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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의 履 歷

by 시인 화가 김낙필




이번 생은 간신히 넘어가는 듯하다

전 생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고

다음 생이 온다면 좀 더 현명한 삶을 살고 싶다

사람의 생이라는 게 각자 다 달라서

만사가 다르고 다양하다

다음번엔 좀 더 치열하게 살고 싶다


미워한 사람에게 죄송하고

사랑한 사람에게 송구하다

별 볼일 없는 사람 눈에 띄어서

인연다운 인연도 아니면서

가슴에 멍과 티로 남겨져 미안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치 앞을 모르고 살다가

종착역이 가까워지니 후회가 남는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늙은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시간을 세월에 송두리째 빼앗기며 헛되게 살고 있다


어느새 단풍이 들고 잎새들이 떨어진다

나무의 생은 저리 단순한데

사람의 생은 변화무쌍하다

가을 나무 밑에 앉아서 지나온 생을 회상한다

까마득히 지나간 먼 날들이 눈에 들어오고

까무룩 하게 가는 길이 멀어진다


러시아 갱들은

지나온 삶의 이력을 온몸에 문신으로 새긴다는데

나는 새겨 놀 문신도 없다


아, 나도 저기 저 나뭇잎처럼 지고 마는가

길가에 낙엽 밟기가 두려워지는 요즘

가을오는 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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