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겨울 벌판이 보이는 방
볕이 드는 안온한 벽으로 내 그림이 걸려있다
시집보낸 카리브 해변의 춤추는 여인과 아이는 변함이 없다
나와 그녀의 사랑만 변했을 뿐이다
현해탄을 넘어 바다 가운데 가라앉은 사랑이 얼마더냐
윤심덕이나 심수경이나 그 여인들의 노래는 파도였는가
내 그림은 바다였다가 폭우였다가 폭설이 되어버렸다
한 시대가 흘러가면 누구의 벽에 내 그림이 걸려 있을까
대서양을 건너가 맨해튼 에비뉴 36가 제니의 방에 걸려주길 바란다
그렇게 다음 세상엔 歐羅巴로 떠돌다 숨이 다하기를 소망한다
내가 칠하고 긁고 문대던 카리브 해변의 노을은 오늘도 붉게 타는데
나의 사랑은 삭정이가 되어 재만 남았다
어디선가 엘토 색소폰 소리가 구슬프게 울고
그녀 방에 홀로 걸려있는 나의 그림은 시름에 잠겨있다
변한 건 우리뿐
카리브의 여인은 가녀린 허리를 돌려가며
노을 속의 아이를 유혹하고 있다
우리는 반백의 머리 위를 스치는 바람의 영혼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나고야의 저녁은
그림처럼 매혹적이고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