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 Jan 24. 2017

담담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18)

스무살의 나에게


혹시 그런 날 있었어? 혼자이고 싶지 않은데 혼자 있게 되어버린 날, 전화번호부를 몇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해도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었던 날.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뭐하냐고 메세지를 보내고 밀린 드라마나 볼까 싶어 컴퓨터 전원을 누르는데 걸려오는 전화. 약간은 망설이다 전화를 받고 그저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별 일 없지?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울컥 차올라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할 지 몰라 입만 벌리고 있는데 그 사람의 침묵이 지나치게 다정한거야. 모래밭을 걸으며 조개껍데기를 줍듯 단어를 골라 이야기를 시작했어. 간간히 막히고 눈물이나 한숨 같은 단순한 표현들이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은 어쩐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아. 나는 결국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를 생각들까지도 게워내고 말지. 전화를 끊는 소리가 텅 빈 마음에 울리고. 후회할 겨를도 없이 차오르는, 찬 바람 부는 겨울날 품에 꼭 끌어안은 풀빵 봉지 같은 뜨거움. 그런 온기를 느껴본 날이 너도 있었어?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무료했던 어느날의 오후,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내리다가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76살의 할아버지가 24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어-이, 히데오.' 씩씩한 인사에 웃음이 터진 것도 잠시, 할아버지의 말에 빨려들어갈 듯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빼어나게 말을 잘 하는 것도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G2jEEJ8Ee4&t=1s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20살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24살이 아닌 20살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히데오 할아버지의 사연처럼 가장 현명하면서도 어리석고, 바르면서도 후회스러운 선택을 한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리고 그에 영감을 받아 이번 모임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새해의 시작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지 무척 고민스러웠는데 참 다행이었다.



깨발랄한 엽서 구입!



작년 한 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몸도 마음도 무척 지쳤다. 무엇이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인지 알면서도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가장 해로웠다. 모임을 준비할 때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할 일을 끝낼 때처럼'* 하루 하루를 버티는 내가 과연 'Know-我'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걸까?' 하는 속앓이를 했다.

(요즘 내내 듣고 있는 노래. 박원, <노력>)


끝이 없을 것 같던 그 무력감은 나의 20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보며 너무나도 쉽게 풀렸다. '지금의 나라면 그 때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정리하자 '앞으로 10년 후의 나라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결단을 내리자 의외로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긴긴 고민을 하는동안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해도 너무 술술 풀리는 일들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모임 날이 다가왔다.


노아, 열여덟번째 모임은 '스무살의 나에게'.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이부터 스무살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까지,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따뜻한 가슴을 안고 모였-다기보다는 방에 난방을 너무 빵빵하게 틀어줬-기에 훈훈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히데오 할아버지의 영상 편지를 다같이 보고 각자 스무살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그 내용을 일부 공유한다, 그리고 올해의 목표를 딱 세 가지씩 정해서 이야기 나눈다는 단순한 프로그램이지만 함께 하다보면 색색깔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는 봄이 온 것 같았다.



너무 더워서 잠시 복도로 피신했는데 무슨 이야기 하는지 궁금해서 문에 붙어 있었다.



귀여운 스무살 아가씨는 스물한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는다.



무언가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건 이미 극복했다는 증거다.



자연스럽게 올 한해를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 지 깨닫는다.



To. 20살의 윤경이에게.


안녕? 지금 이맘때쯤의 너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겠구나. 나는 29살의 너야. 29살까지도 무사히 살아서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넌 지금 뭘 하고 있니? 예상치 못했던 일들의 연속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즐거운 일들,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이 생길거라 희망을 가졌겠지만, 미안하게도 지금부터 너에게는 조금 더 많은, 절망적인 일들이 생길거야. 가령, (...) 그런 일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미안해. 그게 네가 바꿀 수 있는 미래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말야. 너는 그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단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납득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단다. 그건 너의 성격이야. 변하지 않지. 괜찮아. 네가 하는 선택이 옳아. 아니, 너는 네 선택을 옳게 만들어 갈거야. 29살이 된 너는ㅡ사람에게 과도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되고, 좋은 남자를 만나고, 새로운 길을 찾고, 또 찾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또 만날 수 있는 용기와 매력을 갖게 되고, 서울의 멋짐을 알게 되고, 복층의 예쁜 집에서 살게 되고, 좋은 친구들과 능력과 이해심과 너만의 철학과 글쓰는 재주와 그 글을 읽어주는 응원군들도 갖게 돼.

그러니 괜찮아.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넌 괜찮을거야. 어떤 힘든 순간들이 와도 그건 반드시 지나갈거야. 너는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더 멋진 네가 되어갈거야. 너는 그 순간들 속에서 꿈을 꾸고 그 꿈들을 이뤄나갈거야. 기억해줘. 오늘보다 내일의 네가 더 멋져. 그러니 계속 꿋꿋하게 살아줘.


2017.01.14. 29살의 윤경이가.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아서 2장이나 썼다.



올해의 목표! 언제 어디서나 솔직하고 담담하게 말하기. 편한 친구 10명 사귀기. 청소년 1000명 만나 이야기 나누기.



숙제가 있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올해의 목표 올리기. 응원을 받으면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모인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지 실험해 보고 있고 점점 방향성이 뚜렷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지금까지 마련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욕심 낼 부분-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이 있는 경험을 주는 쪽으로 한다. 욕심내지 않을 부분-고립되지 않도록 한다. 성향은 비슷해도 생각은 달라야 한다. 하나의 활동을 함께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번 모임도 이러한 부분들이 잘 지켜졌기에 각자가 소중한 경험들을 하고 돌아갔..겠지? 나는 분명 그렇다. 한 번 한 번의 모임을 치를 때마다 나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힘이 되어 한 걸음 더, 나답게 나아간다.








본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모임은 '노아 Know-我'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2016년 초 꽃향기 가득한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시작되었구요. 현재는 월 2~3회 다양한 장소에서 독서모임, 자기분석 워크샵, 골목탐방, 낭독과 글쓰기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답게 사는건 무엇인지, 나를 사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궁금할거에요. 지금의 선택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도 알고 싶을거구요.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나만의 기준을 하나 하나 세워나가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아낼거라고 저는 믿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격려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의 작은 목표들을 이루며 나가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을거라구요.


한 테마에 10명이내의 소규모로 모집하고 있어요. 진솔한 대화가 오갈 수 있게요. 누구든지 오실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분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희 모임의 가치는 '자기를 말로 표현해보는'데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 주었기에 가능합니다. 그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러니 경청과 존중으로 보답할 수 있는 분들만 참여해주세요.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 또는 참가신청은 저의 페이스북메세지로 부탁드려요. :)

https://facebook.com/junekwon51







(C) 2017. 럭큐레이터.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junekwon51

블로그-1 https://brunch.co.kr/@junekwon51






매거진의 이전글 담담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