정이 소중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수년 간 밟은 바닥을 또 밟으며 이 길 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애인과 헤어지기 아쉬워 학교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았던 날.
어린이 날을 맞아 엄마 손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들이 가던 날.
친구와 약속에 늦어 뛰다 넘어졌던 날.
길 위에 쌓인 수많은 날들이 징그럽다가 한편 아늑하게 느껴졌다.
기쁨과 슬픔을 다 끌어안고 사는 것이 삶이다. 끝이 정해져 있음에도 앞으로 다가올 지겨움과 상처까지 함께 품는 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