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 #0.
얼마 전,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메일의 내용을 발췌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쓰신 글들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의 몰입력 만큼은 근래 읽은 모든 텍스트 컨텐츠들 중에 최고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동시에 상당히 슬펐습니다. 이기주의와 자기연민, 열등감. 그리고 그것이 사회와 타자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버린 당신의 내면이 생생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가 단순히 일기를 쓰고 싶어서가 아닌, 출간 및 출판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이 브런치라고 해서 꼭 파편화된 글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야 이해되는 장문의 콘텐츠를 연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업작가가 아닌 관계로 글 하나를 올리는 데 한 달 남짓한 시간이 걸리고, 각각이 하나의 연작성 에피소드 구성을 취하고 있어,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본 메일을 받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조금 엉망이지만, 본 에세이(브런치북)의 프로로그이자 작가 소개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중간에 외전처럼 제 이야기를 잠시 적고자 합니다.
저는 기자 출신 마케터입니다. 언론고시를 오래 준비했고, 다양한 사회 문제를 공부하며 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쨌든 글을 써서 돈을 벌었던 입장이라 아마추어는 아닙니다. 지금은 언론보다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조금 더 열과 성을 다하고 싶은 일개 회사원이기에, 프로 출신의 아마추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기사로 배웠기에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재능은 없습니다. 지금은 문학/에세이를 시도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소설로 작문을 시작한 친구들보다 현저히 뒤쳐집니다. 그나마 강점이 있다면, 기사처럼 탄탄한 구성과 취재력, 무언가와 무언가를 연결시키는 힘이라 분석했습니다.
또한, 저는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으로 정의하는 사람입니다. 언론고시도 실패했고, 결국 기자 일도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포기할 용기가 없어 계속 붙들고 있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해도 근처조차 다가갈 수 없는 분노도 공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사람보다,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제 주변에는 아직 자신의 할 일을 찾아 한 회사에 정착하지 못한 30살 청년도, 몇 년을 노력해 결국 출판에 성공한 신예 작가도, 포기할 뻔한 꿈을 계속 다잡아 결국 첫 공연에 성공한 극작가도,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제대로 취업조차 하지 못한 하이스펙 청년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적어도 저처럼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자책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고, 현재진행형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중입니다.
세상에는 꿈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보다는, 저와 같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 자신의 마인드를 바로잡아라' 따위의 조언은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어드바이스는 개개인의 슬픔보단 더욱 비참한 처지의 누군가와 비교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슬픔은, 아래가 아닌 위를 바라보며 자신을 연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우울의 메카니즘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언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저와 같은 고통에 마음이 찢어진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더 리얼한 실패담을 쓰자' 였습니다. "나는 이만큼 실패했는데 너희는 그래도 사정이 낫잖아?" 따위의 못난 글이 아닙니다.제가 왜 이렇게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하는지를 부끄럽지만 모든 사정을 밝히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새로운 힘을 얻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솔직합니다.
저는 게이섹슈얼 시스젠더 남성이고,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며, 변변찮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첫 기자생활을 시작한 잡지사에서 연봉 2,400만원으로 계약해, 달에 200도 받지 못하는 가난한 글쟁이였습니다. 잘생겼다는 말을 듣고 살지만 그렇다고 연예인 급은 아닌, 그냥 평범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고, 이것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여전히 자책합니다. 아직 거울 앞에서 눈을 돌리고, 미용실에서도 계속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못난 사람입니다. 이 모든 저의 이야기는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완전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잘 빚은 페르소나로 울퉁불퉁한 이면을 꽁꽁 감추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리얼하고 생생한' 간접체험을 위해, 글에서 만큼은 모든 백그라운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난도, 학벌도, 컴플렉스가 되었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소통해야 조금이나마 독자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기획 방향 자체가 "일본생활 자립기" 라든가 "초보에서 촉망받는 팀장까지" 같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기에 어두운 글이 올라옵니다. 하나의 글에 좋았던 일과 싫었던 일을 모두 담아버리면 그저 일기가 됩니다. 통일성을 해치지 않도록 최대한 성공담을 자제하고, 실패담을 그대로 적되 반성을 곁들여 지나치게 톤이 다운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제가 설정한 본 에세이의 방향성입니다.
