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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화가 김낙필 Sep 13. 2022

回      歸






평생 글이 나를 썼다

내가 쓴 글은 하나 없고

글이 나를 수없이 써대고 갈겨댔다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이쯤이면 글이 내 생명의 은인이지 않은가


글은 언제나 자비롭고 은혜로웠다

어떤 타박도 없었고

시기도 없었고

늘 관대했다

오늘의 나를 살게 한 자양분 이 되었다

여울목에서 방황할 때 길을 가르쳐준 유일한 나의 스승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글이 나를 쓴다

내일도 어김없이 나를 갈겨 적을 것이다

피와 살과 심장과 허파와 내장을 통과하는 허기를 잘게 채워줄 것이다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쓴 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글을 써온 나라는 작자는 한낮 티끌 같은 존재임을 안다

그렇게 하염없이 존재도 없는 존재로 살게 한 허기

문신처럼 새겨진 종이가 구겨질 때가 온다


나를 써먹어줘서 고맙다

나를 여태 버티게 해 줘서 고맙다

그러나 이젠 붓을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그만 온 길로 돌아가자

손마디 여물지 못한 그 시절로 돌아가자


힘들고 지친 별 하나 서편으로 진들

무엇이 어떻게 변할리 만무하려니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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