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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Mar 19. 2022

물     하




내 안에 너를 들이는 일처럼

쉬운 일은 없었기에

너는 나를 쉽게도 버렸다

맴돌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갈 쯤엔 벼랑이 눕더니 평지가 되었다

허공이 땅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새들의 날개가 날카롭다는 걸

나는 안다

움푹 팬 하늘을 자르고

못을 박고

새싹을 틔우는 살갗처럼

어지러워서 충만한 경계의 물 하


내가 스미는 일은 쉬웠다

너는 처마 바깥 마른바람처럼 헛돌고

그래서 너에게 닿는 일은 어려웠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처럼 위태로운 곡예의 시작

그리고 유리 깨지는 소리


방죽에 물이 말라 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긴 가뭄이 바닥을 드러내고

물방개도 소금쟁이도 우렁이도 사라졌어요

너도 그때 함께 사라졌다


눈 내리던 날에

그 밤에

막차 끊긴 정류장처럼

우리가 방랑하던 이방인의 변방 도시가

외롭지 않았다는 것은

흐르고 스미고 버리고 용서하는 물 하의

시간이었다는 것


그렇게 절룩거리는 영혼

나는 등대의 높이에서 바다의 웅얼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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