그렇다고 제 인생 자체가 어두운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현재 도쿄에서 안정적인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한국에는 저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수 십 명에 달해, 매번 한국에 갈 때마다 점심 저녁으로 스케줄을 잡아도 절반도 채 못 보고 올 만큼 인간관계도 좋은 편입니다. 회사가 끝나면 주짓수나 디제잉 등 개인 시간에 할애하느라 집필 시간이 부적할 정도로 충실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이런 흔한 일상은, 누군가에게 깨달음과 인사이트를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복한 인생은 저보다 더 잘난 사람들, 나 혼자 사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충족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에 조금 더 조명을 비출 뿐입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저는 현재 나를 잊은, 그리고 잊을 사람들에게 라는 브런치북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이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제 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나에게 열등감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 옛 연인, 우리 가족을 하녀 부리듯 했던 친할아버지, 한때 모든 것을 공유할 만큼 친했지만 고작 말 한마디 때문에 철천지 원수로 돌아선 옛 친구, 연락처도 있고 언제든 닿을 수 있지만 결코 서로 컨택하지 않는 동창 등. 이들은 비단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공감의 폭이 넓은 관계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두가 경험한' 일상을 통해 어떤 특별한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굳이 연인 사이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관계든 헤어짐에는 좋은 감정이 남아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별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는다면,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관계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별을 단순히 서러워하고 사무치는 것보단, 내 인생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궤적임을 수용하고 내적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길 바라는 시야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저는 요즘 흔히 말하는 '불안형 애착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인관계에서는 이것이 주 이별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연락이 조금이라도 오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 여겨 혼자 토라지며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를 정말 좋아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3년, 5년 같은 장기 연애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행동이 변하고 마음이 식었음이 느껴지면 나를 더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아 떠났습니다.
이로 인해 상담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번 상담은 유년시절을 향해 화살을 돌렸습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순간이 있었고, 그것이 한에 사무쳐 불안형 애착유형을 형성했다는 결론입니다.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난했다고 상술했으나,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모자람이란 걸 모르고 살게끔 최선을 다해 사랑해준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제가 인정이 많고 속이 유약한 것도 사람 좋은 부모님의 유전자라 생각합니다. 누나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제게 있어 누구보다 가장 친한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저희 누나는 자신을 바보라 놀리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저를 여자같다고 놀리는 사람은 참지 않았습니다. 박치기를 해서라도 그 사람들을 혼내주던 대장부였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제 성 정체성에 대해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애들이 모두 "너 그럴 줄 알았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해'했고, 그걸로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반에서 배척을 당한 적도 없었습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20년 전의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을 밥먹듯이 얘기할 정도로 10대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 자부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제 유년 시절이 '사랑받지 못해서' 불안형 애착유형이 형성되었다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 가족들에게, 저를 그대로 받아준 친구들에게 무척 실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문가들과 몇 차례 상담을 받았고, 제 일기들을 수 차례 리뷰하고 분석한 끝에, 제가 불안형 애착유형을 형성한 이유를 너무나 잘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외모지상주의적 성향입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응당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술했듯 저는 제 외모를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이 때문에 시험에 낙방했다고 여겼고, 피나게 노력해봤자 결국 카메라에 예쁘게 담기지도 않는 외모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관리 조차도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 저는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일 자신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추궁하게 됩니다. 그의 진짜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서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했고, 그것을 위해 행동심리학을 공부할 만큼, 사랑을 받아며 행복해도 모자랄 시간에, 남의 마음을 파헤치는 데에만 집착했습니다.
