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이 주는 것만 신경 썼는데 오늘 유난히 몸의 선이 얇아진 게 느껴졌다. 허리나 허벅지에 근육이 집혀서 같은 무게여도 모양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체중보다 사이즈에 집중하고, 몸의 탄력과 선이 바뀌는 것을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난하게 복싱과 헬스 유산소를 끝내고 삼시세끼도 클린한 식단을 먹는 데 성공했다.
기획 취재를 위해 보게 된 연극 한 편이 바디프로필을 준비 중인 나에게 몇 가지 화두를 던졌다. 눈에 보이는, 나 자신과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몸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 내게 조금 다른 차원의 메시지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일까. 나는 내 몸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나의 몸이자 여성의 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좀 더 가늘어지고, 좀 더 아름다워지고, 좀 더 자유롭고, 건강해 ‘보이는’ 몸에 대한 생각도 포함되었다.
<344명의 썅년들> 연극의 배경은 낙태죄가 남아있던 1970년대 프랑스. 여성의 임신 중단이 자유롭지 못했던 때의 이야기였다.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여성은 아이를 낳고 자살하고, 낙태 수술에 대한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던 여의사는 자신이 거부한 여성의 죽음 앞에 괴로워한다. 돈이 없으면 뒷골목에서 암암리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의사를 설득해 안전하게 낙태를 하고도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나는 낙태했습니다”
당대 여성 지식인 343명의의 선언은 시대의 외침으로 번졌고, 법이 바뀌고 사회적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지만 현실의 문제는 한순간에 고쳐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은 여전히 자신이 임신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타인과 국가를 설득시켜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지난한 회유와 죄책감,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혀야 했다.
2021년 1월 1일,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가 효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수술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임신 초기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을 합법적으로 구하는 방법도 없고, 정서적인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상담기관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적어도 2명, 한 해 700명이 넘는 여성이 임신을 중단한다. 공식 통계만 해도 이정도 수치. 기록에 남지 않는 음성적인 수술을 받는 경우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몸은 자유로운가.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충분히 주어져 있을까. 나의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인가. 당장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라는 상황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