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마지막 날 엄마와 마트에 갔다. 엄마가 농사 때문에 시골에 살고, 나도 일 핑계로 바쁘다보니 둘이 여유있게 시간을 보낸 게 거의 1년만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 하고 지냈는지 이야기 나눴다. 엄마는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싱어게인 같은 프로그램의 애청자로, 음악에 있어 늘 예리한 지적을 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노래 연습 좀 많이 하라고 잔소리를 시작하더니, 내가 하는 음악들은 내가 정말 좋아서 하기보단 누군가를 의식해 만드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듣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늘 숙제인데 시청자 대표와 같은 엄마의 말을 곱씹으며 올해는 음악적으로 여러 도전을 하며 음악적 색채를 다채롭게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하는 것이 옳은 직업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던 엄마와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감회가 달랐다. 내가 음악 전공도 아니면서 수업도 다니고, 곡도 쓰는 게 용하다며 웃었다.
비건(Vegan)은 2년 전부터 도전하고 있는 과제다.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를 따라갔다 '카우스피러시' 다큐를 보고 충격을 받아 다음날부터 고기를 끊었는데, 생리기간에 앉았다 일어서면 어지러워 벽을 잡아야할 정도로 빈혈이 심해졌다. 비건 식당을 하는 친구 말로는 평소에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과하게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데, 비건식으로 바꿀때 영양분을 고려하며 식단을 짜지 않으면 빈혈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현재는 혼자있을 때는 고기를 먹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때는 고기를 최대한 적게 먹으면서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냉동코너에서 내가 고른 비건 만두를 엄마도 따라 집었다. 처음에 '앞으로 고기 안먹을 거에요' 말했을때, 엄마는 늘상 느끼던대로 내가 이번엔 무슨 별난 짓을 하는가 싶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비건을 선언했을때 강경한 내 목소리가 아직 내 귀에 생생한데 현재는 그 도전에 고착상태에 있어 만두를 집으면서도 내심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엄마가 함께 구입을 해주니 정말 고마웠다.
생리대와 블랙커피 스틱도 카트에 넣았다. 엄마는 이제 생리대를 쓰는 시기가 지났고, 커피도 믹스커피만 마시기 때문에 나에게만 필요한 품목들이었다. 엄마는 나랑 동생이 부모님 집에 갈때 필요하다고 내가 구입한 걸 좀 나눠달라고 하셨다. 일년에 다섯번 갈까말까하는 부모님 집인데 이렇게 대비해놓고 맞이하고 싶은가보다. 엄마는 전화를 왜 안받느냐고. 시골에 일 도우러 왜 안오냐고 타박을 주다가도 내가 가면 작업복이든, 초코렛이든, 달라는대로 얼른 챙겨준다. 과수원 일하랴, 집안일 하랴, 허덕이며 바쁜데도 자잘한 것을 건네주는 얼굴에 기쁨이 엿보인다.
애정하는 사람에게는 흐르는 물처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들면 반대편에서 상대가 다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조언하다 내 말에 도취되어 있는 내가 보인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과 달라 불안해하는 내가 보인다. 사람은 자신이 보는 것으로, 해석한 대로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 산다. 개인의 사정, 생각의 단계, 정의도 다르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롭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모습을 가만히 봐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된다. 입은 닫고, 마음은 열어야 한다. 언제올지 모르는 딸들을 기다리며 생리대와 블랙커피를 준비해놓는 엄마를 보며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한 구절을 부른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