두 번째는 제 첫 연애 경험입니다. 저는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 무려 하루만에 차였습니다. 그 자초지종은 대략 이렇습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저에게 첫 눈에 반했다며 끈질기게 연락을 했고 그 결과 그의 마음을 받아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갑자기 "내가 뭐에 홀렸었던 것 같다"면서 관계를 재고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후 연락을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20년이 지나도록 그 사람에게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그 태도가, 하루 아침에 무참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매일을 좋다고 연락하며 쫓아다니는 그 열정은, 신기루에 가까운 환상이며, 트리거가 눌리는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모임에서 누군가가 저에게 호감이 있다고 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콧대가 높고 눈치가 없다는 소릴 들어도 괜히 상처를 받는 것보단 차라리 고고한 꽃으로 남길 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담에서는 늘 유년시절의 애착형성 과정에서 실패한 것이라 진단하지만, 사실은 저처럼 성인이 되고 나서, 무언가에게 큰 상처를 받거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연애 한정으로' 불안형 애착유형이 형성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매일 휴대전화를 붙들고 연락을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것보단, 자신의 불안한 심리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돌이켜보자는 취지의 책을 출판하고 싶었습니다. 친구 한 명에게 미저리라 불릴 만큼, 모든 관계에서 버림받을 용기와 싸우던 저도, 지금은 저를 무한으로 아껴주며, 저를 위해서라면, 한국으로 가서 살아도 된다고 말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배우자를 만났습니다. 제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쳐 나오는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런 튼튼한 관계를 만들기까지, 저는 끊임없이 저의 내면과 싸웠고, 경험을 분석했습니다.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에게'는 에세이의 탈을 쓰고 있지만, 구성적으로는 픽션에 가깝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갈래가 문학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고, 저 또한 기존의 기사나 칼럼같은 문장보다는 문학적 표현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에세이인 이유는 제 경험담과 생각에 기인해 쓴 글이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순서와 구성이 조금 다릅니다. 1화와 2화에 등장하는 '수선화'라는 인물도 실존하지 않습니다. 그와 겪었다고 적은 트러블 역시 수선화가 아닌 다른 여러 사람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재조립한 내용입니다. 하나의 글감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춰 경험을 구조적으로 맞춘 문학정 장치입니다. 래서 내용은 반드시 제가 경험했던 무언가지만, 그 글과 100% 동일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님을 염두해주시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 챕터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에세이 1화는 열등감이 연애를 어떻게 망치는가에 대해 쓰고 싶었고, 이를 통해, 내면의 열등감을 먼저 극복하고 나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결국 좋은 사람이라도 떠나보내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에세이 2화는 관계에 있어 연애에만 매진하면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허기를 채울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군가를 만나며 열등감을 겪었던 이야기, 제 불안한 성향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오해했던 에피소드 등을 엮어 '수선화'라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실제로 지인과의 대화를 그대로 적었다가 논란이 되어 문단을 떠난 한 작가의 사례가 있습니다. 에세이에 있어 특정 인물을 그대로 심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저는 일기를 쓰고 싶은 것이 아닌,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이켜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각 챕터의 중심인물은 가상으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가족들이나 절친한 친구 등이 조연들은 실재합니다. 알스트로메리아 역시 실존 인물입니다.)
앞으로도 각 챕터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일 예정입니다.
특정 독자 분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매우 황량하고 열등감에 찌들어 그것을 모두 남자와 사회 탓으로 돌리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편으론 저의 필력이 상당하여 그것이 저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보인 덕분이라 생각해서, 오히려 감개무량합니다.
저의 다른 시리즈인 '일본생활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이름만 대면 대부분이 알 만한 중견급 회사에 잘 재직 중이며, 카구라자카라는 도쿄의 좋은 동네에서 파트너와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취업사기까지 당한 제가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며 일본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브런치북 시리즈에서 풀고자 합니다. 그 부분은 100% 경험에 기인했고, 중반부를 넘어갈 수록 분위기가 밝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두 가지의 속성이 완전히 다른 작품을 쓰는 브런치 작가로서, 각각 다른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최대한 잘 와닿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제가 쓰는 글이 누군게에겐 넋두리처럼, 한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제 글이 리얼하고 생생하게 잘 쓰인 증거로 받아들이고,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관계에서 늘 상처받는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양질의 글을 쓸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이 여정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께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를 잊은, 그리고 나를 잊을 사람들 시리즈]
사랑, 질투, 욕정... 어떤 관계든 반드시 뿌리가 되는 감정은 존재합니다.
이를 잘 다스릴 줄 안다면 인간관계는 책 보다 좋은 성장촉진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가 떠나보낸 가족, 친구, 동창, 연인들을 추억하며.
그들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정리하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본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