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연애의 흠집

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1.

by 시논

#1. 수선화(나르키소스) 소개


20대 중반에 만났던 '수선화'는 외모 점수는 조금 모자라도 다른 조건이 꽤나 높은 사람이었다. 전문직 종사자란 직함만으로 추측 가능한 고액 연봉, 모노톤으로 도배된 잘 꾸민 자가, 오랜 자기 관리와 식습관으로 다져진 건강한 체형. 결정적 요소로 물려줄 것이 많은 부모님.


그를 만났던 25살의 나는 그것과 비교하면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에게 가끔 잘생겼다고 듣는 것 외엔 가진 게 없는, 그저 젊음만이 셀링 포인트인 흔한 20대. 네임밸류 떨어지는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 재학생 신분으로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유지되는 가난한 매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다리를 어떻게든 오르기 위해 잠도 줄여가며 노력하는 빈곤한 아나운서 지망생. 또래와 견주어도 크게 내세울 것 하나 없던, 갑갑했던 시절.


수선화를 만나는 동안 딱히 그를 잡아 팔자를 고치겠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쓰진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 있으면 스스로 열등감이란 불구덩이에 기름을 붓는 듯한 감각에 휩싸여, 유리구두도 아무나 신을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38살의 내가 A와 같은 삶을 살 순 없을 거란 미래는 아무리 거절해도 따가울 정도로 가슴에 꽂혔다. 그 아픔이 사랑보다 컸다. 내 기억 속 우리는 결코 '건강하지 못한 연인'에 가까운 사이였다.




#2. 나는 왜 건강하지 못한 연인이었나


1교시 수업을 위해선 오전 9시까지 강의실에 도착해야 한다. 집에서 가까운 역까지 도보 15분. 지하철로 편도 1시간. 역에서 학교까지 도보 10분. 1호선의 배차간격까지 계산하면 웬만한 직장인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야만 지각을 면한다. 딱히 헤르미온느가 되고 싶어서 아침부터 부단히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오후 2시부터는 교내 아나운서 활동이 잡혀있었고, 그 이후 토익, 일본어, 한국어, 한국사, 시사상식, 논술 스터디까지 소화해야 하는 탓에 피곤해도 이른 아침 수업을 넣는 게 학점 관리에 유리했을 뿐이다.


학교 밖을 벗어나도 바쁜 건 변하지 않았다. 월수금 저녁은 방송 아카데미, 화목은 쇼호스트 아카데미가 있는 날이다. 학벌로 충분히 지고 있기 때문에 외모만큼은 경쟁자들에게 주눅 들고 싶지 않아 가방을 가득 채운 화장품들로 남자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점검한다. 세간은 아직도 이유를 불문하고 얼굴에 분칠을 하는 남자를 곱게 보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숨어서 하느라 쓸데없이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이 모든 스케줄이 끝나면 밤 11시. 주말엔 낮과 밤으로 각각 다른 아르바이트 일정이 있었다. 주말에 주어진 휴식은 그 사이에 낀 세 시간 남짓. 즉, 주말에 종일 시간을 내기 위해선 스케줄을 2개나 조정하는 번잡함이 필수였다.


이 퍽퍽한 현실 속에서 연애는 사치나 마찬가지였다. 내게 수선화를 만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쥐꼬리 월급을 모아 버버리 가방을 사는 것처럼 자투리 시간을 쪼개고 모아 그에게 할애하는 것. 그래도 일주일에 두 시간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그 '노력'을 알아주기만 한다면, 그걸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는 몰랐다.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대학생은 무조건 시간이 남아돈다고 생각했고 언제든 원할 때 시간을 뺄 수 있다고 믿었다. 내게 있어 바쁨도 그에겐 그저 유별이고 유난이었다. 그래서였다. 어느 여름날, A는 전라도 광주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방증하듯 아르바이트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내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알바 다른 날로 바꾸면 되잖아."

