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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비 의 죽 음

by 시인 화가 김낙필





남태령 驛舍 승강장 8-4 출입문 앞에 흰나비가 누워있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나비는 더는 날지 못하고 숨 죽인 채 누워있다

하얀 무꽃 밭에서 놀던 흰나비 같다

그런데 이 역사 안까지 어떻게 들어왔을까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생각났다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을 떠나 라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 페루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흰나비의 죽음처럼


무 꽃밭이 생각나면

메밀 꽃밭도 연상되고

무리 꽃 속으로 춤추는 흰나비들이 연상적으로 떠 오른다

나비는 전철역 역사 안으로 들어 올 일이 전혀 없다


남태령 고개를 생각한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산적의 산채가 있던 이곳에 배추밭, 무밭이 있지 않았을까


나비는 아직도 그 남태령 산적들의 산채 무밭에 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 역사 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나비는

산적의 어깨에 앉아

이곳까지 들어왔다가

영영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




# 남태령 고개는

영남 호남 충청지역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올 때

도성으로 가려면 꼭 넘어야 할 고개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 고개엔 산적들이 선비들의 봇짐을 털 좋은 위치였다

산채가 있었으니 식량을 키우던 무밭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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