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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5. 2020

수상한 집 - 광보네

8 - 방송출연



수상한집 개관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kbs방송국에서 기자가 찾아와 수상한집을 둘러보러 와도 되느냐고 했다. 개관도 하기 전에 방송국에서 찾아온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몰랐다. 일부러 돈을 내고서도 홍보를 하는데 방송국에서 기사를 내보겠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락을 나눴던 김 기자님과 수상한집에서 만났다. 김 기자님이 수상한집을 둘러보시고는 언제쯤 개관하느냐고 해서 3주 정도 있으면 개관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김 기자는 수상한집이 참으로 소중한 공간이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제주 분들이 많이 알게 되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수상한집과 관련한 여러 자료를 드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 기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짧은 단신 기사로 내보내는 것도 좋지만 직접 광보 삼춘이 방송국에 나오셔서 수상한집을 짓게 된 이야기를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다. 광보 삼춘에게 여쭤보니 방송국에 나가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하신다.      


“아니 내가 말을 할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방송에 출연을 해. 에이. 싫어.”


“선생님 하실 이야기는 저희가 다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서 읽으셔도 되요. 좋은 일은 되도록 많이 알려야죠. 저랑 같이 가실 거니까 걱정 하나도 안하셔도 되요.”


그렇게 설득해서 겨우 방송에 출연키로 결정했다.      

방송에 출연하던 그날 광보 삼춘을 차로 모시고 가는 내내 걱정이 한 가득이다. 방송국이란 곳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방송에 출연하겠느냐,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눈도 침침해서 앞도 잘 안 보이는 사람이 제대로 방송을 하겠느냐, 생방송이라 사고라도 다시 찍을 수도 없는데 내가 큰 실수를 할 것 같다 등등 별의별 걱정을 다 하는 것이다. 정말 걱정이 많으셨구나. 이렇게 안좋은 상황을 다 상상해서 걱정하시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걱정 마세요. 잘 될거예요.’라는 말 뿐이었다.     

방송국에 도착하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 놓으니 직원이 다가와 출연 때문에 오셨느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하니 출연자 대기실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방송에서만 보던 대기실이란 곳이 있고, 그곳에 소파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서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보고 있는데 직원분이 다가와 분장을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분장이 뭐냐고 하시자, 분장 담당 직원이 ‘화장’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화장을 하느냐고 하자 예쁘고 젊게 나오시게 해 드리려고요 라고 하자 하하 웃으시며 못이기는 척 따라가신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분장을 마치고 나오신 광보 삼춘의 표정이 안 좋다. 분장이 마음에 안 드셨나? 분장해주시는 분하고 싸웠나?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분장실이 더웠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방송시간이 다 되었다며 방송실로 안내를 받았다. 방송실로 안내하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계속 어두웠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해도 아니라는 말만 하시는데 분명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보도국으로 들어가니 그야 말로 수십 개의 모니터에 쓰임을 알지 못하는 기계가 가득했다. 그리고 어두운 방송국 안에 데스크 쪽만 환하게 밝혀진 촬영장소가 있었다. 리허설을 하는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우리는 방송 스텝들이 바쁘게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곳 바깥쪽의 어두운 쪽에 준비해 둔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보 삼춘은 여전히 긴장한 탓인지 이마를 보니 살짝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긴장하지 말라고 손도 잡아드리며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삼춘의 긴장은 여전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광고 시간동안 데스크에 앉아 핀 마이크를 달고 생방송 인터뷰를 준비했다. 앵커의 능숙한 진행으로 재심의 과정과 수상한집 준비과정을 이야기 하였다. 인터뷰 내내 광보 삼춘이 걱정되었으나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니 광보 삼춘은 무난히 인터뷰를 끝낼 수 있었다. 10여분 정도의 생방송 인터뷰를 끝내자, 담당 기자, 앵커와 방송국 직원들이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을 건넸고, 보도국을 나와 환한 복도로 나오니 그때서야 광보 삼춘은 환하게 웃었다. 방송국 직원과 인사를 하고 나서 주차장으로 나왔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면서 옆에 앉은 광보 삼춘에게 어떠셨냐고 물었다.     


“아, 방송국 두번은 못가겠네. 왜 이렇게 컴컴하고 어두워.“


“그거야 촬영하려니까 그렇죠.”


“어두워서 하려던 말도 잘 안 나왔네. 하여튼 어두운 곳은 질색이야.”     


아, 그랬구나. 


그제야 퍼뜩 생각났다. 불 끄지 않고 자는 습관, 항상 문을 열어두는 습관, 이발소에서 얼굴에 수건을 덮고 면도하지 않는 습관, 한겨울에도 냉방에서 자는 습관이 광보 삼춘에게 있다는 것을........

어두운 조사실에서 밝은 백열전구에 수십일 간 갇혀 조사받았던, 창문하나 없는 조사실에 갇혀 있던, 물고문 당할 때 수건을 덮고 있던 기억이 삼춘에게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두운 방송국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시간이 그에게는 고통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서야 했다.      

미안한 마음에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차를 하고 나서 차에서 내려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죄송하다는 말에 선생님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계셨다. 할 말을 잊으셨나, 화가 많이 나신건가 하는 생각에 더 말을 못했다. 그렇게 서있자니 선생님이 드디어 한마디 하셨다.


“근데 저녁 밥 안 먹어? 배가 고파서 서 있을 힘도 없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서있게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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