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별장 살이’ 자체가 하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계약을 하고 얼마 안 있어 싱가폴 북미 회담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별장 꾸미기는 거의 애인의 몫이 되었다. 페인트칠을 하고 이케아 가구를 채워 넣으며 별장 생활의 꿈을 꾼 건 나보다는 애인이었다. 나의 관심은 별장보다 별장을 통해 매개된 새로운 꿈들이었다.
‘온전히 휴식과 여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 말은 곧 직장과 집 사이에서 흘러가는 일상과 다른 두 번째 삶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머릿속에 드라이브 하나가 더 생긴 것과 같다. 나는 별장의 꿈보다 별장에서 꾸는 꿈에 더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꿈과 열정이 그런 생각을 발전시키고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기사문 서핑샵 ‘원서프’ 리조트 사장님 커플은 나의 첫 롤모델이었다. 서울에서 유기농 베이커리 가게와 양식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두 분은 이곳에 자리를 잡기 전부터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해온 분들이었다. 그만큼 과감했고, 양양 해변에 있는 어느 서핑샵보다 규모와 쾌적하면서 깔끔한 분위기의 매장을 꾸몄다. 원래 스노우보드 국가 대표로 활동하셨다는 남자 사장님은 멋스럽게 기른 수염에 주방과 바다를 부지런히 오가는 분이셨다. 직접 빵집을 운영하시며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훌쩍 중국으로 건너간 적도 있으시다는 여자 사장님은 항상 해사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거나 안경을 쓴 채 매장 전표를 정리하고 계셨다.
하나의 직장과 사업에 얽매이지 않는 삶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이곳 양양의 아파트는 이제 집이 되었지만, 서핑샵을 오픈하기 전까지 이곳을 부지런히 오가며 별장생활을 했던 선배들이었다. 우리는 염치없이 많은 맥주를 얻어 마시고, 많은 것들을 질문했다. 서울에서 팔던 레스토랑 메뉴를 이곳 양양 서핑샵에서도 팔고, 인터넷 판매까지 생각하고 계셨다. 올해 여름에는 또 양양살이에 빠져 강원도로 살 곳을 옮긴 청년들에게 서핑샵을 내주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셨다. 별장에서 온종일 넋을 놓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원래의 삶과 이어지는 새롭고 신선한 기회를 만들어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 다음 만난 건 기사문 터주대감인 ‘펀서프’ 사람들이었다. 오래된 한옥집을 개조해서 만든 서핑샵에 넓은 자갈 마당. 온몸이 젖은 채로 목재 테이블에 앉아 맥주나 수박을 먹을 수 있는 공간. 펀서프 사장님은 성수기인 여름을 지내면 동남아나 다른 나라로 건너가 남은 계절을 보내신다. 겨울 서핑 강습도 하시지만 이동이 잦은 것 같았다. 언제나 느긋한 표정으로 아주 작은 강아지 ‘우유’와 함께 그곳에 계신다.
펀서프 샵에서 열린 ‘호흡법 수업’을 들은 적 있다. 파도를 타다가 파도에 휩쓸렸을 때 긴장하지 않고 호흡을 정돈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으로 인당 수강료가 몇 만원이었다. 하지만 펀 서프 마당을 가득 채운 수강생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여성 강사님은 외국인 남편과 한 조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강습 수업을 꾸준히 하면 목돈이 모일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 강사님은 ‘고프로’의 한국 총판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만난 별장에서의 ‘드리머(Dreamer)’는 자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이었다. 우리보다 한 해 먼저 양양 별장 살이를 시작한 그들을 우연히 만나게 된 건 어느 주말 아침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커다란 보더콜리 ‘망고’를 산책시키러 나온 그들을 한 번 마주치고, 그날 점심으로 짬뽕을 먹기 위해 찾아간 하조대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되었다. 바바닷가에서 3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빈 공터에 그 자매들과 한 동네 아저씨가 서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이 땅을 통째로 사서 게스트하우스와 까페를 열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다시 찾은 그곳은 멋진 까페와 숙소로 변신해 있었다. 분위기 있는 침실과 화장실, 잔디 마당에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쇼파가 마련된 까페. 폴딩도어 통창으로 시원하면서 조용한 분위기에 하나둘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인테리어와 사업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는지. 또 강원도로 이주한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별장 살이에서 시작해 온전히 주거지를 옮긴 그들의 용기와 행동력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산뜻했다.
나에게도 꿈들이 생겼다. 기자나 피디처럼 기를 쓰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그런 꿈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보겠다는 크고, 작은 의지 같은 것들이다. 대만에 서핑샵을 열겠다는 꿈도 있고, 중화권 국가에 배럴과 같은 서핑 브랜드 총판이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별장 생활’이라는 컨텐츠를 다각도로 이해하고 소개하는 칼럼리스크가 되고 싶기도 하다. 이 중에 어떤 것이 꽃을 피워 내 삶을 바꾸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달에 두어 번 찾아가는 바닷가 내 집에서 이런 생각과 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윤곽을 잡아간다. 별장에서 꾸는 꿈은 서울에서의 삶까지 바꿔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