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2.
# 지난 화에서 이어집니다.
1화 : https://brunch.co.kr/@knzkyzrh/36
수선화에겐 없지만 나에겐 있는 방패 하나. 그것은 혈육의 존재.
내겐 평생 동반자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형제가 하나 있다. 선천적인 지병과 그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은 친누나. 그녀의 이름은 편의상 '알스트로메리아'로 부르고자 한다. 알스트로메리아의 꽃말은 헌신, 우정, 사랑 등 다양한 게 있는데, 무엇을 대입해도 우리 관계와 딱 맞아 떨어진다.
알스트로메리아는 인지능력이 부족해 집 근처 편의점을 가도 길을 잃는 사람이다. 덕분에 발달장애 중증 판정을 받아 사회생활은 고사하고 바깥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한 채, 부모님의 과보호 아래 어항 속 금붕어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난 이상, 내 미래는 날때부터 이미 알스트로메리아로 가득한 꽃밭이었다. 부모님이 타계할 경우 경제적 능력이 없는 그녀를 돌봐야 하는 건 결국 내 몫이 된다.
한편으로 나는 전통적 규범의 결혼이 불가능한 사람으로 자랐다. 연애감정을 갖는 상대가 이성이 아님을 깨달은 이후로 결혼과 평생의 동반자란 단어는 자연스레 선택지에서 밀려났다. 그런 내게 알스트로메리아는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다. 타인과 결합하지 않아도 여생을 혼자 보내도 되지 않을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노화란 필연적으로 우울과 고독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그 속에서 혼자 메마르지 않도록 서로가 지탱하며 살 수 있다니.
반면 수선화는 달랐다. 그는 외동이었고 딱히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그의 유년시절은 애정보단 성적이 더 중요했다고 들었다. 타자로부터 기대와 선망을 받아본 적은 있어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본 적 없는 어른. 그 결핍은 38세가 되어서도 유효했다. 그는 사회성이란 울타리에서 열 발자국 이상 떨어진 사람으로 자랐다.
수선화는 타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그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이든 실리를 따져야 했다. 그런 주제에 싱글이자 독신이란 사실에는 다소 사회적으로 정의된 외로움과 싸웠다. 그 갈증은 관계를 통해서만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언제나 연인이었다. 그는 연애감정이 아닌 다른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충족감을 모르기에 '사랑을 모르는 사랑꾼'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 연인은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존재다. 연애를 진득이 고찰해보는 철학적 교양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그는 남들에게 제대로 설명조차 할 없는 막연한 사랑을 운운했다.
그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다. 내 미래가 알스트로메리아 꽃밭인 것처럼, 그는 자신의 미래가 고독으로 가득한 회색빛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저 착실히 거기에 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 가치관이 가장 충돌을 일으킨 것은 '동반자'를 바라보는 인식이었다.
수선화의 인생에는 알스트로메리아가 피지 않았기에 동반자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다. 10년 전 기준 38세. 미혼이란 신분 자체가 이상한 꼬리표가 붙던 당시, 설렘만 가득한 연애를 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 거기 맞춰 그도 기준이 동반자로서 적합여부로 연인을 골랐다. 단, 그는 자신이 파트너에게 어떠한 메리트를 제공할 수 있는지는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헌신을 위주로 바랐다. 서로를 맞추어 나간다는 피로한 과정은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고, 자신과 딱 맞는 사람을 찾으면 운명이라 여겼다.
나는 알스트로메리아 꽃잎에 착 달라부터 살아가는 기생충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동거나 파트너 같은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알스트로메리아와 사이가 좋았고, 주말에 팔짱을 끼며 홍대 인근을 놀러 다니며 많은 취미를 공유했다. 이대로라면 우리 미래는 누구도 외롭지 않을 전망이다. 사소한 일상 따위 어중간한 타인보다 더 속속들이 이해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번은 수선화에게 동반자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는 사소한 삶의 연속이라 답했다. 주말에 카트를 끌며 동반자와 장을 보고, 같이 집으로 향해 TV를 보며 여유를 부리는 일상. 집 근처 카페에서 각자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란다. 전부 내겐 알스트로메리아와 가능한 일이었고, 실제로 아무런 일정이 없는 주말에 그녀와 누리는 소소한 행복들이었다. 내게 있어 일상은 부부가 아니어도 가능한 평범함의 연속이었다. 숱한 연애를 통해 수선화가 말하는 것들을 연애상대와도 충분히 즐겨봤지만 딱히 알스트로메리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때보다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진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충족되는 마음의 영역이 다를 뿐 반드시 그것이 연인과 함께 해야 하는 무언가란 생각이 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수선화가 느끼는 고독의 뿌리는 거기에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성적이 좋아야 하는 것처럼 관계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소홀히 등진 사람이기에 그는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수선화는 친구가 없었고, 가족들에게도 소홀했다. 오로지 연애. 사랑. 그리고 섹스. 그게 전부였다. 감자탕을 먹더라도 남자와 먹어야만 맛을 느끼는 전형적인 애정결핍형 남미새.