"도대체 왜 내가 알바까지 바꿔서 광주를 가야 해. 대체 거긴 왜 가고 싶은데?"

"그냥. 전라도에서 제일 발달한 지역이라잖아. 궁금해."


내게 주말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적어도 일을 2개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며, 그걸 위해선 평일 스케줄을 또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도합 6개가 넘는 일정을 다시 짜야만 한다. 회사에 연차 하루 올리면 그만인 직장인이라 그런 속 편한 소리가 가능했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철부지 같은 행동도 이해는 된다.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없었다. 홀 서빙보다 값진 노동인 고액과외로 쉽게 돈을 벌었던 사람인지라, 시간당 5,000원 남짓한 돈을 받는단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아르바이트가 하기 싫을 때 툭 던지고 떠날 수 있는 하찮은 일이라 믿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렇게 책임감으로부터 방탕한 사람은 아니었다. 3,000원짜리 소주 한 병을 나르는 일이라 해도, 반갑다고 도움이 필요할 땐 말씀해 달라며 영혼 없이 내뱉는 일이라 해도 소중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일정보다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광주도, 갈 수 없었다.




#3. 그래서 나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단순히 '내 사정을 알아주지 않아서' 따위의 어린 감정이 아니었다. 동경. 아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내가 바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절반 이상은 아르바이트 탓이다. 다시 말하자면, 노동이 배제되면 생활이 함께 공제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내겐 꿈을 이루기 위해선 '아카데미 추천 생'이란 타이틀이 필수 요소였다. 쇼호스트 아카데미에서 간간이 던져주는 라이브 커머스 아마추어 진행자 오디션이라도 수강생이 아니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원비는 3개월에 200만 원. 결코 적지 않은 금액. 이것을 감당할 수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남들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무엇도 이룰 수 없었다.


그것이 한순간도 사무치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핑계로 삼기 시작하면 없는 살림에서도 무한한 사랑을 준 가족들에게 죄스럽다고 느껴, 최선을 다해 현실을 타개할 방법과 부딪혔다. 당연히 현실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남들처럼 적당한 곳에 취업하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졌을 텐데 '하고 싶은 걸 해야만 하는' 기질을 달고 태어난 탓에 그런 인생을 굳이 선택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부할 시간이 줄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선 잠을 포기하는, 끊을 수 없는 악순환.


반면 수선화는 달랐다. 그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어느 제약회사의 연구원이었지만 딱히 그것이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행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꿈을 가진다는 행위 자체가 그의 인생엔 없었다. 그냥 본인이 가장 잘하는 과목이 과학이었다고 한다. 수학도 좋았지만, 과학이 조금 더 머리를 쓸 수 있는 일이라 재밌었단다. 그래서 집에서 대학원까지 학비를 지원해 줬고, 딱히 큰 열정 없이 일을 다니는 중이란다. 하루하루 소액투자와 코인창을 바라보는 것이 소소한 낙이며, 인생의 동반자만 찾으면 더 이상 결핍이라곤 없는 그런 삶.


무언가를 간절히 하고 싶었음에도 70만 원이 없어 지원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자란 나와, 한 달에 7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딱히 좋아하는 것 없이 살았던 그의 가치관은, 어쩌면 태생부터 맞추는 게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수선화는 내게 예쁜 미소와 낯가림 없는 성격, 누구든 집중하게 만드는 화술을 부럽다고 얘기했다. 그딴 건 전부 내가 노력으로 빚은 모습이다. 매일 거울 보며 가지런한 미소를 연구했고, 방송 일을 하려면 무대공포증이 없어야 한다며 벌벌거림을 딛고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섰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급격히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돌변한다.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내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MBTI가 I로 시작한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페르소나와 평생을 함께했다. 이것은 누구든 노력만 하면 거머쥘 수 있는 하찮은 장기지, 천성이 아니었다. 심지어 본성에 어울리지도 않아 입을 때마다 불편한 턱시도 같은 옷.


