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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Feb 02. 2017

담담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19)

39살의 나에게


"어떻게해서 이 모임을 만드시게 된 거에요?"

"어.. 제가요, 그러니까.."


열아홉번째 모임이 있던 날 눈을 뜬 시간은 열두시 반. 모임 시간은 네시. 알람도 울려주지 않은 핸드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충전기에 잘 올려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나보다. 간밤에 너무 많은 꿈을 꿔서 잠을 잔 건지 다른 세계를 살다 온건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어제보다 조금은 나아진 피부를 말끔히 만들기 위해 한참동안 얼굴을 매만졌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부엌에는 마땅히 먹을만한 게 없었다.



처음인 듯 설렌다.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고 새로이 모임에 오신 분들이 계셔서 일일이 메세지를 보내드렸다.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 전원을 켰는데 배터리가 빨간 색으로 깜빡깜빡 거렸다. 핸드폰에 꽂혀 있던 보조배터리를 뽑으니 배터리가 부족하다며 붕붕 진동을 울렸다. 연휴의 끝자락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이느라 정시에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이런저런 이야기와 침묵이 흐르고 있다가 바로 저 질문이 등장했다.


매번 듣는 질문에 매번 하는 대답을 하려 입을 여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외국 어떤 나라에 불시착한 사람처럼 말문이 막혔다. 깜빡깜빡. 붕붕. 어느새 미지근해진 초콜렛 음료를 일단 마시는데 자주 모임에 와주셨던 Y님이 대신 답을 해주셨다. 그제야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계속 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더 잘 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고 그렇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모임이 끝나고 M님은 저녁을, N님은 뜨거운 차를 사주셨다. 센스있게 덧붙인 새하얀 케이크는 깜짝 놀랄 만큼 달콤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문득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나오면서 불을 켜뒀으니 집은 어둡지 않을 터였다. 그러고보니 전기장판도 켜놓고 나와서 바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냥 느릿 느릿 걸었던 건 발이 얼어붙어서였을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집에 '엄마'라는 존재가 나와 함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칼바람 사이를 느리게 걸었다.






'00살의 나에게'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던 열아홉번째 모임. 준비물은 올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표현하는 단어 하나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책 한권이었다. '노아'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는 나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타인이 하는 이야기도 열린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 외에 정해진 규칙이 없다. 그 날 모인 사람들의 성향과 필요에 맞게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물론 나에게는 이 편이 어렵다.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는 채로 무대 위에 올라간 발레리나 같다. 매일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다져둔 유연성과 기교만을 믿어보는 수밖에.



창문에 붙은 경고문구가 씬스틸러.



다행히 모임에 오래 참여하셨던 분들이 분위기를 이끌어가주셔서 진행이 한결 수월했다. 인원수가 많아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속시원히 하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 분 한 분과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 내 욕심은 조용히 접어두고. 누군가는 난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난 이런 고민이 있어, 하는 이야기를 용기있게 꺼내놓는다. 그런 말이 영 쑥쓰러운 누군가는 책 소개를 하는 척, 그 사이사이에 자기 이야기를 섞어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응원해준다.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리기가 미안할 정도로 즐거운 에너지들이 오고 간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도와줄 책친구들.



ㅡ 2017년 이렇게 '노아'하며 살고 싶다.

Y님 "깨알"같이 시간을 쓰자.

NH님 무엇이든 "시작"하자.

KY님 하고싶은걸 다 할 수 있는 "의지"를 갖자.

YJ님 생각했던 것들을 "실천"하자.

JS님 "긍정"적이고 따뜻한 만남을 하자.

B님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여유를 갖자.

N님 담담하게 단단하게 "밸런스"를 맞추자.

YS님 "커리어"대해 고민하고 길을 찾아가자.

M님 "더 추리"하고 생각하여 내 자리를 다지자.

K님 내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자.



훈훈.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10년 뒤는 나는 이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무겁다면 무거운 결정을 여러가지 내려야 하는 올해.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조지 버나드쇼 할아버지가 말해주었다. 그럼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겠네, 앨리스의 고양이도 말해주었다. '39살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단 움직여보자. '난 그냥, 정말 "싫어"하는 쪽이 아니면 뭐라도 상관없어. "싫어"하는게 별로 없긴 하지만.. 근데 너무 오래 고민하지는 말아줘. 가만히 시간만 보내는건 정말 "싫어".' 39살의 나는 그렇게 대답할 것 같기에.






잠을 설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요즘들어 이상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 액땜을 하나 싶을 정도로 괴기스러운 일들이 엉겨붙는다. 바로 어제만 해도 4차선 도로 한 가운데서 내 차문을 열고 나를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있었다. 황급히 문을 잠그자 창문을 마구 두드리며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서로가 운전 실수를 했음에도 그랬다. 조수석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무척 즐거워보이는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중이었다. 집에 돌아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오늘 있잖아.."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을 때는 어떤 일을 겪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나 오늘 있잖아,"로 시작하는 대화였다. 사실 대화보다는 웅변에 가까웠는데 그렇게 한참동안 이야기를 쏟아내다 보면 어느새 평정을 되찾곤 했다. 엄마가 뭐라고 답을 해줬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마음 속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다, 집에 돌아가면 꼭 그럴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나는 괜찮았다. 그 어떤 일들이 엉겨붙어도 툭툭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엄마와 그런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후로도 나의 곁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만날 수 없을 때는 전화로, 전화를 받을 수 없을 때는 기나긴 메세지로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렇게 나는 괜찮았다. 자연스레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게 된 '엄마'도 생겨서, 가끔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하고 좀 쉬어야겠다 권해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기분이 좋아질만한 선물을 건네주기도 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씩씩하게 선택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받고 또 받다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물리적으로 항상 곁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서로를 떠올렸을 때 마음 한켠에 든든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면 같이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마치 남극의 펭귄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있으면 칼바람도 두렵지 않을테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대화를 통해 이해와 믿음을 쌓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노아'를 만들었다. 그런 연습을 하려고.


(네.. 부디 이 글을 잊지 마시고 다음에 제가 말문이 막히면 누구라도 대신 답변해 주세요 ㅋ)



함께해준다면 든든할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본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모임은 '노아 Know-我'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2016년 초 꽃향기 가득한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시작되었구요. 현재는 월 2~3회 다양한 장소에서 독서모임, 자기분석 워크샵, 골목탐방, 낭독과 글쓰기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답게 사는건 무엇인지, 나를 사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궁금할거에요. 지금의 선택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도 알고 싶을거구요.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나만의 기준을 하나 하나 세워나가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아낼거라고 저는 믿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격려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의 작은 목표들을 이루며 나가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을거라구요.


한 테마에 10명이내의 소규모로 모집하고 있어요. 진솔한 대화가 오갈 수 있게요. 누구든지 오실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분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희 모임의 가치는 '자기를 말로 표현해보는'데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 주었기에 가능합니다. 그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러니 경청과 존중으로 보답할 수 있는 분들만 참여해주세요.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 또는 참가신청은 저의 페이스북메세지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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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7. 럭큐레이터.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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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1 https://brunch.co.kr/@junekwon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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