나는 달랐다. 이성애자라 해도 가난하고 병든 가족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못' 했을 삶이다. 사랑의 궁극적 형태, 종착지, 그런 종류의 것들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자란 모두가 사랑보다 가족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갑갑함을 느끼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충분히 많다. 나는 연애보다는 가족, 그리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관계가 우선인 성향이었기에 딱히 사랑이나 섹스 따위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맞다.
환경 탓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 사랑에 대해 다른 가치를 매기는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것이 어쩌면 둘 사이에 균열을 낸 결정적 요소였던 것 같다.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어두운 방. 몸을 비스듬히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수선화는 왜 인생 동반자에 집착해?"
집착. 그 단어를 사용한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단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통칭하는 말. 이미 그 워딩을 입에 담은 순간부터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고자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서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는 졸림 가득한 노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너무나 외롭잖아."
수선화는 결코 외로움이란 단어의 이면을 파헤치거나 깊이를 헤아려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딱히 잘못은 아니다. 세세한 맥락을 모두 짐작하기엔 우리의 어휘가 너무 부족하다. 한국어는 무수히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모두 외로움이란 단어로 정의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수용한 채 살아간 탓이다. 수선화는 그것을 고찰하는 것 조차 시간낭비라 여겼을 사람이다. 초조, 불안, 불쾌, 분노 등의 감정을 '짜증'이란 만능 단어로 표현하는 10대 청소년처럼. 그렇게 그는 자신의 외로움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 37년을 살았겠지.
"외로움은 꼭 연인으로만 해소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서로 인생을 지탱할 동반자가 필요해."
그는 나에 대해 무지했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응축시킨 페르소나로만 사람을 판단하며 그 뒤에 있는 본성까진 바라보지 못했다. 외로움에 매몰돼 감정의 울부짖음을 무시했을 그이에게 20년 동안 외로움의 본질과 마주한 내가 건네는 조언을 '어리다'는 표현으로 깔아뭉개는 태도. 그가 20년 넘게 수학을 공부한 것처럼 나도 동등한 시간을 인문학에 투자했건만. 그 또한 그가 '좋은 동반자'가 되지 못할 것이란 방증이겠지.
"그건 명백하게 외로움과 다른 감정이야. 그건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이야.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그게 쉽게 해소되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야. 어떤 책에서 봤어."
수선화가 그토록 동반자에 집착하는 이유가 고작 외로움이라는 것을 들은 이후, 그를 향해 갖던 열등감이 사라졌다. 자신도 분석하지 못한 미래의 외로움을 이유로, '영원한 사랑'을 찾아 사막을 전전하는 그가, 내 눈엔 신기루가 만든 오아시스를 쫓는 행위처럼 보여 우스꽝스러웠다. 선망이란 관점이 바뀌는 것만으로 이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구나.
무엇보다 지겨운 마음이 컸다. 동반자를 찾아야 했고, 연인이 모든 관계의 정점에 서야만 하는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면 사랑꾼이 될지언정, 관계 맺는 법을 모르기에 썩 멋진 연인이 되기 어렵다. 내 인생에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가치와, 사랑이란 단어에 내포된 의미가 너무나 달랐던 우리는 어느 시점 이후로 매일같이 가치관 충돌을 일으켰다.
열등감이 해소되면 그와의 관계에 조금 진전이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열등감은 우리 사이의 간극을 잠시 가려주는 장막같은 존재였고, 그 가림막이 사라진 순간, 서로가 맞지 않는 퍼즐이었음이 선명해졌다. 그 소모전이 지쳐 결국 나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일정 수준만큼 가졌어도, 근본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열 살이나 어린 내게 매주 10만원 이상의 데이트 비용을 써가며 구애하는 존재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종종 생각하는 "커리어와 연인만 있으면 혼자 살아도 외로움은 극복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주하는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나는 수선화를 통해 재고했다.
어찌 됐든 그와의 만남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외로움은 물질도, 외모도, 지위도 채울 수 없는 정신적 영역임을 깨닫게 해 준, 의미 있는 역사 중 하나로 기록됐다.