반면 수선화가 가진 것은 내 기준에선 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탐나는 보석이었다. 내 불행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그 감각을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에게 있어 가난이란 본 적 조차 없는 그림이다. 그 칙칙하고 습한 회색빛 기억을 모르고 살 수 있다니. 얼마나 컬러풀하고 값진 삶인가.


수선화와 내 사이엔 10년이란 간극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38살이 되었을 때 좋은 자가와 외제차를 몰고 다닐 수 있을 거란 그림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누나와 매일 라면을 끓여 먹으며 허기에 허덕이는 익숙한 환경이 조금 더 그럴싸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가난이 가장 슬픈 이유는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던가. 실제로 수선화를 만나는 동안 그는 내게 무언가를 맞추는 것이 자신의 선택지를 국한하는 죄인 것처럼 굴었다. "이래서 사람은 적어도 비슷한 처지끼리 만나야 하나 봐"라든가 "다들 학생 만난다고 하면 괜찮냐고 물어보더라" 따위의 비수를 꽂는 건 그에게 있어 헤아림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더욱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노력이란 탈을 쓴 욕심은 그 본색을 드러내며 나를 더 후줄근하고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수선화는 물론이고 나 자신까지 모두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서 내가 사랑하는 인물은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싫어했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질투했기에.




#4. 관계엔 외부적 요인도 중요한 이유


그와 함께 있을 때 열등감을 자극하는 스위치는 환경 탓만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는 수선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섹터였다.


학원에 가면 펼쳐지는 별천지가 그것이다. 이미 주변에서 외모로 칭찬을 잔뜩 들어 어깨가 한껏 솟아오른 사람이 8할 이상인 이상한 공간.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들은 거기 다 모였는지 공작새 모임을 방불케 했다. 나는 감자 밭에서 가장 예쁜 모양이었을진 몰라도 준비된 조각들 앞에선 그저 덜 모난 감자에 불과했다.


카메라 테스트가 있던 날, 성형을 해야 할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타고나길 얼굴뼈가 그리 작지 않게 태어난 탓에 화면에 이목구비가 퍼져 보인다는 이유다. 그럴 돈이 있었다면 진작에 눈이라도 째고 코라도 세웠지. 한 번도 못났다고 주눅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꿈 앞에선 좌절의 연속이었다. 메이크업이라도 힘들게 받으면 달랐겠지만 회당 5만 원가량의 살롱 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삶을 영위하던 내게 너무 큰 금액이었다.


그렇게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실기에 매진해 보았지만 이미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실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가요 프로그램부터 진품명품까지 온갖 프로그램 상황극에도 유연히 대처했는데 도대체 뭐가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당연히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을 탓하는 법이다. 화면에 비친 내 모습. 저 일그러진 얼굴과 몸뚱이가 감히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예쁜 정도론 소원을 성취할 수 없다. 미인박명이어도 좋으니 이 퍽퍽한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잡을 수 있는 외모를 갖고 싶었다. 이제 지인들의 평가마저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백날 나에게 잘생겼다고 해봤자 내 사진엔 "훈훈한 척하지 말아라"라는 장난 섞인 댓글을 남기고, 희미한 인상의 근육남 사진엔 좋아요를 눌러주는 그 태도가 진심이라 여겼다.


한 번은 그런 장난에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을 준비하는 입장으로서 그 말이 가수에게 노래를 못한다고 매도하는 수준의 상처가 된다는 것조차 관심이 없으면 내 주변에 서성거리지 말고 제발 사라지라고. 실제로 그 사람은 내 인생에서 아주 깔끔하게 사라져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 사이가 됐으니, 꽤나 효율 높은 공격이었다.


