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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May 09. 2021

一年百讀_3권 <파타고니아 :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날이 좋을 땐 바다에 나가야지

가격: 19,800원(재생종이로 만든 책)

분량: 421p

출판사: 라이팅하우스

저자: 이본 쉬나드/ 이영래 옮김

     

 1960년대 미국의 히피. 암벽등반과 서핑, 낚시와 스키를 좋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이치를 분명히 깨닫고 친환경적인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 어느 나라의 물을 마셔도 탈이 나지 않도록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소독한 물을 먹지 않는 특이한 사람.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책이다. 제목과 표지부터 마음이 끌렸지만, 서너 번 집어 들었다가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집중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타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파타고니아는 생각보다 ‘젊은’ 기업이 아니었고, 시골 마을 청년의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내 일상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멀어지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에까지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해가 깨끗하게 잘 들고, 새소리가 유난히 집안을 맴도는 일요일 아침.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펼친 뒤로 오전 한나절을 푹 빠져 읽었다.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내 눈과 귀에 들리는 타이밍이 따로 있다. 아직 파타고니아 브랜드가 찍힌 티셔츠 한 장 사본 적 없지만 이본 쉬나드라는 사람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의 날개에는 파란색 체크 셔츠에 아주 튼튼해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그의 모습이 실려 있다. 백발의 고집스러운 표정이지만, 한번 만나 이야기해보고 싶은 할아버지다.     


  제목을 보고 서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지만. 그보다는 암벽등반과 의류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장 흥미로운 앞 3~4장까지는 이본쉬나드라는 젊은이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암벽등반 장비 만드는 일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서사가 이어진다.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바란 것은 단 하나. 직접 손으로 만드는 기술을 쓰는 일을 할 것이었고, 그의 아들은 서핑 보드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된다. 그 자신의 아버지가 각종 설비를 다루는 기술자였고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 버려진 재료들을 이용해 물건을 만들어 생활비를 벌었던 그다운 조언이다. 자본주의의 최대 부흥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는 막연히 큰 돈을 벌고, 많은 물건을 소비하는 생활방식에 저항하는 반골이었다. 구태여 더러운 물을 마시고 다람쥐를 잡아먹으며 고생스럽게 사는 그의 모습이 유난스러워보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기차역에서 ‘변변한 돈벌이 없이 떠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끌려가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덤덤하게 위기를 겪어내는 모습을 보고 인정하기로 했다. 전적으로 본인의 삶에 책임을 진다면, 제멋대로 산다는 게 뭐가 문제인가.      


 겨울이면 장비를 만들고, 4월에서 7월까지는 요세미티의 암벽에서 시간을 보내고, 한여름에는 열기를 피해 와이오밍, 캐나다, 알프스의 높은 산들을 찾아다니다가, 가을에는 요세미티로 돌아와 11월에 눈이 올 때까지 머무르는 식으로 다음 몇 해를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차 뒤에 싣고 다니던 장비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 p43     


 계속해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원단과 생산라인을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나에게도 ‘생산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암벽을 오를 때 바위에 박아 넣는 ‘피톤’을 만드는 일로 돈을 벌다가, 그 물건이 자신이 사랑하는 바위를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산을 중단했다. ‘유기농’ 암벽 등반, 자연을 해치지 않는 ‘클린’ 등반을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해 그것을 또 다른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만든 옷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의류사업도 시작하게 되었다.      


 땀을 흡수하면서 아주 튼튼해 여러 번 고쳐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철학. 여기에 남자도 밝은 색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파격을 더해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대장장이에 가까웠던 그가 요즘 젊은이들이 세상 힙하다고 느끼는 감성의 옷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개연성이 있어 흥미로웠다. 2008년 세계 불황에도 ‘튼튼하고 실용적’인 그의 옷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 연 25%라는 기록적인 매출신장을 이뤄낸다.       


 사업가가 꿈이 아니었던 그는 몇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기업이 흔히 하는 실수들을 연이어 하기도 했고, 가장 처음 시작한 사업은 소비자들의 소송으로 파산 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사업의 철학을 더 깊이 파고들며 해답을 찾았다. 구조조정이 있기도 했고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지금의 파타고니아를 있게 한 것은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팔 것인가에 대한 옳은 질문 덕분이었던 것 같다.      


역경에 직면한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윤리적인’ 구매자가 되는 법을 배워서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쇼핑 이외의 다른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개발하는 일이나,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등 얼마를 주어도 팔지 않을 경험에서 큰 기쁨을 얻는 일 말이다.

- p17     


 이 책은 파타고니아 대신 이본 쉬나드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성공적인 브랜드 철학서다. 애플이나 나이키의 기업 정신과 브랜드 스토리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옷장에 계속 간직하고 싶은 옷은 파타고니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역시 평범치 않은데, 굉장히 현실적인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렇게 다르게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법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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