그러면서도 나와 알스트로메리아의 관계도 돌아봤다. 알스트로메리아가 고독을 해결할 만능 열쇠가 되지 않을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나의 외롭지 않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그녀 또한 불멸의 꽃은 아니다. 그녀는 뇌 관련 질환과 매일을 싸우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건강한 나보다 수명이 짧다. 인간의 수명이 유한한 이상 우리에겐 반드시 이별이 찾아오고, 그녀가 먼저 떠난 이후 나는 어김없이 세상에 홀로 남아 고독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선화는 마치 결혼을 하면 이별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가 숱하게 많이 만났던 지난 연인들은 모두 관계에 종말을 고했기에 깨지지 않을 견고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연애는 가장 숭고한 관계였다. 하찮은 우정 나부랭이에 할애할 에너지는 없었다. 그는 시절인연이란 단어를 좋아했다. 친구가 백날 있어봤자 조만간 끝날 거라 믿었으니까. 그러면 부부는 여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마법같은 힘이 생겨날 거라고 믿었던 걸까.
현실은 다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이혼율을 생각보다 낮지 않은 편이다. 수선화의 바람과 달리, 결혼이 반드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즉, 그처럼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트너를 찾는다는 발상은 실체가 없는 무언가를 쫓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랑의 영역은 모두가 별개로 정해져 있다. 가족과 친구, 연인이 각각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은 별도의 카테고리로 존재한다. 누나가 채워주는 영역과 별개로 다른 구역에 물을 채워 줄 존재들이 내게도 그녀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까 수선화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찾으면 다른 관계는 곧 끝날 부질없는 사이라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인간관계란 '상황'과 '입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차피 금방 무너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인간은 평생 고독과 마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래서 가족, 친구, 연애, 이 모든 관계에 있어 언제나 성실해야 한다. 3개월 남짓할 수도 있는 연인 찾기엔 공을 들이면서, 최소 3년은 보장될 관계들에겐 소홀할 이유가 없다. 연인이 있어도 친구는 필요하고, 친구가 있어도 연인은 필요하다. 둘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이다. 그리고 가족도.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새로운 만남도 어린 시절 우정 같은 뜨거운 감정을 교류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점점 관계를 인맥으로 포장하고 무언가의 메리트로 계산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그 관계 속에 신뢰나 마음 같은, 연애와는 별개의 무언가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관계'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애초에 신뢰를 잘 쌓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인맥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
감자탕은 친구와 먹어도 맛있다. 별마당 도서관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 모든 맛과 멋을 오로지 옆에 연애상대와 함께 해야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내 마음 속 어딘가가 채워지지 않은 신호일 뿐일 수 있다. 자신의 외로움이 진정으로 어디에서 기인한 감정이고, 지금 내가 어느 부분에서 허기를 느끼는지 들여보는 것이 순서적으로 먼저가 되어야 한다.
복잡하다고 소문난 연애감정 조차도 과학으로 조명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는 노래 제목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 호르몬의 농간임이 제법 오래전에 밝혀진 것이다. 우리는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코르티솔 등. 여러 호르몬과 신경물질이 유기적으로 만든 신체/심리적 현상을 통틀어 사랑이라 부르고 있었음이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호르몬의 장난이라면 술과 담배처럼 사랑에도 중독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그 사례를 주변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선화가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그들은 중독된 것처럼 사랑을 탐닉하면서도 연애가 타자와의 결합이란 점을 망각한다. 대체로 그들은 관계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성이 없는 관계는 배움이 없고, 배움이 없는 인간은 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성숙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과 달리 달리 어른스러운 연애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방의 애정표현을 오로지 자기 방식과 비전대로만 해석해서 초래한 비극이지만 당연히 사랑은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고상함은 탁상공론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수선화는 내게 만족할 줄 몰랐다. 일정 6개를 조율해 겨우겨우 만든 3-4시간 남짓한 시간은 그에게 있어 애정이 아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일정이 모두 비어 아침 10시부터 22시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나는 그에게 있어 그저 '안 맞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설렘 가득한 순간에 홀려, 관계 맺는 방법에 무지했던 탓에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사랑을 찾아 구천을 맴돌았다.
단순히 이런 호르몬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고, 진짜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는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계 자체를 돌아볼 줄 아는 힘이 필요한 것이 이러한 이유다.
비록 내게 알스트로메리아의 꽃이 활짝 피었던 것처럼, 소중한 관계라는 것을 돌이켜 보면 이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모든 관계 앞에서 저마다 다른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것들이 사실은 다른 영역을 관장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어떤 관계가 내게 무슨 깨달음을 주었는지를 먼저 돌이켜 보면, 분명 연애 관계에 있어서도 단순한 설렘과 성욕이 아닌, 무엇이 진짜 안정감을 주는 요소였는지 알게 된다.
만약 당신이 오늘 하루도 또 남자 중독 남미새로 살아갔다면. 그것은 당신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방법을 깨닫지 못한 채, 호르몬에 몸을 맡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늘 하루도 남미새로 살아간 당신이, 진짜로 좋은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에는 반드시 연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바로새기길 바란다.
*본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러 경험을 섞어 만든 가상의 존재입니다.
불편함 없이 읽어도 괜찮습니다.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뿌리가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다스릴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책 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