彼我가 사라졌다

by 시인 화가 김낙필





장가 안 간 아들이 요즘 純해졌습니다

예전에 곧잘 대들기도 하더니

요즘엔 전에 안 하던 눈치를 슬슬 봅니다

아비가 늙어 보여

측은하고 불쌍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나는 오히려 싫습니다

의견이 안 맞으면 옛날처럼 싸우고 싶습니다

그런데 얘가 요즘은 무조건 꽁지를 내리고 피합니다

내가 말 같지 않은 고리타분한 말만 하니까

체념하고 마는 겁니다

노인네 취급하는 거지요

꼰대 취급하는 겁니다


빗길에 조심해서 다녀라

계단 조심해라

더운데 나다니지 마라

어디 아픈데 없냐

있으면 바로 말해주던지 병원을 가라

뭐 먹고 싶은 건 없냐

사다 줄 건 없냐

용돈 부족하면 말해라

마치 애 다루듯 한다


이젠 퇴물이다

싸움 상대도 안 되는 노땅이 되었구나

그래 너도 곧 나처럼 늙을 테니 앞날을 보는 듯할 거다

늙어버린 아비가 애처로운 거다


이젠 싸울 일도 없어졌다

피해버리니까 싸움이 안되는 거다

彼我가 없어져 버린 거다


그래ᆢ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내가 젊은것들에게 맞춰가며 살아야지

그게 남은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생존 방법이다


아들아 짐이 되어가니 미안하다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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