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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땅을 밟았다.

by 수말스런 여자

경기도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을 다녀왔다. 어제 그 폭염 속을 할배 할매는 겁 없이 움직였다. 사방을 돌아볼 것도 없이 우리 연배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철원, 포천, 연천, 양주 쪽 방향은 우리 부부에겐 늘 단골 코스다. 365일 어느 때나 거의 교통체증이 없다. 가끔 서울에 거의 다 와서 밀릴 뿐이니. 아래쪽으로나 동해 쪽으로 움직이려면 머리부터 아프다. 그리고 이쪽은 개발도 안 되고 한적하고 고즈넉한 자연의 풍경에 난 언제나 릴랙스 하게 빠져든다. 언제 가도 편안하고 좋으니. 그래도 어제는 심했다. 해바라기 저리 가라 싶게 내 얼굴도 노랗게 익었다. 어제의 최고 관람지는 세 곳 중에 선사 유적지다. 나이가 든 탓인지 이런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맛이 젊었을 때보다 만족도가 크다. 자식새끼들에게서도 벗어나고, 누구를 위해 힘 빠지게 돈 벌 일도 없으니. 그저 체력 되는 대로, 시간 되는 대로 후적후적 떠나면 되는 거다. 어제도 나야 늘 사전 정보도 없이, 기대도 없이 따라나섰는데 가서 보니, 30 만평의 대지라는 사실에 입이 딱 벌어진다.


70년도에 이곳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 구석기시대의 기존 학설이 뒤집혔다.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호모에렉투스는 약 30만 전에 살기 좋은 아시아, 한반도 중부까지 이주하여 정착한 거다. 직립 보행이라는 뜻의 학명을 가지고, 최초로 돌도끼를 사용하고, 불도 보존했다는 호모 에렉투스가 멸종되고, 현생 인류인, 즉 지금 지구상의 인류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여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고고학적 학설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는 대가리를 굴릴 줄 안다는 거다. 하여 지금까지 멸종되지 않고 살고 있으니, 난 거룩한 종자라고는 말 못 하겠으나 참말 위대한 종자라고는 감탄합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산다는 건 좋으면서도 약 천 만년 전의 아프리카의 최초의 인류인 조상이나, 지금, 여기의 우리나 여전히 산다는 게 고달프고 힘든 듯!

까마득한 그 시절로 올라갈수록 춥고 덥고 배고픈 정글 속의 삶이란 다 상상이 안 되겠지만, 지금의 삶은 어떨까?

내 사는 주위 사방 천리를 둘러봐도 정글이란 없지만, 보이지도 않는 경제 정글이요, 무역 정글에 하룬들 오금을 펴고 살기가 어디 쉬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뱃속에서부터 살아남기 위한 태교 훈련을 해야 하는 세상이니. 쩝쩝, 난 밥맛이다. 지금 난 한 마디로 철없는 소리란 건 안다. 밥맛 타령이나 하는 아이라는 수준인 걸. 그래도 사는 게 버거우니 하는 말이유. 난 어느 곳을 방문하던지, 꼭 추억이 될만한 걸 사거나 가지고 온다. 온갖 푸성귀 먹거리를 한 아름 사들고, 주먹도끼 모양의 빵도 사고, 맛있는 원두커피도. 그래도 오늘의 가장 핫한 열정은, 이 뜨거운 날에 저 가냘픈 미니 장미 한 송이를 가시에 찔려가며 꺾어 왔다. 시들어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그래도 얼음물에 채워주니 팔팔하게 살아서 한 송이 꽃을 기대했건만 무려 여덟 송이의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 여린 장미는 뜨거움에도, 얼음물에도 아랑곳 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난 이 장미 한 가지에 행복해하면서 어제 연천군의 나들이를 올립니다.


2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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