수선화는 이 이유에 한해선 오히려 2차 피해자다. 세간의 평가로 하여금 상처받은 내가 이런저런 어두운 감정을 쏟아내고, 이윽고 관계의 종말을 맞이한 희생자. 본인이 열등감을 제공하는 원흉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유 하나에 타격을 입힌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직접적 사례로는 수선화가 내게 늘 잘생겼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 나름의 칭찬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자신의 외모가 그저 잘 닦은 감자라고 생각한 내게 그런 이유는 오히려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불안의 씨앗이었다. 내가 학원에서 보는 숱하게 많은 미인들이 있는데 나 같은 걸 골라 사랑한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나보다 잘난 사람과 마주하면 마음을 빼앗겨 나를 버릴 것이란 기묘한 불편함이 마음속 어딘가에 존재했다.




#5. 이별 후에 깨닫는 것들


결국 내가 그와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이별은 빠른 속도로 찾아왔다. 좋은 핑곗거리를 하나 찾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가 나의 환경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수선화와 이별한 후,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내가 행복한 연애가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당시 사랑을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황폐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마음을 표현하면 그 마음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내가 아직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도 고작 나 정도론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수선화에게도 그랬다. 그냥 "광주에 가고 싶다"는 한 마디에 내 맘 속은 방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고, 결국 "나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란 결과를 도출했다. 애인과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사소한 기대마저 이뤄줄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내게 여행이란 오히려 이해받지 못한다는 불만과,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의심하는 불안만 터트린 기폭제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해석한다. 타인의 마음과 행동도 결국 내 입장에선 사물에 불과하다. 딸기는 내 입맛에 달고, 가루약은 쓴 것처럼, 사물인 이상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경험과 시야를 투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열등감이 존재하는 관계는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다. 그 감정 자체가 이미 부정적인 해석을 시작했다는 증거이기에.


열등감은 비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수선화의 경우도 그랬다. 그와 나는 별개의 독립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생과 내 처지를 끝없이 비교했고 그가 선택한 모든 것을 쉽게 얻은 것처럼 비하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전혀 다른 개체이며 인생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의 마음을 보다 진지하게 들여다봤어야 했다.


특히 가장 착각에 빠지기 쉬운 부분은 자기 평가가 객관적이라 여기는 관점이다. 거울로는 평생 좌우가 반전된 얼굴만 볼 수 있는 것처럼, 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생각만큼 객관적이지 않다. 물체에 닿아 투과되는 빛처럼, 조금이라도 굴곡이 있으면 결코 곧은 모양으로 뻗어지지 않는 프리즘 같은 프레임이다. 그래서 오염을 인지하기도 어렵다. 자기 평가가 낮은 사람들이 바닥 없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낮은 평가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수선화와 내 사이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핵심은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도저히 나아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런 암울함을 겪어본 적 없는 A를 질투했고 '역시 나를 이해하지 않는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마음속 끝없는 심연이 들킬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론 당연히 내가 던진 짧은 힌트만으로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란 착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왕성하게 누군가와 연애를 해야만 마음이 진정되었던 나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않은 채 4년의 시간을 보냈다. 수선화 이후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 부분에 기인한 열등감에 휩싸였고, 그것이 곧 관계를 갉아먹는 일을 많이 겪었다. 그 결과 '불안형 애착유형'까지 형성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가시로 찌르고 다니며 관계를 종말 시켰다.


이대로 가다간 평생 나는 물론 다른 사람까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로 최후를 맞이할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서 최소한 무언가를 사랑할 줄 알게 되고 난 이후부터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연애적 만남을 일절 밀어내며 살았다.


혹시나 내가 누군가와 비교를 하며 끝없는 절망감, 그리고 불안감에 빠지는 사람, 그래서 매번 다치는 길을 선택했던 사람이라면, 지금 한 번 그 사람을 사랑할 때 정말로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을 흩뿌리는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이켜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에세이는. 이 방대한 프롤로그를 시작해, 나와 같은 '불안형 애착유형'을 형성하게 된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보고자 한다.


*본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러 경험을 섞어 만든 가상의 존재입니다.

불편함 없이 읽어도 괜찮습니다.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뿌리가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다스릴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책 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