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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Dec 27. 2022

책 속에서 호사스런 겨울

사계절 중에 어떤 계절을 좋아하느냐 묻는 질문에 언제나 여름이라 답한다. 수영 매니아, 물을 좋아하는 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여름이 좋다. 그렇지만 여름의 반대편인 겨울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겨울이야말로 집순이의 계절이지 않은가! 온화한 계절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사람들을 만나면 재미난 일을 만들고, 많이 웃고, 듣기 좋은 말도 들으며 마음이 둥실둥실 뜬다. 저 혼자 높이 올라갔던 기분이 땅에 가까워지면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신경을 곤두서지 않아도 고요하게 행복한 나날이 온다.


뭐니뭐니해도 침대에서 귤까먹고 책 읽는 것이 겨울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겨울에는 문학을 많이 읽는다. 문학을 가까이 하는 것이 가사 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람마다 말하는 습관이 있듯이, 내가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다. 조금 더 고민하면 분명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텐데,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온다. 시와 소설은 다양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비법서이다.


단어가 식재료라면 시는 세계적인 요리사가 예산에서 자유롭게, 전해내려오는 규칙을 따르지 않고 만드는 음식이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무난한 재료들이 아니라, 전형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는 음식. 혹은 친숙한 재료이지만 조리순서에 따라 완전히 새로워지는 음식. 가사를 쓰다 막히면 시를 펼칠 때가 많다. 시에서 발견한 단어를 가사에 그대로 쓰기보단 '이 단어를 이 맥락에 쓰면 이런 느낌이 드는구나!'를 느끼며 딱딱해진 마음을 유연하게 푼다.


소설은 다양한 서사가 깃들어 있는 엄마의 손맛이다.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에서는 인물의 표정을 '아침부터 떠들던 새들이 떠나간 감나무'라고 묘사한다. 인물들 간의 대화나 배경을 묘사하는 단어들은 평상시에 우리도 흔히 사용하는 것들이지만일상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장면이 딱 맞는 상황 옆에 배치될 때 그 단어들이 마력을 발휘한다. 소설을 읽으면 활자만 보고도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혼자 만끽한 환상적인 순간들이 소설에 살아있다.


날이 따뜻할 때는 이런 호사를 잘 누리지 못한다. 뭔가 해야하는데 싶어 늘 마음이 왔다갔다한다. 호사스런 겨울이 왔다. 혼자서 충만하게 행복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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